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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룸'에 산다 본문
자그마한 침실겸 거실 하나. 욕조가 놓인 욕실 하나. 유일한 생활 공간인 거실엔 번호키 달린 출입문 하나가 있고, 천장엔 열리지 않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이곳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엄마 '조이'와 여섯 살짜리 아들 '잭'. 아빠는 없다. 그런데 이 둘은 바깥에 나갈 수가 없다. 감금되어 있기 때문이다. 7년 전 조이는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이 작은 방에 갇혔다. 조금 지나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이 방에서 잭을 낳았다. 납치범은 정해진 때에 음식 같은 필요한 것들만을 가져다 주며 철저하게 이 둘을 가뒀다. 잭은 태어 난 후 한 번도 바깥 세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잭은 이 방에서 여섯 살 생일을 맞이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의 7년이란 세월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금새 미쳐버릴 것 같은데, 오랜 감금 생활에도 조이는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 보호해야 할 작은 생명과 함께하고 있어서였을까. 가능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하며 지내는 것 같다. 작은 공간에 갇혀 살아가지 않는 이들에게도 일상은 무료함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인데 방 하나에서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더 무료할까. 시간에 대한 감각조차 무디어 질 것만 같다. 엄마인 조이는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깥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여섯 살이 된 잭에게 세상은 상상속 우주와도 같다. 어쩌면 잭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엄마의 확장된 자궁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이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이 삶을 버텨왔지만 더 이상 견딜 수는 없었다. 이전에 조이가 탈출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납치범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올 때 변기 뚜껑으로 그를 내려치고 탈출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더 심한 폭행만 당했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점점 지쳐가는 자신과 점점 성장해가는 잭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이는 어떻게든 잭을 이해시키면서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을 계획한다. 납치범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날 심하게 아팠던 잭이 죽었다고 한 후 납치범이 잭을 묻으러 갈 때 잭이 탈출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계획이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도구가 텔레비전 밖에 없었던 잭에게 바깥 세상의 것들을 이해시킨다는 게 어렵기는 했지만 이 계획은 나름대로 잘 실행되었다.
카페트에 말려 있는 잭을 둘러메고 그 방을 나선 납치범이 잭을 자신의 차 짐칸에 태우고 가는 동안 잭은 처음 세상을 마주한다. 잭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워크가 잭의 낯설음과 두려움을 잘 표현해준다. 카페트에 둘둘 말려 있던 잭이 카페트를 풀고 나오는 모습이 마치 엄마의 자궁을 나와 세상의 빛을 마주하는 갓난아이 같다. 여섯 살 잭의 모습이 아직 양수조차 씻기지 않은 쪼글쪼글한 갓난아기의 모습과 겹쳐진다. 한 동안 얼떨떨하던 잭은 납치범의 트럭에서 뛰어내려 지나는 행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드디어 엄마의 자궁과도 같았던 작은 방에서 탈출하게 된다. 경찰은 낯설고 두려운 것들 투성이인 세상에 나온 꼬마 잭과 성공적으로 소통해 조이와 잭이 갇혀 있던 곳을 찾아내고 조이까지 세상으로 구출해낸다.
긴 감금 생활에서 해방되었으니 이 둘은 자신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을 다시 만나 괴로운 시절은 잊고 행복하게 살았더라 하고 영화가 끝나지는 않는다. 갇혀 있는 시간도 힘겨웠지만 오랜 단절의 시간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조이와 잭에게 또 다른 시련이다. 오랜 감금과 신체적, 성적 폭력으로 인한 조이와 잭의 정신적 충격, 조이 부모님들이 겪게되는 생활과 심리적 변화, 납치 감금 사건에 대한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조이와 잭은 감금에서 해방되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감금생활에서의 갑작스런 탈출, 새로 만난 가족과의 새로운 갈등, 언론 인터뷰 후 가지게 된 잭에 대한 혼란스런 생각들로 인해 조이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다행히 자살 미수로 끝나기는 했지만 조이는 당분간 가족들과 떨어져 치료를 받게 된다.
반면 어린 잭은 다행히 조이만큼의 고통스러운 정신적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두렵다. 하지만 갓난아이가 가장 안전하게 느꼈을 엄마의 자궁 밖 세상에 자연스럽게 적응해가는 것처럼 잭도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처음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도 가지게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 엄마인 조이도 안정을 되찾아 다시 잭에게로 돌아온다. 힘겨운 고통의 터널을 다시 한번 통과해 낸 후 이제서야 조이와 잭은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잭은 엄마와 자기만의 안락한 공간이었던 그 방에 다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조이와 잭은 자신들이 갇혀 있었던 그 작은 방을 조심스레 찾아간다. 때때로 그 방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던 잭은 그 방이 무엇인가 달라진 것을 느끼며 그곳 물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조이와 잭이 감금되어 있던 방에서의 삶과 그곳을 나와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하게 된 삶을 나란히 보여준다. 조이가 방을 탈출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받은 "잭을 그 방안에서 데리고 있었던 것이 최선이었을까요?"라는 물음을 관객들에게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선 결과적으로 조이와 잭이 방을 탈출하고 나름 성공적으로 세상에 적응하기는 했지만 그렇지 못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방송의 사회자가 질문했던 것처럼 잭을 자신과 함께 가두지 않고 납치범에게 부탁해서 더 나은 곳으로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겠지만 엄마로서 혹은 부모로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연히 자신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동일한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이 물음에 대해 ㅈㄴ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머리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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