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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본문
타인의 삶은 내 삶에 비해 좀 더 멋져 보인다. 특히 무엇인가에 집중해 정열을 불사르는 인생을 만나게 될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당시대에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인물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커다란 자취를 남긴 인생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너무 평범해 보이고 가치가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가 그랬다. 비 오는 어느 날 수업을 위해 학교로 가던 중 다리 위 난간에 올라선 젊은 여인을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레고리우스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아니 경험하려고 하지 않았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다리 아래로 뛰어 내릴 것만 같던 그녀를 데리고 수업에 들어가지만 그 여인은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벗어 둔채 홀연히 그레고리우스의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레고리우스는 무엇에 끌렸던 것일까? 교실에 학생들을 남겨군 채 그는 홀연히 사라져간 의문의 여인을 따라 나선다. 여인은 금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레고리우스는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발견한다. 책의 저자는 아마데우 프라두. 책을 읽어가다 그 문장들에 깊이 공감하게 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리스본행 기차 티켓을 가지고 무작정 리스본행 기차에 오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오던 그레고리우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마데우 프라두의 글귀와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끌려 모험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도착해 자신에게 깊은 감명을 준 책의 주인공들을 무턱대고 찾아나선다. 결국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의 집, 그의 여동생,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과 그들의 불꽃같은 열정이 깃든 인생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혁명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들에는 아마데우 프라두와 그 동료들과 같은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겠구나 싶다. 나 역시 영화에서 간간히 소개되는 아마데우 프라두의 문장들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레고리우스가 느꼈을 법한 초라함도 공감할 수 있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의 삶을 추적하던 그레고리우스는 지금은 백발 노인이 된 아마데우 프라두와 가장 가까웠던 두 친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듣게되고 그들의 삶에 있었던 비극적 이야기도 마주하게 된다. 동경하게 되는 삶이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비극적 운명을 과연 평범한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혁명의 시기에 혁명가들이 있지만 그들을 막아서는 세력도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리스본의 학살자라 불렸던 비밀경찰도 있었다. 이 학살자의 생명을 구해줬던 의사 아마데우 프라두. 그로 인해 그가 겪게 된 비틀어진 혁명전사로서의 길. 동료들의 실망과 돌아서는 절친. 절친이 사랑하던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아마데우 프라두. 그 여인을 동료로서 지키기 위해 학살자로부터 받은 잔인한 고문을 견뎌야 했던 또 한 사람의 동료. 그 가운데 아마데우 프라두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 가운데 고민한 흔적들을 그레고리우스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찾아가보고자 한다. 그 당시 역사를 살았던 인물들은 자신들을 객관화해 볼 수 없었으므로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지만 그레고리우스의 객관화된 시각은 노년이 된 그 주인공들에게 약간의 이해를 제공해 준다.
영화를 통해 전해지는 아마데우 프라두와 그 동료들의 삶이 노인이 다 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인생 최초로 모험적인 일탈을 감행할 만큼 매력이 넘치는 인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그 혁명의 역사와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일정부분 가두어 놓고 살아가던 역사 속 인물들에게 해방감 같은 것을 선물해 준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려고 한다. 그 때 리스본에서 만나게 된 안경사이자 아마데우 푸라두와 동시대를 살았던 혁명가를 삼촌으로 둔 여인의 매력적인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듯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레고리우스와 같이 가슴이 벅차 오를 만큼 매력을 느끼는 인물 혹은 역사를 나도 만나게 될까? 만약 내가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실 지금 내 자리를 잘 유지하는 것만큼 안정적인 삶도 없을 것이다. 변화는 가슴을 뛰게도 하지만 그만큼 불편함, 두려움, 예기치 못한 상실 등을 내게 선물할 것이다. 그것을 감내할 만큼의 매력을, 가슴 박차 오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레고리우스와 같이 모험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론 아직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가슴 벅차 오름을 지긋이 누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치우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뎌보는 작은 모험을 시작해야겠다. 영화에서처럼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일탈들을 감행하며 지내봐야겠다.
무턱대고 휴가를 내고 쉬어보기. 아무일 없는데도 정시에 퇴근하기. 어린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하기. 여름 휴가에 일주일 휴가를 더 내서 해외 여행을 떠나기. 모르고 여행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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