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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광화문에서 다시 펼친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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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광화문에서 다시 펼친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초원위의양 2016. 11. 15. 02:05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작가
박노해
출판
느린걸음
발매
2010.10.16.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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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데모하러 가려고 ㅋ 하지마라 잉~ 아들이 한다고 될 일이 아냐"

 

11월 12일 토요일에 아이들을 좀 봐주실 수 있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어머니께서 보내신 카카오톡 메시지다. 2012년 대선 때 독재자의 딸을 찍지 말라는 아들의 말에 '어릴 때 에미를 잃은 불쌍한 사람'이라며 박근혜를 동정하셨던 농민 어머니. 정권에 충실했던 주요 방송사들까지 최순실 문제를 떠들어대기 전 최근까지도 어머니는 박근혜를 동정하셨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동정심은 이제 거두신 듯 하다.

 

메시지를 저렇게 보내시긴 했지만 막상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맡기러 찾아갔을 땐 집회에 가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으셨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시는 어머니께 '지금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집을 나섰다. 출간된지는 꽤 지났지만 지난해 봄에서야 만났던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가방에 넣고서.

 

민주투사이자 저항 시인, 사형을 구형받았던 무기수, 사진작가, 혁명가 등 박노해 시인을 칭하는 이름이 많다. 그를 부르는 여러 이름은 그가 살아왔던 삶의 자취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노동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필자에겐 박노해라는 사람은 <노동의 새벽>을 쓴 노동문학가였다. 물론 필자의 노동 환경은 당시 노동자들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러나 노동자-자본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기에 수십 년 전 그의 노동시에 공감했었다.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기를 읊조려 왔던 박노해 시인의 마음이 이 시집에도 구석구석 스며있다. 지난 해 봄 필자는 이 시집에 실린 304편의 시들을 읽으면서 두 극우 정권을 거치며 망가져버린 우리 사회의 절망스러운 모습에 무척이나 아파했었다. 폭력에 평화로 맞서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자는 박노해 시인의 제안에 심적으로는 동의가 되었으나 그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었었다.

 

용산참사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쌍용차 노동자들이 탄압을 당하다 사회적 타살을 당해도, 세월호에 갇혀 아이들이 수장되어도 박노해 시인이 말했던 희망의 불씨는 타오를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내 한 몸 건사해내기 위해 철저하게 식민화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필자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헬조선, 흙수저/금수저 등 우리 사회 현실은 더욱 극단적이 되어 갔고 혼자서 이 구조에 맞서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11월 5일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광화문 광장에 나갔었다. 어쩌면 지난 해 박노해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아파했던 필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식 시세와 아파트 시세를 따라 오르내리는'(25쪽 너의 눈빛이 변했다) 내 눈빛에 아직까지 식민화된 일상에서 빠져나와 저항하려는 열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날 광장에 서서 필자가 확인했던 것은 박노해 시인이 말했던 수 많은 불빛들의 모임이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 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어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553-554쪽) 중에서-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난 11월 12일 토요일 필자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아래에 서서 그 동안 시민들 각자가 간직해왔던 희미한 불빛 백만개가 외치는 외침을 들었다. 사라지지 않은 희미한 불빛들이 이루는 파도 한 가운데에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 아래에서 박노해 시인이 쓴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지금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지만 권력자들의 반응은 크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곧 피로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를 꼭 기억하고 싶다.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52쪽) 중에서 -

 

시민들은 절망스러운 현실에 저항하고자 하는 불빛이 각자의 마음 한구석에 불타고 있었음을 서로 확인하고 전율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우리가 변화를 감지할 만큼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황유미씨 아버지는 삼성과 싸우고 있고, 백남기 어른의 죽음에 대한 어떤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근혜라는 표면적 권력 뒤에 숨어 실제로 힘을 행사하는 권력자들이 누구인지, 우리 사회 어디까지 이들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던 것인지 끝내 밝히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시민들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광장에 모이는 우리 모두에게 박노해 시인의 시편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의 강력한 중력에 이끌리어 다시금 '촛불의 광화문'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되지 않기 위해 박노해 시인의 시는 우리를 일깨워 줄 것이다.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는 현실에서 필자는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본다. 그들은 '두 번 바뀐다'(167쪽)는 것과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195쪽)이라는 점을.

 

“거리와 광장이 시위함성으로 살아 있는 나라

머슴인 대통령과 권력자에게

언제든 정당성을 묻고 감시 통제하는 나라

 

집회와 시위와 파업은

권리가 아니라 주인의 의무

민주공화국은 주인들 모두가

‘전문 시위꾼’인 나라이다

알겠는가, 머슴들아”

 

-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195-196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