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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회사일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는 이유 본문
회사에서 동료들과 한담을 나누다 로또 1등이 되어도 회사는 계속 다닐거라 농담을 하곤 했다. 직업으로 혹은 직장에서 하는 일에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진담 섞인 농담에 주변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던 것을 보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들 일에 돈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거나 찾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르게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얼마나 고민하며 선택한 진로인가! 선택하는 중간 중간 우연과 운, 그리고 충동이 상당부분 개입하기는 하지만 진로 선택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외적으로 운이 좋은 경우엔 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이 운 좋은 경우에도 회사에 있다보면 일에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일은 가치가 있다. 작게는 한 사람 크게는 한 가정의 삶을 지탱해주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돈만 보고 선택하지는 않았다. 매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의도보다는 우연과 운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공과 직업(연구원)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이왕 할거라면 일을 통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랬다.
당시에 열심이던 개신교 교회에서의 가르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내적, 외적 부르심(소명)에 반응하라는 어찌보면 신화적 가르침 아래에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이같은 가르침에 아주 일부만 동의하게 되었지만 진로를 선택할 시기엔 이런 류의 의미를 추구했었다. 나의 일과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랄까. 일종의 자기합리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의미와 재미가 있었던 시절, 그러나...
배출가스를 만들지 않고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학교에서 공부했고, 회사에 와서도 운좋게 같은 분야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입사해서 처음 몇 년 동안은 환경오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회사에서 하는 일들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특히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단계일 때는 점점 완성되어가는 제품을 보면서 일하는 보람도 느꼈다.
완성품에서 꽤 비중있는 부품에 적용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매일 반복되는 실험과 마뜩찮은 결과 속에서도 일하는 게 재미있었다. 일일 8시간 노동을 원칙으로 삼아 눈총을 받으며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던 나였는데 어떤 날은 실험결과가 궁금해서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하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제품이 회사에 당장 이윤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었다. 회사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내가 속한 부서를 꽤나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회사 내 타 부서에 비해 여유가 있기는 했으나 미래에 대한 투자라 할지라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연구소이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상당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어느 부서든지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부서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은 해가 지날수록 성과(기술개발, 개발된 기술의 제품적용, 제품 시장출시)에 대한 압박을 더욱 심하게 받았다. 특히 기술개발이든 판매할 제품을 개선하는 일이든 ‘가능한 빨리’ 해내야 했다. 미래 기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분업화와 기능화가 초래한 부작용
가장 먼저는 일하는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전하고픈 의지가 일어나게 하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맞추어져 있던 업무의 초점이 개발한 기술을 제품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초기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창의적인 활동이 허용되었으나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 지금은 새로운 시도는 장려되지 않는다.
일의 내용과 함께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기술을 개발하던 초기에도 하는 일이 분업화되어 있기는 했지만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도해서 해당 기술을 완성하는 데 시제품 제작과 시험평가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업화가 더 심화되고 기능적으로 바뀌었다.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인원도 늘어감에 따라 연구원들이 전체 프로젝트 과정 중 매우 한정된 부분에만 참여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일할 때 자율성을 발휘할 공간은 크게 줄어들고 규격화된 업무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다양한 경험의 기회는 줄어든 반면 주어진 것을 반복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맡겨진 일을 해내는 데 그 동안 공부하고 습득한 지식들이 크게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일정한 시간을 들여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그 일을 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해내는데 그게 굳이 나일 필요가 없어졌다. 공학 분야의 평균적인 지식만 있다면 누구라도 와서 일할 수 있게 되자 일의 가치가 떨어졌다. 심한 비유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 안에 갇혀 습관적으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기능화된 반복적인 노동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노동시간은 반복되는 업무를 해내며 하루 하루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수 많은 일들이 아마도 이럴 것이고, 어떤 일에서 매 순간 의미를 찾고 그 일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효율과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은 일에서 활기와 보람을 앗아간다. 주어진 과업을 해내고 작업 시간이 끝나면 그 공간과 시간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만 그득하다.
일에서 열정을 앗아간 아부하는 관리자
일의 내용과 방식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의 의미와 가치를 퇴색시키는 또 다른 원인은 조직 내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싸움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개인과 부서들의 성과를 상대적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조직에서 소위 잘 나가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실력을 갖추거나 아부력(상사와의 관계에서 좋은 이미지 만들기)을 갖추거나.
그런데 실력(우리 회사의 경우 아이디어 발상과 구현)을 키우는 일은 아부를 잘 하는 것보다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든다. 어떤 경우엔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없기도 하다. 때문에 관리자들 중에는 상사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상대우위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런 활동은 주로 회식 후 등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곤 한다.
하지만 아부력을 갖추려는 마음은 회사에서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리자들은 일단 일의 중요도보다도 당장 이슈가 되는 일들 혹은 상사가 관심을 갖는 일들을 최우선으로 추진한다. 하는 일이 지금 당장 자신을 실력있어 보이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온통 상사에게 자신을 어필하는데 활용되는 자원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의미를 부여하기가 무척 어렵다. 같은 조직 내 부서 간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하기에 때로는 내가 하는 일이 상대 동료의 성과를 깔아뭉개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부력을 우선시하는 관리자 아래에서 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열의를 다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 하루의 노동시간이 어서 빨리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꿈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삶에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시간을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버텨내야 하는 게 슬프고 고통스럽다. 시장에서의 경쟁, 생존 혹은 승리라는 정체도 불분명한 목적 아래 사람들을 끊임 없이 압박하는 자본주의 구조에 속해 있는 회사의 일은 나에게서 일하는 기쁨과 보람을 앗아간다.
요즘엔 회사 일을 하면서 재미나 보람 따위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도 많이 접한다. 시간과 노동력을 돈과 바꾸는 단순한 계약 관계로 일을 바라보라는 쿨한 제안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짜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재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포기할 수가 없다. 너무 이상적인 꿈일지 모르겠으나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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