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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 - 1980년 5월 18일 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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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 - 1980년 5월 18일 광주

초원위의양 2016.05.30 23:33


   지나온 세월 동안 잊어서는 안될 아니 잊을 수 없는 날들과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개인적일 수도 있고, 특정 집단 혹은 지역에 한정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80년 5월 18일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잊혀지거나 그 의미가 희석되면 안되는 날이다. 36년 전 광주의 오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때와 그 사람들이 숫자로만 남게 된다. 사망자 165명, 사망인정 실종자 70명, 사망 비인정 실종자 300여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등 기타피해자 1589명. 이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학살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권력의 자리에 올라 앉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라 명령했던 전두환 그 휘하에 있던 협력자들과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명령에 따라 학살에 적극 동참한 군인들을 인간으로 봐야할까. 시민들은 학살당했고 학살자들은 살아남았다.


  시간이 흘러 학살을 명한 전두환은 그 죄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기는 했지만 이내 풀려나 여전히 생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기가 명령한 게 아니라는 거짓말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이것을 인간으로 봐야 하는걸까. 학살에 가담했던 군인들의 정체는 공개되지도 학살의 죄값도 치르지 않고 어딘가에서 생을 이어왔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한 당사자들과 가족들만 고통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지난 세월 동안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 참극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뜻이 있는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들을 만들어 망각하려는 우리들의 의식을 깨워왔다. 매년 5.18은 다시 돌아왔고 그 때마다 이 사건을 상기하기는 했지만, 이따금씩 공개되는 작품들을 만날때는 보다 실감하며 그 당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 해 말 5.18을 다뤘다고 하는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해 준 분이 대략의 내용을 귀뜸해 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책의 첫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 인간들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통을 마주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역시 국가에 의한 이 잔혹한 살인과 폭력의 사건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것으로 돌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교훈으로 삼아보자는 정도로 5.18에 의미를 부여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 지도 몰랐다. 결국 몇 개월을 책장에 꽂아 놓고 있다가 다시금 찾아온 5.18이 되어서야 책장을 넘기며 처참했던 광주의 오월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페이지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고, 글자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속도를 내어 읽을 수가 없었다. 소설의 첫 장면이 학살당한 시민들의 시신이 모여 있었던 상무관이다. 신원 확인이 끝난 시신은 관에 안치시킨 후 장례를 치렀지만 잔인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 짓이겨진 미확인 사체는 빠른 속도로 부패해 간다. 중학생 '너' 동호는 상무관에서 일손을 도우며 이 과정을 오롯이 지켜본다. 글로 쓰인 참혹한 광경을 따라가던 내 눈이 어느 새 지독한 시체 냄새로 가득했을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이들의 눈이 되어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내 몸안의 모든 세포들에 분노가 채워지며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잔인해지는 것인가. 한나 아렌트가 무심하게 행해졌던 유태인 학살을 연구하며 제안했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겹쳐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광주의 학살자들이 어떤 책임이나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버젓이 살아가는 평범한 악이 지배하는 한국사회가 이어져 오고 있다.



  충격과 분노가 차 오른 채 나의 눈은 이내 죽임을 당해 켜켜이 쌓인 시체들 중 하나에서 빠져나온 혼의 눈을 빌려서 그곳을 바라본다. '너' 동호와 함께 있다 옥상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쓰러져 죽은 친구 정대의 혼이 말한다.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혼들. 피를 다 쏟아내고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정대의 혼은 눈을 감고 있는 낯선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작가 한강은 온전히 정대의 혼이 되어서 그 소년이 겪었던 그 시간, 죽음 후의 시간을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복기하고 있다. 공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이 말을 너무 쉬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정대의 몸은 계속 썩어갔고, 벌어진 상처 속에 날파리들은 몰려들었으며, 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다. 생생한 묘사가 너무 강력해서 고개를 돌려 이 글들을 외면하고 빨리 넘겨버리고 싶었다. 영문 모를 죽임을 당한 정대의 혼은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광주에서의 잔혹했던 학살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고등학생 은숙은 5년이 지난 후 대학생 시절을 지나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폭력이 다시금 가해진다. 검열이라는 또 다른 폭력이 횡행하던 시절 수배자의 원고를 검토하려고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심하게 뺨을 때렸던 보안사 직원은 광주에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 잔혹한 세월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은숙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먹는다는 것조차 미안했을 것이리라. 5년 전 군인들이 진입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광주 시민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특히나 여린 여학생이었던 은숙이에겐 더욱 그러했다. 이 참혹했던 경험은 은숙과 같은 이들에게 결코 극복해 낼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아마도 10년, 20년,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그 충격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피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광주에서 시민들이 그릇된 권력에 저항하도록 모은 것은 그들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강렬한 양심이었다.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시민들 중 한 명이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때를 끄집어 내며 말해준 것이다. 도청에 남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게 했던 것은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자신의 이마에 박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였다. 결국 모두 계엄군에 끌려가 극심한 고통속에 고문을 받게 된다. 고문을 견딜 수 없어 서로에게 으르렁 거리게 되는 현장을 겪어야 하는 이들. 극도의 자기 모순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이들.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 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이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되어 버린 존재들.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정신이상자가 되기도 했고, 일부는 죽지 못해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결코 아물지 않는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똑같은 인간들에 의해서.


  학살과 폭압의 현장을 기억하고자 하는 요청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중략)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5월의 광주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나와 같은 시민들이 진정 어떤 일을 겪었는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5.18을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전혀 공감하고 있지도 못했다. 이제서야 5.18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그곳에도 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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