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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폐지가 가득한 손수레가 사라진 골목길을 기다린다 본문
화요일.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모아 놓은 종이류를 주차장 앞 쓰레기를 모아 놓는 곳에 내다 놓고 들어왔다. 차에 두고 온 아이들 장난감을 가지러 다시 주차장에 내려왔는데 그 사이 내다 놓은 종이 묶음이 사라졌다.
안 보는 책들도 몇 권 있었으니 그걸 가져가신 분은 나름 묵직한 소득을 올리셨겠지. 폐지를 버릴때마다 이것으로 생을 이어가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폐지가 꽁꽁 싸매여져 있는 손수레들과 마주쳤다.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집 앞에서 종이 묶음을 가져가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한 분이실 것이리라. 그런데 고생하며 모아 놓은 이 종이더미를 길가에 놔두어도 되나 걱정된다.
꽁꽁 싸매 놓기는 했지만 행여나 다른 누군가가 다 가져가 버리면 어쩌시려고. 얼마 전 밖에 내다 놓은 폐지를 앞에 두고 서로 가져가시겠다고 악다구니 치며 다투시던 노인들을 본 적이 있기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
노인빈곤률과 자살률이 OECD국가들 중 최고라는 보도와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다룬 기사들이 저 손수레들과 겹쳐진다. 최근에야 읽었던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접한 행복한 덴마크 사회도 머리를 스쳐간다.
폐지라도 하나씩 모아 팔아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폐지를 놓고 싸우게 되는 사회. 개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단면이 이 손수레들에 비쳐진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이 게으르고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하지 말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은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을 시혜라고도 하지 말자. 스위스에서 치러졌던 기본소득 국민투표에 대해 결과와 상관없이 전국민이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는 기사가 마음에 남는다.
4대강, 새마을테마공원 같은데 세금을 허투루 쓰지 말고 국민에게 투자해야 한다. 어느 날 지나는 길목에 이 손수레들이 텅 빈 채 주인 없이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청소차가 올 때까지도 버리려고 내놓은 종이 묶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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