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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세상과 교감하는 글쓰기를 원한다면 본문
언제부터 책을 읽었을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둘러보며 개인적인 독서의 역사를 살펴본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당시 청소년 권장도서였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중학생이 되었다고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책이었다. 어렵사리 다 읽기는 했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작가와 책 제목뿐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을 읽어 보았는지 누가 물었을 땐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를 거듭 읽으면 언어영역 점수가 올라간다고들 했다. 10권 짜리 삼국지를 한 권씩 사서 무작정 읽어나갔다. 다 읽고는 점수가 오른다는 주술에 걸려 몇 차례 더 읽었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조정래 작가도 인기가 많았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수집하듯 사서 읽었다. 신기하게도 수능 점수가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독서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좋게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자 책을 읽을 이유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며 '재미'를 느껴보긴 했지만 다른 '재미'들에는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암호같은 수식들로 가득했던 공대 전공 서적들은 필자의 시간표에서 독서라는 활동을 저만치 밀어냈다. 그러다 이공계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우연히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가진 책을 돌려가며 읽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나누는 책 읽기 까페를 만났다.
목적이 없어져 밀려 났던 독서의 '재미'가 다시 자리를 찾았다. 알렝 드 보통이란 작가에 매력을 느껴 그의 책들을 수집하며 읽었다. 글을 통해 생겨나는 생각과 느낌들을 글로 공유해야 했기에 간단하게 독후감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책 읽기 까페에만 올려두기 아쉬워 블로그를 만들었다. 필자의 소소한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개인적 공간이었지만 글을 쓰다보니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글쓰기 책들로 손이 갔다.
에세이집인가 글쓰기 안내서인가?
글쓰기를 안내하는 몇 권의 책들을 읽어 가며 저자들이 소개하는 노하우를 습득해 보려 했다. 다양한 방법들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글쓰기 안내서들을 읽을 당시엔 '아하! 이렇게 쓰면 되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비법들을 전수 받았으니 이젠 나도 인기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력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독특한 느낌의 글쓰기 책,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다.
보통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책들은 마치 공식으로 가득한 수학교과서처럼 글쓰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원칙들과 기법들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적인 글쓰기 기법들보다 저자가 왜 글을 쓰는지, 글쓰기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글쓰기를 통해 실제로 자신과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등의 이야기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책을 읽다 보면 감동적인 에세이집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정도로 특색이 있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기예들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운영했던 실제 글쓰기 수업(글쓰기의 최전선) 체험을 책에 담아낸 것이기에 글쓰기, 특히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원칙들도 '감동'이 있는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적절히 담겨져 있다. 책을 펼치면 처음 읽게되는 부분에 저자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와 글쓰는 목적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말들이 필자의 마음을 울린다.
"누구나 사노라면 거대한 물살에 떠밀려 가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기를 쓰고 앞을 향해도 옆으로 저만치 밀려나 있기 일쑤다. 왜 내 뜻대로 살아지지가 않을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게 최선이고 전부일까. 그러한 물음에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5-6쪽)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 이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이다.(중략) 내가 나를 설명할 말들을 찾고 싶었다. 나를 이해할 언어를 갖고 싶었다. 쓸 때라야 나로 살수 있었다. 산다는 것은 언어를 갖는 일이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기억했다."(16쪽)
아는 체를 해보고도 싶고 교양있어 보이고도 싶었던 필자의 독서와 글쓰기의 이유가 부끄러워졌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언어로 세공하고 두루 나누면서 세상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세상과 많이 부딪치고 아파하고 교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불행으로 가득해지는 세상에서 참모습을 드러내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감응'을 일으키는 '좋은 글'을 써 보자
은유 작가가 강조하는 글쓰기는 '감동'에 반응하는,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삶을 위한 '감응'의 글쓰기다. 글쓰기가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기에 "자기 안에 솟구치는 것을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이 글쓰기에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방이 꽉 막혀 있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꼭 필요한 역량들인 것 같다. 우리가 마주하는 존재들에 감응하게 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생겨나면 좋겠다.
저자는 "자기 시대가 떠받드는 가치 체계에 물음표를 던져서 자기 삶을, 주변 사람을, 이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 정의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것이지만 필자는 은유 작가의 정의가 마음에 든다. 이 새대 유일한 가치가 되어 버린 자본권력에, 그리고 언론을 이용해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사익을 추구하는 타락한 정치권력에 문제를 제기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해 주는 글들을 기대한다.
"직업과 역할의 통념에 눌려 있던 예술가적 본성을 회복할 때 누구나 좋은 필자가 될 수 있다. 좋은 글은 글 자체로 다른 생각의 자리, 다른 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176쪽)
필자 역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고, 삶에 대한 물음표를 찍어 주는 글을 쓰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작가를 본업으로 삼을만큼은 되지 못하겠지만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삶'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글쓰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은유작가가 말했듯이 "나보다 더 잘 쓸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하지만 "힘을 빼고, 나의 말로, 꾸밈없이, 한 문장씩, 정직하고, 정확하게" 글쓰기 연습을 하련다. 이 책을 통해 '좋은 필자'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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