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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영화(스토리)의 구조보기 본문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영화는 아주 재미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시각을 쾌락적으로 만족시켜주거나, 혹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일 뿐이었다. 영화를 어떠한 눈으로 혹은 어떠한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어떤 이야기가 나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감동 혹은 만족감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영화의 기초가 되는 시나리오 및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소개해 준다. 출판된 지가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훌륭한 이야기와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아주 일반적이면서도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해 준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잘 짜여진 좋은 스토리란 무엇인가'를 설명해 준다. 스토리가 잘 짜여지게 되면 그것을 대하게 되는 최종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관객들은 매우 만족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저자들은 좋은 스토리에 대한 자신들의 철학을 먼저 소개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주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기초에 대해 말한 부분에서 저자들에 의하면, "좋은 스토리란, 관객에게 일정한 감정이입을 유발케 하는 주인공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의 성취는 매우 어렵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들은 "잘 짜여진 좋은 스토리를 위해서는 관객이 그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체험할 것인가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 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는 관객이 알고 있는 것, 알게 되는 시점, 등장인물은 모르지만 관객이 알고 있는 것, 관객이 기대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기다리는 것,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 등이다. 한 마디로 이 책에서는 '어떻게 좋은 스토리를 발전시킬 것인가'와 '어떻게 그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체험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지는 하나의 꿈-끊임없이 스토리를 앞으로 전진시키면서 관객의 마음과 정서를 사로잡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것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드는 그런 꿈-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p. 47)
저자들은 스토리의 세계에서 독창성은 주인공의 천성과 시나리오 작가의 천성에서 비롯된다고 쓰고 있다. 즉, 시나리오를 쓸때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대사보다는 복잡한 내면 상태를 드러내는 어떤 행동을 찾아낸다는 것이 어려운 과제이다. 이를 위해 관객을 스토리에 참여시키는 즉,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관객에게 하나의 사건에서 기대하게 만들고 또 다른 사건에서 두려움을 갖게 한다면, 그래서 이 스토리가 어떻게 끝날지 도저히 알 수 없도록 만든다면 이 불확실성의 상태는 가장 효과적이 된다. 이를 위해 관객이 등장인물들에 감정이입 되어야 하고. 또한 관객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저자들은 시나리오를 쓸때 기대와 두려움이라는 요소를 성공적으로 배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쓸 때 고려해야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요소들은 실제로 시나리오를 쓸 때 기본적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라 생각한다.
1. 주인공-어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아주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약간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2. 갈등: 스토리에 에너지를 주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갈등은 무언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을 성취하려 하는 인물로부터 만들어진다.
3. 장애물: 여러가지 장애물들이 있다면 이들은 대등한 역학관계를 가져야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극복은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4. 전제는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총체적인 상황 혹은 배경이다. 이는 오프닝을 결정한다.
5. 절정은 이전까지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이 치달아 올라가 이르게 되는 시나리오의 한 정점이다. 해결은 관객이 긴장을 풀어도 된다고 알리는 포인트이다. 절정과 해결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정하고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6. 주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캐릭터와 상황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에 대한 어떤 느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절정과 해결을 선택할 뿐이다.
7.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디만 너무 많이 설명하려고 하지 말아라. 꼭 필요하다면 갈등이 있는 (가능하다면 유머도 있는) 장면 속에 배치하는 게 좋다.
8. 성격묘사의 핵심은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관객은 목표의 추구를 위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스토리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캐릭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캐릭터의 내면에 있는 은밀한 욕망까지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그들의 움직이는 동인을 묘사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고도 일관되게 그릴 수 있다.
9. 아이러니. 등장인물은 모르되 관객은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때 드라마적 효과가 극대화된다. 또한 이것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등장인물들도 알게되도록 구성해야 한다. 한편으로 관객에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관객에게 더 많은 흥미를 주는 것은 둘 중에서는 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10. 어떤 시간 간격을 두고 씨뿌리기와 거두어들이기라는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시간 간격은 가능한 긴 격차가 있으면 좋다. 씨뿌리기가 잊혀질 수 있도록 관객의 관심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이를 더 효과적이게 한다.
