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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자본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또 자본주의 본문
자본주의란 괴물이 거의 전 세계를 삼켰다. 우리는 그 괴물에 속박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속박인지 모른다. 이 괴물은 소수의 어떤 이들에게는 한없는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서는 풍요로움을 앗아갔다. 아직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 괴물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 역시 이 괴물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인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이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자본주의는 빵빵하게 부풀어진 삶이다. 지난 200년 동안의 자본주의 개선행렬만큼 세상을 많이 바꾸어 놓은 것도 없다. 그 결과 엄청난 풍요를 이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암울한 가난도 발생했다. 진보가 실현되었지만 부정도 생겼다. 상황은 변해도 메커니즘은 항상 같다. 언제나 새 것이 옛 것을, 효율이 전통을 밀어낸다. 더 좋아지고 빨라지고 값싸진다. 이런 경주에서 버티지 못하는 자는 낙오하고 만다." 인간을 이렇게 팽팽한 긴장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나는 괴물이라 칭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욕망들이 모여서 창조해 낸 거대한 괴물이다. 이 책은 '인간은 시장의 법칙을 받아들이면 더 잘 살게 되는가? 아니면 시장의 법칙을 제거하려고 할 때 그렇게 되는가? 다 함께 빈곤에 시달리지 않고 정의롭고 부유한 사회를 실현할 연대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는가? 부자들이 점점 더 부유해져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몫이 돌아가는가?'와 같은 의문들에 대해 과거로부터 고민해 왔던 인류의 흔적을 좇고 있다. 인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얻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1760년부터 2006년까지의 시기를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과거로부터 삶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던 것과 궤를 같이 하듯이 나누어진 시기에 포함된 햇수도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보인다. 이렇게 나누어 놓은 시대 구분이 세상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져 왔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유럽에서 1800년경을 전후로 구시대적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국가와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1976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급속한 기술 발전을 가져왔고, 이에 부응하는 자본의 팽창과 축적도 개인을 중시하는 인간의 인식 변화를 통해 함께 진행되었다. 자본과 스미스가 말했던 개인의 이기심은 새로운 경제체제가 출현하는 데 전제조건이 되었다. 초기 산업주의 시기에는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지만 그것을 제공할 노동자들도 넘쳐났기에 노동의 가치는 매우 낮았다. 농노 신분에서 어렵게 벗어났던 그들은 자본이라는 새로운 것에 예속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구조 변화속에서 전통적 수공업자들은 공장의 기계들에 밀려났고, 공장 노동자들은 형편없는 노동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투입한 자본의 증식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이렇게 틀을 잡아갔다.
1830년부터 1917년까지의 시기에 저자는 '진보의 고통'이란 제목을 달았다. 노동자들의 형편없는 임금과 그들에게 가해지는 착취는 노동자들이 저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초기 산업화를 통해 형성된 기술 발전은 더 진전되어 삶의 박자는 더욱 빨라졌다. 기계화는 인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섬유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신문과 출판에도 마찬가지로 혁신을 가져왔다. 국가간의 시장도 개방되기 시작했고 자유 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황제, 왕, 봉건영주들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에서 그 중심이 유산 시민계급과 노동자 대중으로 이동하였다. 자본주의의 병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칼 마르크스와 같은 반자본주의 사상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그 폐해들로 인해 사라질 체제라 여겨졌다. 하지만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동자들의 환경이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을 노동의 공급자로만 생각했던 과거의 생각들이 노동자가 수요도 감당한다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시대 세계 경제는 커다란 늪에 빠져든 것처럼 사그러져 간다. 1918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는 불황이라는 지옥을 경험한다. 1929년 세계는 대공황을 맞는다. 수많은 중산층 가족들이 집과 꿈을 잃었다. 자본주의라는 종잡을 수 없는 야수가 이 시기 세계를 덮쳤다. 과거 개별기업과 개인의 행태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에 근거해 전체 경제에 적용하던 방식이 대공황기를 통해 국민경제적 관계들을 탐구하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공황은 기업가, 은행가, 농부, 영세 상인들 모두에게 타격을 주었지만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은 단순노동자들 이었다. 대공황 최악의 결과는 히틀러와 나치들의 등장이었다. 대공황의 소용돌이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케인스 같은 경우엔 국가의 개입을 주장했다. 케인스의 주장은 먹혀들어가는 듯 했고 정책적으로도 성공한 듯 보였다.
1945년부터 1970년까지의 시기는 사회적 시장 경제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유례없이 높여주었고 자본주의의 매력에 인류가 빠져들었다. 1948년 독일은 경제 조정과 가격통제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와 성과 경쟁으로 노선을 틀었다. 전후 시대에 자본주의는 대량빈곤, 실업, 히틀러 맹신으로의 추락을 가져온 대공황 때문에 철저하게 신용을 잃었다. 이를 대신한 것이 에어하르트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대신했다. 화폐개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재앙과도 같은 날을 맞이했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다. 하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독일에게는 기회였다. 생산이 활기를 띠었고 경제는 다시 살아났다.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래가지 못해 케인스의 이론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은 한계에 부딪친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기습한다. 이는 중동지역 국가들의 친 이스라엘 국가들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독일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독일 경제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해 1975년 서독에서는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이른다. 이 시기 독일은 물가는 상승하고 일자리는 부족한데 경기는 침체되어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이제는 독일 기업들도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대책을 찾던 정치권에서는 공급위주 정책, 낮은 세금, 유연한 노동시장, 최소한의 국가 규정 등을 주장했던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기업들은 점차 경영합리화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쫒차내기도 했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의 시기는 돈의 승리로 대표된다. 세계화 덕에 세계경제와 무역이 급성장하지만 선진 산업국들에서는 변화에 따른 낙오자가 생겨났다. 정의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불붙었다. 기업들은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갔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임금도 줄어들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삶이 나아지지 않았으나 자본가들에게는 또 다른 풍요의 시기를 선사했다. 자본주의는 시작된 지 200여년 만에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듯 보였다. 돈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제 실체가 없는 돈의 투기장으로 몰려갔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는 이제 유일한 세계 경제 체제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책이 쓰여지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모든 체제를 잡아먹은 것 같았던 자본주의에도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중심 축이 되었던 자본 그 자체, 즉 금융 부문에서부터 위기가 생겨난 것이다. 금융 위기는 전 세계로 그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 시작하여 몇 년을 거쳐가면서 유럽, 아시아 등지를 거쳐갔다. 금융이 중심이 되었던 자본주의는 또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5년 이상이 지난 요즈음에는 다시 회복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무리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인해 그 부작용을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가 몰락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쓴 이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성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는 딱 한 가지 확실한 교훈만을 얻을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본주의란 괴물은 인류역사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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