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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틀에 넣으면 태극기 집회가 이해된다

초원위의양 2017.03.07 23:27

편견

작가
프레데릭 마이어
출판
소명출판
발매
2016.09.3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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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바퀴벌레닷!!!!!”


습하고 눅눅한 날 스르르륵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보면 깜짝 놀라 팔짝 뛰며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팔뚝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있죠. 바퀴벌레가 이럴 정도로 무서운 존재는 아닌데 왠지 모르게 호들갑을 떨게 됩니다. 바퀴벌레가 제게 어떤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거나 병을 걸리게 하거나 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사람에게 해롭고, 더러운 존재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어 그런지 과도하게 반응합니다. 바퀴벌레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고작 벌레 하나에 호들갑을 떨며 소리치는 제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덩치 큰 남자 어른이 왜 저러나 하는 생각에 말이죠. '어른이 되가지고…' 혹은 '남자가…'라는 생각도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퀴벌레를 봤을 때 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꼭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편견은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정도의 편견은 그냥 하하하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어떤 편견은 편견의 대상에게 인종차별, 신분차별, 성차별 등 심각한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프레데릭 마이어라는 학자는 편견을 '인류의 재앙'이라고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인류에게 편견은 재앙인 것일까요?


그의 책 <편견: 인류의 재앙>을 보면 저자가 편견을 왜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했는지 수긍이 됩니다. 과거 계속되었던 수많은 전쟁들, 유태인 학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던 인종 청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은 모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편견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편견은 인류에게 정말 '재앙'입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편견과 증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책은 무척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질문과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루는 내용도 학술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중고등학생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인간에게 편견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말하고, 다음으로 편견으로 인해 인간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편견의 결과들을 다룹니다. 마지막 장에선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편견이 야기하는 문제들


저자는 많은 학식을 가진 학자들, 정치 및 종교지도자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편견으로 인한 병적인 증오로 인류가 상상하기 어려운 희생을 치러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편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자신도 역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고 편견이라는 주제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편견의 유해성에 대해 이 책을 통해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견이 왜 문제가 될까요? 저자에 따르면, 편견은 증오심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인종, 노인, 장애인, 범죄자, 정신질환자, 어린이, 청소년 등을 차별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자가 이 책을 썼던 1970년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40여년이 지난 2017년 먼 이국땅에서 저자의 책을 읽고 있는 제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얼마 전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득한 버스에 타고 눈살을 찌푸렸던 것이 떠오릅니다.


비단 이것뿐일까요? 수십 년이 흘렀어도 세계 도처에선 편견으로 인한 차별, 억압, 심지어는 학대와 살인, 민족간/국가간 전쟁이 여전합니다. 흑인해방 운동이 일어났던 미국에서도 인종차별로 인한 총격사건 등의 소식이 빈번하게 전해집니다. 내전 등으로 인해 유입되는 난민들에 대한 유럽 각국의 반응에선 좀처럼 인류애를 찾기 힘듭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여전히 전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이 모든 일들의 기저엔 인간의 편견이 놓여 있습니다.


편견의 틀에 넣으면 '탄기국'이 이해된다


우리 나라로 눈을 돌려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라 특정할 수 없는 그룹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집회를 바라보면서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진 노인들? 보수단체 혹은 극우단체 회원? 극우 기독교 교인들? 돈을 벌기 위한 집회 알바? 이 집단을 특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편견'이란 틀 안에 넣고 보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옮긴이의 분석이 탄기국 사람들에게 꼭 들어맞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반응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흐르크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편견의 신봉자들은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눈치 채면 챌수록 더욱 더 그 주장에 열광적으로 매달린다. 경직된 편견은 광신주의로 빠져들게 마련이다.”(옮긴이의 말)


이 사람들은 자신 혹은 자신들이 믿는 대상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안감과 나약함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의 견해 혹은 믿음이 부정되는 것은 자신의 몰락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라 믿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기에 확인된 사실까지도 부정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증오를 풀어낼 대상 즉,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결국 이들은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곤 바레스가 내린 편견의 정의 역시 '탄기국' 집단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가치평가적 성격을 띠고, 주장적 성격이 강한 그릇된 판단이 궁극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판명되고, 그러한 요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충분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그 판단에 매달리면서 그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편견이라고 한다.”(옮긴이의 말)


편견을 극복하려면?


편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가 저자 본인도 역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 동기를 돌아보고 끊임 없이 성찰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의식을 확장시켜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얼핏 보아서는 눈에 띄지 않는 유혹자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사실과 프로파간다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낡은 이념과 추정들에 매달리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의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찰이, 반성이 없는 인생은 살 필요가 없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요?”(24쪽)


저자는 아이들 교육 측면에서도 지혜를 나눕니다.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고, 부모로서 자신에게 충실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집을 개방하는 것이 좋겠다 제안합니다. 지적이고 심미적인 자극을 주고, 사회적 책임과 소박한 생활 양식을 함양하도록 돕습니다. 겸손하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다가서도록 하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협동적 생활 방식을 가르칩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 모범적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어 꼼꼼하게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이에 더해 교육을 통한 왜곡되지 않은 세계관 형성, 교육과정에서 감수성 함양 비중 증가, 미디어의 적절한 규제, 사회적 무관심 타파, 관료주의의 배격 등을 편견 극복의 방법으로 제안하는데 모두 동의할 만한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특히 편견 극복 방법에 민주주의 구현과 사랑의 실천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공동참여정신을 기초로 합니다. 전선과 경계가 없는 대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대화, 실천을 도출해낼 수 있는 대화는 우리 의식에서 편견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끊임 없는 자기 탐구를 통한 하나됨을 추구하는 실천적 사랑입니다. 온화함과 부드러움, 존중의 마음을 가진 태도를 말합니다.


편견을 극복하고자 대화를 시도해 본다


최근 태극기를 든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겼습니다. 태극기를 보면 저도 모르게 눈살부터 찌푸리게 됩니다. 시청앞을 지날 때 제 반응이 바퀴벌레를 봤을 때의 반응과 비슷해질 정도입니다. 과연 이들과 저자가 제안했던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온화함과 부드러움으로 다가갈 수 있겠는가도 의문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부모님의 생각이 '탄기국'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광신에 빠진 '탄기국'사람들의 모습에 부모님이 겹쳐집니다. 그들을 벌레보듯 하며 외면하기만 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부모님들은 왜 여전히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마음을 열고 일단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들의 생각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고,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견에 사로잡혀 판단능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독재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광신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같은 나라의 국민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탄기국'사람들을 붙들고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며 편견극복의 길에 들어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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