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워라밸? 감히 일이 삶과 맞먹으려 하다니! 본문

경제 경영 혁신 직장 조직

워라밸? 감히 일이 삶과 맞먹으려 하다니!

초원위의양 2019.06.27 18:36

운칠기삼(運七技三). 평균수명을 고려해 대략 절반 정도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나의 인생을 돌아볼 때 떠오르는 말이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내 인생엔 나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출근하면 옆자리 동료가 사라져 있어서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모두가 고통스러웠다고 전해지는 IMF 구제금융 시절의 수렁에서 기업들이 빠져나와 회복해 가던 시기에 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회사를 골라갈 수 있었다는 80년대 고도 성장기만큼은 아니었지만 기업들은 어려운 시절을 힘겹게 견뎌냈고 신입 사원을 다시 채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취업하려던 시기엔 기업들이 채용 인원을 상당히 빠르게 늘려가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요즘보다는 수월하게 한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시대와 대학원 때 전공한 분야의 운을 잘 탔기 때문인 것 같다.

각 부문별로 신입사원이 800명 넘게 같이 입사했기 때문에 약 다섯 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달 반 동안 신입사원 연수가 진행되었다. 연수 프로그램은 직장에서 필요한 MS 오피스 활용 교육,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교육, 생산공장 체험, 해병대 캠프 등으로 다양했다. 대체로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육들이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날 즈음엔 교육의 여파로 회사와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해졌다. 연구소 본부에서 연구소에 대한 교육을 며칠 더 받고 나서 실무 부서에 배치되었다. 그 때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관리자급 선배들은 거의가 회사의 성장과 부침이 곧 자신의 성장과 부침이었던 ‘회사인간’들이었다. 이들은 내게 회사의 발전을 위해 밤샘과 주말 노동도 불사했던 시절을 몹시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주곤 했다.

당시에 주 5일 근무가 시행된 지 1-2년 정도 지났었는데 과장급 직원들은 순번을 정해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었다. 선배들은 불만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도 회사를 위한 고귀한 자기희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선배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선배들의 희생과 노고로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고 내가 일하는 환경도 좋아질 수 있었다는 것은 감사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회사=나’라는 공식은 내게 맞지 않았다.
 

  
선배들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빨라야 저녁 8시 정도(내가 다니는 회사는 8시 출근 5시 퇴근이다.)에 퇴근했다. 이런 선배들에게 난 용감하게도 내 뒷모습을 먼저 보여드렸다. 빠르면 5시, 늦어도 7시에는 꼬박꼬박 퇴근을 했다.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내 퇴근인사에 당시 그룹장(팀 아래 더 작은 업무그룹의 장)은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게 뭐지??’하는 표정.

때로는 늦게까지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선배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신입사원 연수 때 회사의 교육에 대항해 노동조합에서도 짧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질끈 동여맨 빨간 머리띠, 조끼, 단결과 투쟁 등 낯선 모습과 용어들이었지만 그들의 교육을 통해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연구원이었지만 나는 노동자였다.

내 상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도 곧 자신들의 길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는 햇수가 늘어갈수록 내 퇴근시간은 상사들의 기대와는 반대방향으로 수렴해갔다. 회사에서 일한 지 3년 차 정도가 되었을 땐 난 거의 매일 5시에 퇴근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다. 상사와 갈등이 생겼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에 있는 9시간 동안(점심시간 1시간 포함) 회사가 요구하는 성과를 내겠다는 뜻을.

물론 이렇게 되면 회사에서 좋은 인사평가 점수는 물론이고 승진이나 업무 할당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전체 직원에게 점수를 매기고 일렬로 세우는 구조에서 직원들 모두는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상사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상사에게 고분고분하고 급하다면 밤늦게까지 일을 해주는 직원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모두가 경주마가 되는 것 같았다. 반년에 한번씩 받는 인사고과에 민감해져서 경쟁 트랙에서 점차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난 이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다만 회사에서 요구하는 가시적인 성과목표는 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면 중간정도 점수는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때론 중간 이하 점수가 주어지기도 했다.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순응’이란 노력점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노력이나 성과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의 평가는 아니었지만 경쟁 트랙에서 빠져나오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화나는 상황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나름의 타협이었다. 난 매일 소위 ‘정시퇴근’하는 아주 소수의 간큰 인간들의 선두에 섰다. 하지만 요즘 많이들 회자되는 ‘워라밸’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게 일과 삶의 균형은 맞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한다. 하지만 일 역시 삶의 일부일 뿐이다. 내 경우 점심시간을 빼고 하루 8시간을 노동하려면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해 최소 12시간을 써야 한다. 이 12시간은 오롯이 생계를 위해 들어가는 시간이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어렸을 적 들었던 말이 내게 해당되지는 않았다. 대학원 시절 전공에 거의 딱 맞는 분야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내’가 되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은 실험을 하고 결과를 내며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것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엔 내가 없어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 누구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조직에서 잠시 사용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고장나면 언제든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게다가 요즘엔 훌륭한 톱니바퀴들이 넘쳐난다.

때문에 생계를 위한 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가능하면 줄이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회사라는 곳에 내 몸과 사고력을 제공하고 그에 해당되는 급여를 받는 것이었기에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내맘대로 줄일 수 없다. 그나마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무슨 일을 하려고 ‘정시’에 퇴근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 저당잡힌 시간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을 뿐.

회사에선 이런 직원들을 두고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런 직원들은 관리자로 ‘성장’할 수 없다. 프로젝트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 더 빠르고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직원들을 가열차게 독려하는 ‘마름’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관리자가 된다. 그런 관리자들에게 나같은 존재는 매우 거슬리는 장애물이다. 자신의 일꾼들이 ‘정시’에 퇴근하는 나를 보며 딴생각을 하게 되므로.

주변 동료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대체로 ‘저러다 어떻게 되나 보자’ 지켜보는 쪽이 많았다. 자신들은 그럴 용기가 없다고도 했다. 최근엔 너만큼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그럴 때면 동료들에게 말해준다. 난 워라밸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난 일과 삶을 같은 선상에 놓지 않는다고. 일이 엄청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은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회사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5시에 함께 퇴근하는 동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주 가끔씩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을 때 보면 이젠 7시 이전에는 모두들 퇴근하는 것 같다. 10년 이상 꾸준히 나홀로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고 15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주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려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일하는 매우 상황 좋은 일부 노동현장 기준으로.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