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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세밀히 관찰하게 하는 알렝 드 보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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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세밀히 관찰하게 하는 알렝 드 보통

초원위의양 2016. 3. 16. 21:18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 이레 | 2006-08-30

  몇 년 전 알렝 드 보통이라는 이름의 작가를 알게 되어서 번역되어 나오는 그의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어느 날 책꽂이를 보다가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는 얇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알렝 드 보통의 책이었는데 '동물원에 가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처음 알렝 드 보통을 알게 되었을 때 보기는 했던 책이었는데 그 때는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표지를 넘겨보니 영어 원제는 On seeing and noticing이라고 되어 있었다. 동물원에 가기는 아홉 편의 짧은 에피소드들 중 하나였다. 번역자 혹은 출판한 사람들은 이것을 번역서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주목해서 본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아홉 가지 에세이 중에서 어느 에피소드라도 제목으로 삼았어도 괜찮았겠다라는 생각한다. 이 짧은 에세이 모음집은 알렝 드 보통의 매력속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알렝 드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그리고 그 일상 속에 무심코 지나치는 주변 환경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곤 한다. 보통의 눈을 거친 특정 장소, 지나치는 사람 등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아주 평범한 것들이 글로 표현되면, 마치 그것에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특정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가지게 되는 소소한 감정을 표현한 '슬픔이 주는 기쁨'이라는 모순되는 것 같은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호퍼라는 화가의 그림을 통해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소한 지점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 역시 눈에 보이는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대부분 약간은 흥분된 상태로 방문해 봤을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공항에 가기'라는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도 비슷하게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글로 풀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누군가가 대신 풀어놔주어서 아주 후련함을 느끼게 된다. '진정성'이라는 에세이에서는 관심가는 여성을 앞에 둔 남성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글을 읽어가다 보면 마치 내가 클로이 앞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일과 행복'에서 알렝 드 보통은 일이 사람을 규정하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하지만 매우 설득력있어 보이는 과거의 역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무척이나 공감이 된다. 노동자의 슬픈 현실을 써 내려간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 역시 노동자들의 슬픔에 참여하게 된다. 알렝 드 보통은 "일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슬픔을 그나마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라며 글을 마무리 한다. 책의 제목이 된 '동물원에 가기'에서는 알렝 드 보통이 동물원에서 보고 느겼던 기발하고 양한 생각과 느낌들을 공유할 수 있다. '독신남'에 대한 아주 짧은 글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하게 되는 짧은 순간의 상상을 풀어 놓았다. 아 어쩜 사람의 머리속에서 스쳐 지나갈 듯한 이런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놓을 수가 있는거지? 라는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취리히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적은 '따분한 장소의 매력'에서는 제목 그대로 따분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이 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민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글쓰기'에서는 이야기가 있는 글과 그냥 단어들의 묶음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그것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야기에 삶이 담뿍 담겨져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다. 풍자라고 할 수 있는 '희극'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우리 삶의 곳곳에 넘치는 해학에 대해 쓰고 있다. 알렝 드 보통이 "우리 삶에서 유머가 빠질 수는 없지"라고 말하며 씨익 웃고 있는 듯 하다.

 

  이 책 '동물원에 가기'는 소박하지만 푸짐한 시골 밥상을 마주했을 때와의 느낌과 매우 비슷하다. 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의 찬으로 변해 상에 올려진 밥상을 알렝 드 보통이 차려준 듯한 느낌이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보통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