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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휴직중인데 왜 회사단톡방을 나오지 못하지? 본문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요즘엔 일터에서도 스마트폰은 일상이다. 이름처럼 일터도 ‘스마트’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은 일터에서의 의사소통에 비중있는 역할을 한다. 특히 그룹대화가 가능한 메신저 어플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 단체대화방은 일터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된 소통도구가 되었다. 스마트폰 안에 카카오톡 단톡방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처음엔 친한 동료들 몇몇이 단톡방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식사모임 의견수렴, 회사 소식 공유, 상사나 주변사람 욕 등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초대한 업무용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조직구성원들 모두에게 공지사항을 전하거나 업무 지시를 하기엔 아주 편리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업무용 단톡방을 처음엔 그리 탐탁해하지 않았다. 단톡방에서 수시로 이뤄지는 업무지시는 조직장 입장에선 편할지 몰라도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구성원 입장에선 부담이었다. 처음 단톡방에 초대되었을 때 나는 전체 공지만 확인하고 바로 단톡방을 나왔다. 내가 단체 대화방을 나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상사는 조용히 나를 불러서 왜 그랬냐고 물었다.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업무지시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상사에게 말했었다. 상관도 없는 팀원들까지 업무지시를 왜 공유해야 하느냐 항의를 했었다. 상사는 단톡방에 한마디 업무지시를 하면 끝이지만 지시를 받는 사람들은 매번 단톡방을 주목해야 한다. 언제 내게 지시가 내려올 지 알 수 없기에 수시로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하지만 이런 나의 저항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구성원 모두가 있는 단톡방의 편리함을 나역시 거부할 수 없었다. 공지나 업무 지시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과제의 경우 구성원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혼자서 처리하는 것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협력할 수도 있었다. 모호한 업무 지시에 구성원들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해야할 일이 명확해지기도 했다.
결국 이런 편리함 때문에 회사에서 사용하는 단톡방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조직장도 포함된 조직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업무용 단톡방에다 조직장을 빼고 운영되는 조직구성원들의 실무를 위한 단톡방, 기존에 있던 마음 맞는 동료들과의 단톡방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단톡방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다.
업무용 단톡방에는 각종 경조사 공지, 업무상 필요한 정보 공유, 상사의 업무 지시, 업무 결과에 대한 공유, 회식 일정 및 메뉴 투표 등의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가장 작은 조직단위가 최소 십여 명, 많게는 이십 여명 이상으로 구성된 회사 특성 상 모든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단톡방은 꽤 효율적인 도구다. 사실 업무시간 이외에 업무지시만 없다면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
처음 업무용 단톡방을 만들었던 상사도 업무 시간에만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 일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급할 때는 업무 시간 이외에도 업무용 단톡방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오곤 한다. 불만은 있지만 조직을 떠날 마음이 아닌 이상, 그리고 아주 늦은 시간에 회사에 와서 일하라는 업무 지시가 아닌 이상 단톡방의 메시지들을 읽고 넘기곤 한다. 그래도 업무용 단톡방은 존재 자체가 은근한 스트레스다.
그런데 지난 해 말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어 급히 수술을 하고 몇 개월 동안 회사를 쉬어야 했다. 휴직을 하기 전 담당하고 있던 업무들은 동료들에게 인계했다. 한창 하기 싫었던 잡무들을 동료들에게 떠맡기려니 미안하기도 했으나 잠시 동안은 귀찮은 일들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공들이던 프로젝트를 다른 이에게 넘겨줄 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미안함, 시원함, 아쉬움이 섞인 감정을 뒤로 하고 잠시 일을 쉬고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 있음에도 그동안 스트레스가 되었던 단톡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휴직을 할 땐 회사일은 홀가분하게 툴툴 털어버리고 잊고 있다가 건강을 회복한 후 돌아갈 거라 생각했었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몇 개월 후에는 회사로 돌아가야 하기에 마음 편히 회사일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휴직 중임에도 업무용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하고 있던 일에 대한 감각을 잃을까 불안해져서 단톡방 대화라도 따라가며 진행되던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지 수시로 지켜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론 회사에서 자리를 비운 동안에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하던 일들을 인계받은 동료들이 하고 있기에 회사에 돌아가면 다시 그 일을 하게 될 수 있을지 염려된다. 물론 휴직 전에 하던 일이 정말 하기 싫었다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일이었던 것을 그 동료가 나보다 더 잘 하고 있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있다.
때문에 내가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단톡방에 오갈 때면 한 두 마디 거들게 된다. 어찌보면 휴직을 하고 있어도 조직구성원들에게 나의 존재와 역할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며 간청인 것 같기도 하다. 휴직을 하기 전엔 동료들의 물음이 귀찮기도 했는데, 내 일을 인계받은 동료가 단톡방에다 내게 질문을 하면 이젠 그 물음이 반갑기도 하다.
일터를 떠나 있음에도 업무용 단톡방을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회사라는 존재의 구속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입사 초기엔 ‘이 회사 아니면 회사가 없나?’라는 말도 주저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새 회사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가 되어 아래로는 도약하는 후배들, 위로는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선배들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회사에서 전문성과 역량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선후배 중간에 끼어 나의 위치와 역할이 불안해지는 시기이기도 한것 같다. 이런 때에 회사에서 자리를 비우고 있기에 일을 쉬고 있음에도 일이 쉬어지지 않는다. 휴직 기간이 좀 더 길어지면 이와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까? 아마도 기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회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업무용 단톡방에서도 발을 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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