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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을 알게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본문

영화이야기

죽는 날을 알게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초원위의양 2016. 4. 10. 07:52

이웃집에 신이 산다

감독
자코 반 도마엘
출연
브누와 뽀엘부르드, 욜랜드 모로, 까뜨린느 드뇌브, 프랑수아 다미앙, 필리 그로인
개봉
2015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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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말 하나님이 계신걸까 항상 의심을 품고 있는 모순에 빠진 기독교인인 내게 이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하나님 혹은 신에 대한 아주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영화엔 하나님 가족이 등장한다. 가족은 총 네 명인데 지금은 하나님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만 있다. 아들인 J.C는 자신을 희생해서 지금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엔 실질적으로 없는 상태다. 하나님인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고약한 성격을 가졌다. 너무너무 심심해 하다가 자신의 컴퓨터로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곤 세상이 작동하는 여러가지 규칙들을 자기 마음대로 정해서 창조 세계를 다스린다. 그런데 그 다스림은 정말 제멋대로여서 자신의 피조물들이 사고를 당하고,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불운이 겹치게 되는 규칙들도 만드는 망나니 하나님이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신성 모독이라고 외치며 제작자를 고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겐 이 제멋대로인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이 완전히 허황된 상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만약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극적인 일들도 결국엔 하나님이 허용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 법칙도 하나님이 만들었을 것이므로 그로인해 피조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도 결국 하나님이 허용한 것이 아닐까? 암튼 믿은 좋은 그리고 감히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상상하기도 죄악시하는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영화일 수 있겠다. 난 이런 상상은 맘껏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상상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 세계와 피조물들에게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이 엄청나게 반가웠다.

 

  반면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인 엄마는 아버지의 행패에 주눅이 들어서 엄청 위축되어 살아간다. 아버지가 큰 소리를 치면 말대꾸 한마디 하지 못하고 기가 죽고 만다. 하지만 귀여운 딸아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행동에 무척이나 불만이 많다. 거실에 작은 동상으로 세워져 있는 오빠 J.C.와 은밀하게 소통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무자비한 처사들에 반기를 들 기회를 엿본다. 아빠에게 반항을 해 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완력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술취해 쓰러져 있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 침투해 아버지의 피조세계를 망쳐버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딸 에아는 아버지 서재 열쇠를 몰래 빼내 아버지 컴퓨터를 조작해 피조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죽는 날짜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쫘악 뿌려버린다. 그리고는 오빠 J.C.가 알려준 비밀통로를 통해 피조세계로 도망친다.

 

  자신들의 죽는 날을 알게 된 피조세계의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운명을 날과 시간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그 남은 시간에 따라 사람들은 엄청나게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는 곧 죽을 것이기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을 때려치우고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하기도 한다.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는 자신의 수명이 더 짧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들이 자는 사이 아들을 숨막혀 죽이려고도 한다. 수명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한 한 젊은이는 자신이 진짜 죽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자기의 운명을 확인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한편 죽음의 날을 알게 된 것으로 인해 세계에서 모든 전쟁과 분쟁이 멈추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암튼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규칙들이 이제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 얼마나 기발한 상상인지. 사람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상황들을 내게도 대입해 보면서 내 인생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만약 내가 죽을 날을 알게 된다면 나는 주어진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피조 세계에 내려온 하나님의 딸 에아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피조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준 사실을 확인하고 오빠가 세상에 내려와서 제자로 삼았던 12제자에 6명의 사도를 더해 18사도를 완성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에아는 아버지 서재에서 가져온 인명 목록의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그들에게 삶의 의미와 그들의 존재 가치에 대해 확인시켜 주며 한 명 한 명 사도를 삼아간다. 18사도가 완성되자 드디어 야구선수의 숫자가 완성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야구광인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인 엄마가 활력을 되찾고, 아버지의 컴퓨터에 접속하여 온통 아버지 하나님 중심이던 피조세계를 엄마가 가진 여성성으로 채워나간다. 엄마 하나님의 활동 재개로 피조세계는 다시 설정이 되고 새로운 세상에서 피조물들이 다시 생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특히 인간을 고통속에 빠뜨리는 일들이 끊임 없다. 전쟁, 기아, 가난, 살인,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 등 비극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의 책임이 반드시 사람들에게만 있다고도 보여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세계를 움직여 가는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 세계이지만 여전히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엄청나게 많다. 특히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은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왜곡된 남성성이 가득한 절대자의 고약한 장난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 과격한 남성성을 잠재워 줄 여성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의 권익이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과격한 남성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고들을 막기 위해 여성성이 더욱 회복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영화의 상상력은 정말 발칙할 정도이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셔서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을 이런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보신다면 어떤 심정이실까? 괴씸해서 혼내주고 싶으실까 아니면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보여주기 위해 살짜쿵 자신의 흔적들을 보여주실까? 이 영화는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이미지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나에게 주언진 삶, 특히나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준다. 내 주위 나와 같은 피조물들의 삶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지며,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에 보다 공감하며 동참할 줄 알며, 함께 같이 미래의 날들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동행할 수 있는 그런 피조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