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대가는 채찍질을 통해 탄생하는가? 본문

영화이야기

대가는 채찍질을 통해 탄생하는가?

초원위의양 2016. 4. 1. 21:24

위플래쉬

감독
다미엔 차젤레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4 미국
평점

리뷰보기


  드럼. 기타나 피아노 같이 집에서 흔하게 가져볼 수는 없는 악기다. 게다가 때려서 박자를 맞추는 악기라 혼자서 드럼을 연주하기도 힘들 것 같다. 설사 드럼을 배우고 있다고 해도 기타나 피아노를 반주 삼아 노래를 한 곡조 하는 것처럼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기도 힘들 것이다. 드럼은 함께 연주할 밴드가 있어야 실력 발휘를 해 볼 수 있을만한 악기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드럼 하나만을 가지고도 독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치열하게, 아니 지독하게 연주한다고 하면 영화속 드러머 앤드류 네이먼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드럼 연주를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드럼이라는 악기로 음악 영화를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주인공 앤드류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은 더욱 놀랍다. 아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손에 피가 흐르는데도 미친듯이 드럼을 두둘겨대는 그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됐다. 스틱의 움직임이 최고조에 이르다가 조용해지더니 서서히 절정을 향해 움직여 갈 때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가슴이 뭉클 하는 바람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옆 사람이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금새 피와 땀이 튀는 앤드류의 연주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최고가 만들어져 가는 모습에 전율이 느껴졌다.

 

  미국 최고의 음악 학교의 밴드 지휘를 맡고 있는 플렛처 교수. 최고의 지휘자이기는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완전한 폭군. 밴드의 드럼 연주자를 찾던 플렛처 교수는 앤드류를 자신의 밴드에 합류시킨다. 앤드류의 꿈은 최고 드러머가 되는 것. 최고가 되기 위해 셰필드 음악학교에 왔고 또 최고가 되기 위해 폭군 교사 플렛처의 밴드에 몸을 담는다. 플렛처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한계를 뛰어 넘어 과거 전설과도 같은 명연주자가 되기를 꿈꾸며 다그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앤드류는 말 그대로 피나는 연습 끝에 드디어 플렛처 교수가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유명 재즈 경연대회에 메인 연주자로 참석하게 된다. 

 

  모든 게 잘 풀려간다면 영화가 아니겠지. 경연대회에 가는 도중 앤드류는 불운이 겹치다 급기야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충돌로 부서진 차 안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앤드류는 사고로 여기 저기 피가 흐르는데도 밴드에서 연주하기 위해 연주회 장을 찾아간다. 큰 교통 사고를 당하고 정상적인 연주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결국 경연대회를 망치고 그 자리에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플렛처 교수를 잡아 넘어뜨리며 난동을 피우고 만다. 결국 앤드류는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플렛처의 폭력적인 교육 방법에 불만을 가졌던 학교에서도 앤드류를 설득해 프렛처 교수를 내쫓는다.

 

  앤드류는 드럼을 접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치다 재즈클럽 앞에서 발견한 플렛처 교수의 이름. 앤드류는 플렛처 교수가 출연하는 클럽에서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온화한 모습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플렛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밴드에서 드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고민 하던 앤드류는 다시 스틱을 잡고 플렛처 교수가 말해 준 곡들을 다시 연습한다.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의 오프닝 무대. 앤드류는 한껏 긴장하며 자리에 앉아 지휘자인 플렛처의 손끝을 쳐다보고 있는데 플렛처는 자신이 말했던 곡이 아닌 앤드류가 모르는 곡을 연주하자고 한다. 당황한 앤드류는 완전히 연주를 망치고 만다. 플렛처 교수는 자신을 학교에서 쫓아낸 사람이 앤드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복수로 앤드류를 완전히 망신시킬 생각으로 그를 초대해 연주자의 자리에 앉도록 한 것이었다.

 

  앤드류는 첫 곡을 완전히 망친 후 좌절해 무대를 나와 버린다. 무대를 뛰처 나온 아들을 꼭 안아주는 아버지. 그냥 돌아갈 줄 알았던 앤드류가 방향을 바꿔 무대로 다시 올라간다. 그러더니 스틱을 다시 잡고 플렛처를 노려본다. 어이없는 플렛처는 다시 한번 앤드류를 망신 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앤드류가 갑자기 연주를 먼저 시작하더니 밴드를 이끌며 자신의 곡을 만들어 간다. 플렛처는 어쩔 수 없이 당황하며 지휘하는 척 하게 된다. 앤드류는 플렛처의 악다구니 박친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피나게 연습했던 곡을 계속해서 연주하며 곡을 이어 나간다. 결국 플렛처도 앤드류의 굴하지 않는 열정에 감동해 함께 곡을 화려하고 정열적으로 마무리 한다.

 

 

  제자 중의 누구라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픈 욕심에 강압적인 교수법을 옳다 여기는 플렛처의 방법이 결국 성공을 한 것인가. 플렛처는 이만 하면 됐다는 말이 발전을 저해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한계치로 점점 더 몰아쳐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치 죽을 고비를 넘기면 더욱 강해지는 드래곤 볼의 사이어인처럼. 하지만 앤드류가 말했듯이 그 강압적인 방식에도 가르침을 받는 학생의 개성에 따라 조절될 필요가 있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도 너무 큰 폭압에는 주눅이 들어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가 되는 데 있어 끊임 없는 연습, 자신을 한계 상황까지 몰아 부치는 연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한다. 신들린 듯한 드럼 연주로 감동을 주고, 한편으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