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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더 나은 미래를 되찾고 싶다

초원위의양 2016. 8. 19. 00:37

밤이 선생이다

작가
황현산
출판
난다
발매
2013.06.2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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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자신이 쓴 글을 읽는 기분은 어떨까?

10년 전 혹은 20년 전 혹은 30년 전에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래 전 아무렇게나 끄적거렸던 낙서나 일기를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은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생각이 난 김에 책꽂이에서 15~17년 전 필자가 군대에서 썼던 빛 바래고 뜯긴 일기장 몇 장을 찾아 읽어본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야릇하다. 훈련병 시절 편지를 받아든 동기생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글도 보이고, 군대라는 조직과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어설프게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오래된 일기를 읽으며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선 기특한 생각을  했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는 과거 자신의 글을 마주하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 황현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자신이 30여년 동안 썼던 칼럼들을 엮어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냈다. 저자가 그 옛날의 칼럼들을 마주한 소회를 쓴 것을 보면  글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나 필자와 같은 범인이나 글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는 점에선 비슷한 듯 하다.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발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4쪽)

여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책으로 모은 칼럼들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전에 쓰인 것들이지만, 그리고 황현산이라는 한 사람의 눈을 통해 본 현실이지만,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고 그것을 지금의 사회상과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퇴행적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낸 의도를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표현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5쪽)

사회상을 확인하는 것에 더해 황현산 선생의 글을 통해서 세밀한 사진 묘사 기술을 한 수 배울 수 있다. 책의 2부에 사진작가 구본창과 강운구의 사진을 매개로 쓴 글들을 모아놓았는데 사진을 보지 않고도 머릿속에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사진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마치 셜록홈즈처럼 사진에 등장하는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지나쳐보내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비극의 시대

신문에 썼던 칼럼들이기에 각 이야기의 소재는 당시의 드라마, 회식 자리의 대화 거리, 영화와 시 등에서부터 학교 교육, 군대 문제, 용산4구역 강제철거, 남북간의 긴장 조성,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다. 그 중 가장 눈에 것은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철거현장을 바라보던 황현산의 관점이다. 여기서 저자는 진은영 시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용산 참사 후 우리 사회가 맞이할 모습을 정확히 예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비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 용산 멜랑콜리아)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삶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33쪽)

우리는 이와 같은 세상에서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쌍용차 파업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 제주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 세월호 참사, 밀양 행정대집행, 가장 최근의 사드배치 반대 성주 투쟁 등 연속된 퇴행적 비극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도 저자의 한 칼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슬프게도 쉽게 잊으며 때론 기억까지도 착취당한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중략)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204-205쪽)

역사적 퇴행을 뒤로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이 비극의 시대를 치유하며 역사적 퇴행을 중단시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록하며 기억해야 한다. 저자도 썼듯이 모욕적이며 비루한 삶 속에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체념하던 것에서 벗어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고 싶은 세계의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시, 소설 등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 세계를 그려왔던 것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현했던 경험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음을 다시금 확신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밤을 선생으로 맞이할 수 있다. 밤이 선생이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성 그 자체를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성을 빙자하여 말과 이론과 법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와 제도의 횡포에 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220-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