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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 착취 현장의 잔혹한 역사

초원위의양 2016. 3. 20. 01:39

유곽의 역사

작가
홍성철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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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2007.08.3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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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에서 지내던 시절 어둑어둑한 시간 수원역을 지나가다 보면 창녀촌(그땐 이렇게 불렀다)에서 지나는 행인들에게 손짓하며 놀다가라고 말하는 누나 혹은 이모들을 늘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안으로 잡혀들어가면 큰일을 당한다는 동급생들의 두려움섞인 이야기에 막연히  무섭기도 했다. 한편 그곳에서 남자들에게 손짓하는 여성들은 더럽고 천박한 이들이라 생각했다. 세월이 조금 더 흘러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청량리에서부터 제기동역 부근의 588창녀촌을 가까이에서 지나치기도 했다. 그 때에도 늘씬하고 섹시한 그녀들의 모습에 눈길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그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선 멸시와 천시가 가시질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 사악한 성매매 구조를 인식하게 되면서는 집창촌 혹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해 측은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성적인 이야기만큼이나 집창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거슬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금기시되어왔던 집창촌의 역사를 썼다는 이 책은 금기에 대한 반동에서였는지 더욱 더 눈에 들어왔고 결국 책을 열게 되었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형성되고 지속되어 온 집창촌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구분하고 그 당시의 특징적인 모습들을 기술하였다. 18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개항기의 유곽과 윤락업소가 시작된 시대, 1906년부터 1930년까지의 철도 유곽시대,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쟁 유곽시대,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사창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시대, 1962년부터 1980년까지 특정 지역으로 집중화된 시대, 1981년부터 2004년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던 사창시대로 집창촌의 역사를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각 시대에 유명했던 혹은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집창촌에 대해 '집창촌 깊이 읽기'라는 절을 통해 보다 상세하면서도 현장감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의 마지막에는 집창촌의 현재와 미래라는 장을 추가하여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집창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제 140년 가까이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집창촌 문화, 이것을 우리 세대에는 어떻게 품고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찌보면 건조하게 쓰여 있는 집창촌의 역사였지만, 매 시대에 피해자로 존재했던 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니 수월하게 읽기가 어려웠다. 집창촌의 역사는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남성들의 성 착취를 공공연하게 용인한 참혹하고도 사악한 역사이고, 돈 혹은 경제적 성장이라는 탐욕 앞에 굴종한 비참한 인간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식민지 시대, 태평양 전쟁, 광복과 남북분단, 한국전쟁, 미군주둔, 두 번의 군사쿠데타 등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여성들은 학살보다 더한 참혹한 삶을 견디며 살아내야만 했다. 게다가 선진화되었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 140여년 동안 철저하게 유지되어온 것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암울하다. 10여 년 전 성매매 특별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성 착취 구조 속에 있는 여성들을 얼마나 보호하며 구출해 냈는지는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성을 사고 파는 문제, 집창촌의 문제 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 정도가 그 법률의 성과라면 성과일까?

 

  성매매 특별법이라는 기존보다는 엄격한 법률 적용으로 성 착취구조가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아니 멍청한 생각일 수 있다.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이 법으로 인해 성 구매에서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적 부유층들은 룸살롱, 안마시술소 등을 이용해 보다 손쉽게 성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반면 눈에 띠는 집창촌은 시범적 단속의 대상처럼 인식되면서 양극화된 착취 구조를 형성했다. 성매매를 윤리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되지만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전체 국가적인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역사를 통해 확인된 것과 같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성 인식에 있어 급진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이처럼 지속되어 온 성 착취구조는 크게 변화되지 못할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짧게 언급된 외국의 성매매 및 집창촌 사례를 보건대 이는 비단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라 생각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매우 금기시 되는 성의 문제, 특히 구조적, 경제적 논리와 남성들의 잘못된 성 인식 하에서 지속되어 왔던 사악한 성매매의 공간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오래된 참혹한 역사의 고리를 현재 세대에서 끊어낼 수 있을까? 아니 끊어내고 싶어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집창촌 혹은 성매매의 역사를 읽어가면서 아쉬웠던 점은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객관적인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성매매 문제는 객관적 사실들만을 가지고 덤덤하게 그려낼 수 있는 주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오래된 성 착취구조 속에서 고통받아 왔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 공감하며, 국가적/사회적으로 이와 같은 구조를 유지해 온 주체인 남성들의 죄악들을 적극적으로 비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소한 성 착취 구조를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묵인하려는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경제원리로 바라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서 이를 심각한 윤리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간절해진다. 또한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러한 성매매 문제는 현재까지의 크게 왜곡된 경제구조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성인식 변화와 함께 사회 전체적인 구조 변혁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