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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까?

초원위의양 2016. 9. 26. 01:29

도널드 트럼프

작가
강준만
출판
인물과사상사
발매
2016.08.19.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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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문제적 남자, 도널드 트럼프

 

막말의 제왕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사람이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파시스트, 히틀러, 공화당의 X맨 등 그를 비난,혐오하는 수 많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최근엔 힐러리와 비슷비슷한 지지율을 얻고 있기까지 하다. 

 

누구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기에 그가 후보로 추대된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만큼이나 놀라웠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저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고? 도대체 무엇이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든 것일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중인 강준만 교수의 책 <도널드 트럼프: 정치의 죽음>은 필자의 이런 의문에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한국 언론에 비춰지는 트럼프의 모습은 매우 단편적이었다. 필자에겐 트럼프가 생각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멍청이 같은 정치인 중의 하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트럼프가 후보가 될 수 있었던 미국의 정치 상황,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트럼프의 전략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트럼프의 어린 시절부터,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모습도 소개하고 있어 트럼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트럼프가 뜬 이유

 

트럼프 반대자들은 주로 트럼프가 선동의 소재로 삼는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그를 비난만 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태도가 트럼프를 대중적 지지 한가운데에 있게 했다고 본다. 이와 함께 '정치의 죽음'이라고까지 할 만큼 기본적인 민주주의도 작동하지 않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트럼프가 교묘하게 이용해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미국에서 지난 4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논쟁을 알아야 트럼프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PC는 성차별 혹은 인종차별적 언어나 활동을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운동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반대자들에게 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남용하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매카시즘'이란 비난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그룹의 공격을 낳았고, 이 문제에 대해선 미국 사회가 심하게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거침없이 공격하며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이 트럼프라는 것을 저자는 말해 준다.

 

공적 영역에선 차별에 반대하는 언사가 넘쳐나지만, 실제론 더욱 교묘하고 악랄한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사람들은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위선적 현실에서 어쩌다 누군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발언이라도 하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비난한다.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말로는 차별반대를 외치지만 실제론 엄청난 차별을 일상화한 체제보다 차라리 언행일치를 전제로 적정 수준의 차별을 용인하자는 편에 선다. 강준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것이 '정치적 올바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는 언론을 이용해 치열한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해 왔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보도와 논평으로 유지되는 미국 언론에 트럼프는 훌륭한 먹거리였다. 결국 여러 언론 매체들에선 잘못된 저널리즘이 트럼프라는 괴현상을 만들었다고 반성했을만큼 트럼프는 언론을 능숙하게 다뤘다.

 

게다가 70세라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SNS와 인터넷 사용에 능숙한 트럼프는 자신만의 미디어체계를 구축하고 기존의 미디어와 마음껏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말을 하고 여기에 미디어들이 달려들도록 해 돈 들이지 않고도 자신을 홍보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뉴스룸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성찰의 기회

 

강준만 교수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기득권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단적 좌절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사회 역시 '새누리나 더민주나', '보수꼴통'과 '진보싸가지' 등으로 표현되듯 기존 정치에 대한 집단적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대선을 1년 앞둔 한국에도 트럼프 같은 괴물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는 듯 하다.

 

저자가 언급한 트럼프 현상이 차별에 대한 위선적 태도가 제도화된 현실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한 공무원의 개돼지 발언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우리 사회 역시 공적 영역에선 차별을 반대하나 실제 삶에선 차별을 당연시하는 위선적 모습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카카오톡 그룹채팅이 공적 발언으로 여겨질 정도로 공사영역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사적 대화는 위선을 걷어내는 쾌감을 이끌며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는 현상도 나타난다. 트럼프와 같이 영민한 전략속 막말과 솔직해보이는 행동들로 한국의 보수 언론들에 의해 자격미달의 대통령 후보가 한국에도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강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선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비난하거나 그냥 무시하고 싶어진다. 특히나 대통령을 필두로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럼프 현상에 비추어 지금 내가 속한 사회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선동의 소재가 되는 현실의 진짜 문제와 대안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