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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 것 없는 일상

잊혀져 가는 것들, 싸리빗자루

초원위의양 2016. 7. 3. 12:29

​잊혀져 가는 것들, 싸리빗자루.

어릴 적 농촌 마을에 살았던 필자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만들어 놓으신 싸리빗자루로 마당을 쓸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이런 물건들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빗자루였을 뿐이니까요.

어찌보면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어찌보면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는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주말을 맞아 찾아간 부모님 집에는 이 세월의 흐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마당을 쓸던 싸리빗자루가 여전히 벽에 기대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많이 닳아서 짜리몽땅해졌고, 다른 벽에는 만든 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이는 싸리비 두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당 한편에는 초록빛 잎파리를 뽐내며 댑싸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한 여름 이 녀석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짜리몽땅해진 싸리비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말려지고 묶여 멋진 싸리빗자루로 변신하게 되겠지요.

아버지 어머니는 할머니께 싸리빗자루 만드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저도 어릴 적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싸리빗자루를 엮는 모습을 지켜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싸리비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노년에 접어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 싸리빗자루는 제 추억속에서만 남아 있게 되겠죠.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잊혀져가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잊혀져갈 것들이 못내 안타까워 아버지 어머니께 여쭤봅니다. "이 댑싸리는 저절로 생겨난 거에요? 어떻게 만들죠?"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저절로 나는 게 어디있냐? 우리가 씨를 심었으니까 난거지. 이 만큼 자라면 자르고 말려서 적당히 묶어주면 된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가 마음에 남습니다. 올 겨울 무렵에는 부모님께서 이 댑싸리를 가지고 빗자루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빗자루 만드는 방법을 배워봐야겠습니다. 잊혀져 가는 것 하나가 지속되도록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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