11.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는 관객의 정서를 자유자재로 조정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스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 대하여 걱정하도록 할 수도 있고 기대하도록 할 수도 있다. 두려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두려움을 갖도록 하고 기대가 필요한 순간이는 기대를 하게 해야 한다. 이때 미리 알려주기와 예상하게 만들기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12. 시나리오 쓰기란 어릴 적 철사로 뼈대를 만든 후 찰흙 덩어리를 붙여가며 살을 붙이는 것과 같다. 잘 세워진 구조 위에 스토리의 살을 붙여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13. 잘 짜여진 시나리오는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준다. 시나리오작가가 만들어낸 사건들이 개연성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객들이 시나리오의 결말 이외의 다른 결말은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시나리오작가가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이다.
14. 행동(action)과 활동(activity)은 구별되어야 한다. 활동은 등장인물이 어떤 장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면 행동은 어떤 목적을 가진 활동, 구체적으로 목표에 대한 주인공의 추구를 밀고 나가는 활동이다. 행동은 스토리를 진전시키고 활동은 등장인물의 삶에 대한 관객의 이해와 참여를 확장시켜 스토리를 풍요롭게 한다. 어떤 장면의 대사는 행동이 결정된 다음에 쓰여져야 한다. 행동과 활동 없이 대사만으로 드라마의 모든 하중을 짊어지려고 하면 장면은 빈약해진다.
15. 대사는 시나리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하나의 대사로 여러 가지 기능-화자의 성격 노출, 설명 등-을 하도록 써야 한다. 배역을 맡은 배우가 배역의 내면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의 여지가 있는 대사가 좋은 대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주의해야 할 점은 대사만으로는 한 편의 영화나 시나리오를 오랫동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16. 비주얼. 시나리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는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디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장면에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상태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으면 좋을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 조명/질감/색채 등에 대한 언급, 사운드에 대한 언급 등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17. 다른 많은 글쓰기가 그렇겠지만 시나리오에서는 고쳐쓰기가 더욱 중요하다. 시나리오의 경우 초고에서 아무런 실수도 없이 완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나리오를 고쳐썼다면 다른 사람에게 읽어보도록 하라. 하지만 고쳐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된 스토리텔링 및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기본적 설명 후에 이 책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유명한 영화들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이 이어진다. 저자들은 책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잘 짜여진 이야기의 분석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시나리오 쓰기를 준비하는 혹은 쓰고 있는 예비 작가들에게 매우 예리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반복학습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 잘 쓰여진 혹은 잘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앞서 설명했던 여러 가지 개념의 틀 속에 맞추어서 반복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시나리오 분석 파트는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저자들은 이 시나리오 분석 파트를 먼저 읽어내려가지 말고 실제로 영화를 하나하나 보면서 저자들의 분석과 비교해 볼 것을 추천하고 있다. 저자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각 영화들을 보아가며 비교해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작 혹은 명작이라 불리울만한 작품들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읽어가면서 잘 짜여진 스토리의 모범 사례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영화의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감독이 혹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1941년 작품인 시민 케인에서부터 1991년 델마와 루이스에 이르기까지 총 12편의 영화들에 대한 분석을 읽은 후의 느낌은 시험을 앞두고 쪽집게 과외를 받은 듯했다. 아주 단기간에 영화를 보는 관점이 상당히 넓어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영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을 정독한 후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시나리오 분석 부분에서 다룬 것과 같은 방식으로 어떠한 표현 도구들이 사용되었는지를 상기해가는 재미가 더해졌다. 내가 시나리오 작가가 될 것은 아니지만 시나리오라는 영화의 근간이 되는 틀을 이해하게 되자 영화를 구조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수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스크린의 영화들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시각을 얻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실제로 유용한 실용서를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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