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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우리는 모두 죽어요.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 본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려서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1년, 6개월, 아니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병상에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붙잡고 치료를 받으며 살아갈까, 아니면 병원을 나와 고통을 견디며 죽음이 찾아올 때를 기다릴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햄릿이 했던 저 말을 되뇌일 것 같습니다. 선택지가 많지도 않고 어떤 선택을 해도 고통스러울 듯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주어집니다. 다음달 4일부터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법의 틀 안에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을 2월 4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일명 존엄사 법이라고도 부르는 이 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지난 해 복지부에서는 1개월 동안 시범사업을 벌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7명이 존엄사를 선택했고, 2천여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한달간 7명 ‘존엄사’선택했다…복지부, 연명의료 시범사업 중간보고, 경향신문 ‘17.11.28일자) 이 법을 만들고 시범으로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사람이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자살, 조력자살, 안락사, 존엄사의 의미와 방법 등 세부적인 항목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문제들이 논의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일단 ‘연명의료결정법’이라는 큰 틀은 마련한 셈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에 이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법의 오류나 문제점 등이 발견될 것이고 논의를 통해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쳐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죽음과 관련된 생각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존엄사? 그게 뭐지
존엄사를 시행하기로 한 우리 사회에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책이 존엄사를 바로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죽음과 ‘죽을 권리’와 같은 근본적인 생각거리도 던져줍니다. 이 책은 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의사가 2014년 가을 미국에서 있었던 안락사 보도를 기초로 일본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자가 공중에 퍼져 사라질 강의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거리를 준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삶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을 맞는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죽음을 존엄, 안락, 평온이라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논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10-11쪽)
저자는 크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안락사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존엄사 안락사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당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죽을 것이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 지 모르기에 평소에 죽음은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일”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오만가지 염려가 떠오르고 죽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죽고 싶은지 생각해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들은 ‘고통없이’, ‘평온하게’입니다. 제게도 죽을 권리가 있다면 평온한 죽음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한 죽음의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만 간단히 살펴보죠.
-안락사: 가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죽게하는 일(일본)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표준국어대사전)
-존엄사: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는 일, 혹은 맞도록 하는 일. 현대 의학의 연명 기술 등이 죽음에 임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무시할 수 있다는데 대한 반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일본)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견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안락사에도 의사가 직접 약을 주입해 죽게하는 방법과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죽음의 방식에 차이가 있고, 이러한 방식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느냐는 나라마다 또 나라에 속한 지역마다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 시행하게 되는 존엄사 법에도 구체적인 사항들이 명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자 본인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죽을 권리라는게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요?
죽을 권리가 있는가
저자는 독자들에게 죽을 권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으며 죽음이 개인적인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라면? 내 부모님이라면? 안락사를 선택할 것인지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1975년 미국에선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던 딸의 부모가 호흡기를 제거하게 해 달라는 소송으로 딸의 호흡기를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식물인간 상태로 약 9년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안락사 선택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미리’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해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합니다. 저자는 일본존엄사협회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이 불치 또는 말기 상태가 되었을 때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제 죽음을 어렵게 결정해야 할 가족들을 위해서요.
죽을 권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난 것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면 조금은 이기적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부모도 국가도 성별도 모두 내가 선택하지 않았죠.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식으로 죽을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를 모두 본인이 정하려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94쪽)
우리는 모두 죽어요. 어떻게 죽으실래요?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합니다. 사람은 치사율 100%입니다. 모두가 죽습니다. 임종기가 있는 죽음도 있고, 돌연사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도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혼의)을 동반하는 죽음도 있고 잠들 듯 평온한 죽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르듯 죽음의 모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 죽음이라는 두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 가족, 행복, 존중, 존엄, 자기 결정권의 범위 등 보다 확장된 주제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존엄사 법 시행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법을 시행하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들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참으로 냉정하고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구에게는 서서히 찾아와 마음의 준비도 시켜주고, 누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다가와 단번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어 놓는다. 수만 가지 죽음의 모습 중 나는 어떤 모습을 희망하는가 생각해 본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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