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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악은 아주 평범하게 행해진다 본문

영화이야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악은 아주 평범하게 행해진다

초원위의양 2016. 4. 1. 21:22

한나 아렌트

감독
마가레테 폰 트로타
출연
바바라 수코바, 엑셀 밀버그, 자넷 맥티어
개봉
2012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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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유대인 학살과 같은 끔찍한 악행이 아주 평범하고 흔하게 행해질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현대 정치철학자이다. 1951년 파시즘과 스탈린식 사회주의 체제를 전체주의로 정의하고 이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광기와 공포로 지배하는 정치형태라 주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8년에는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통해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생존과 욕망 충족, 일의 재미와 명예 추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를 바라보는 행동에 대해 기술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적인 삶이 정치의 주제가 되도록 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공공성을 새롭게 발견할 것을 역설했다. <네이버캐스트, 인물세계사 ‘한나 아렌트’ 중에서>

 

  정치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 그만큼 극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이 영화에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액션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뜨거운 사랑이야기가 있어서 주목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인생 중에서도 특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하고 그녀가 작성했던 보고서와 그것이 촉발했던 사회적 논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납치되어 재판장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학살을 자행하게 된 자신의 행동과 책임을 연결짓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서 한나 아렌트는 ‘악이 뿔 달린 악마처럼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취재를 마친 그녀는 뉴욕커에 보고서를 싣게 되는데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극히 평범한 사람이며, 그는 판단할 수 있는 생각이 없어져 버린 인간일 뿐이었다는 것과 학살 시 유대인 지도자들의 행동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유대인들에게서 반민족적이며 나치 전범을 옹호하는 것이냐는 수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들의 감정적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반대자들 혹은 감정적 비난자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용감하게 주장했다. 그녀가 공식적인 강의에서 그녀를 비난하는 동료교수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모습이 매우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주장했던 바는 나치에 협력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생각과 책임 없이 한 맹목적 행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였다. 그녀는 잔혹한 결과를 가져온 잘못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처벌 혹은 용서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이해의 결과는 그가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라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일제시대 일제에 붙어서 조선인들 착취를 도왔던 친일파들, 한국 전쟁 당시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에 따르다가 양쪽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학살했던 사람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했던 경찰들의 행동,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시절 그의 명령에 따라 가차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이들, 이명박이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철저히 관료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이들, 용산참사와 쌍용차 점거를 폭력으로 제압하던 경찰들, 밀양 송전선 시위에서 주민들을 무참히 끌어내던 경찰들, 세월호 침몰과 그 책임자들, 민주적 시위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경찰들과 법 집행자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메르스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는 일부 공무원들 등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차례대로 떠올랐다. 

 

  이들을 나치전범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한나 아렌트가 역설했던 명령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혹은 외면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 명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처벌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너무나도 평범하게 자행되는 악행들을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들의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 생각한다.

 

  명령이기 때문에, 따르지 않으면 피해가 따를 것 같기 때문에, 내가 이런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나 싶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출 때 평범한 우리는 언제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된다. 물론 그 생각의 방향이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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