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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대선후보들에게 책 여행을 권합니다 본문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외 대통령 후보께
대통령 파면에 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 만큼이나 제 머릿속도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증이 솟아오릅니다. 대선후보로 나선 분들은 요즘 어떤 심경인가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혹은 상대후보의 지지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동분서주 하느라 정신이 없으시겠지요.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추천해 드리고 싶지만 선거를 앞두고 그럴 수 없겠지요. 현실의 제약을 넘어 세계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책여행을 통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지는 마세요.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괜찮은 책 한 권 추천합니다. 박준이란 여행작가가 2010년 출간 했던 <책여행책>을 개정판으로 다시 낸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에요.
“책은 여행과 마찬가지로 낯선 세상을 보여주고, 세상과 내가 사는 이곳의 차이를 드러낸다. 차이를 인정하면 삶이 유연해지고, 단단해진다.”(8쪽)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올바르지 않은 것에는 굳게 저항할 수 있는 단단함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특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당하고 있는 후보님들에게 더욱 그러합니다.
모순되는 듯한 유연함과 단단함을 둘 다 갖추는 게 가능하냐고요? 자전거를 생각해보세요. 우리 나라가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이 대통령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페달과 뒷바퀴를 연결해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하는 체인같은 역할을 대통령은 해내야 해요. 진보와 보수를 유연함과 단단함으로 연결해 우리 사회가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산책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며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창조자'로 살아보는” 책여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보이는 여행작가가 다녀왔던 세계 곳곳을 돌아보며 지금 매몰되어 있는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여유를 되찾으신 후 자신의 역할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저자는 알래스카 여행 중 그곳에서 10년 정도 살고 있는 일본 출신의 사진가를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저자는 자연에 살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들도 결국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의 고래잡이 이야기도 듣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강들을 죽여버렸습니다. 강에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파헤쳐 흐르는 강을 썩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빚 지며 살아왔지만 지키지 못했던 우리의 강들. 다시 생명이 깃들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돈으로 평가할 가치도 아닙니다. 자연이 허락했던 완전함을 손상시켰던 것을 되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2.
“몽골 사람들은 초원을 소유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모두의 것이다. 몽골 유목민들은 언제나 탁 트인 하늘 아래 대지를 딛고, 말 타고 초원을 달리며 산다.”(46-47쪽)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가요?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유목민이 되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처럼 우리도 땅을 공유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운좋게 땅과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만행에 우리는 언제까지 떠돌아야 하는 걸까요? 자신의 손바닥을 물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부동산 문제, 조금이라도 풀어갈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대한민국 시민들의 탐욕을 제어할 방법은 없을까요?
3.
어느 날 산을 오르고 싶다는 충동에 저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쳐 있는 6,959미터 높이 아콩카과에 올랐다고 해요. 산을 오르면서도 왜 오르는지 몰랐다고 하네요. 정상에 이를때까지 기계적으로 다리를 옮기는 게 전부였다고. 정상에 올랐을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강렬한 삶 같은 걸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는 걸 산을 오르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돼요.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산을 오를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겨선 절대 안됩니다. 정상에 올라 강렬한 쾌감을 느끼기 위한 여정으로 생각하고 그 자리를 가려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대신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것처럼 그 자리로 걸어가세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을 들어보세요. 후보님들은 어느 쪽인가요?
“신화 속의 영웅은 다음 둘 중 하나의 이타적인 행위로 여정을 마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물리적 행위, 또는 돌아와서 자신의 비범한 경험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에 깊은 유익을 끼치는 영적인 행위.”(71쪽)
4.
미국 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적 소수자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프로빈스타운'이 있대요. “세상의 소수자들은 언제나 비난받지만 프로빈스타운에서는 모든 종류의 마이너리티가 환영받는다"고 합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웃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온갖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성소수자에서부터 장애인,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한부모 자녀,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들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는 정책들을 구상하고 실행해 주시기를.
5.
연봉 40만원으로 살 수 있을까요? 쿠바에선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무료, 의료비도 무료, 집세는 월급의 10%이하로 정해진다네요. 돈이 많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쿠바. 열네 살짜리 아이가 '혁명'의 유익을 말하는 나라 쿠바. 후보님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말을 하지는 마세요. 몽상 속의 나라가 아니라 실재하는 나라잖아요.
"20년 가까운 경제봉쇄 속에 쿠바는 오히려 식량자급률이 95퍼센트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바나 근교에는 수천 개의 유기농 농장이 있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견학을 갈 정도다. 굶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약이나 비료를 구할 수 없으니 '본의 아니게' 자타가 공인하는 유기농이 되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이런 쿠바의 모습에서 생태주의자들은 또 다른 꿈을 꾼다. '인류의 미래'라는 꿈이다.”(256쪽)
체 게바라는 혁명가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선 게 아니지만 여행은 그를 혁명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게바라의 여행은 몽상가의 여정이었지만, 여행이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는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라 저자는 쓰고 있어요. “몽상가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꿈꾼다.” 대통령에게 때론 몽상같은 상상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길을 가 보고, 되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어보기 위해서요.
선거일까지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상대 후보 진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들, 언론의 선동, 이리저리 흔들리는 유권자들 등 투표가 진행되는 그 날까지 후보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성을 가지고 자신이 지키려는 가치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낸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지겠지요. 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반드시 한 권의 책과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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