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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위대한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과 조언 대공개 본문
레고 블럭을 가지고 무언가 만들어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레고 블럭은 어린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장난감 중 하나일 겁니다. 레고는 생활용품, 건축물, 자동차 등 특정한 카테고리의 제품에서부터 영화 등을 주제로 한 세트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자랑합니다. 레고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미리 정해진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도 난이도가 있어 재미있고,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나름의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진정한 레고의 묘미는 특정한 유형이 없이 거의 무한한 조합으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클래식 블럭에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저도 장난감 상자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블럭을 꺼내봅니다. 그렇지만 막상 뭘 만들려고 하면 막막합니다. 이리 저리 블럭을 끼워가며 모양을 만들어보지만 상점에서 보던 멋진 작품들과는 한참 동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생각하던 모양을 완성하고 나면 설명서를 따라서 만든 작품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 있습니다.
백지 혹은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뭔가를 쓰려고 할 때 느끼는 막막함이 기본 레고 블럭을 꺼내놨을 때와 비슷합니다. 이 막막함을 해소해 보고자 글쓰기 방법 혹은 기술을 알려주는 책들을 찾아 읽곤 합니다. 글쓰기 안내서들을 읽을 땐 책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글을 술술 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마치 특정한 테마가 있는 레고 블럭을 가지고 설명서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은 왠지 내것 같지가 않습니다.
뭔가 다른 글쓰기 안내서를 찾다가 기본형 레고 블럭 상자와 같은 책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존 워너커가 428명의 작가, 편집자, 에이전트, 출판계 종사자들이 했던 글쓰는 삶에 대한 조언들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표지를 보면 원고지 칸 같기도 하고 타일 조각 같기도 한데 책을 읽고 나니 레고 블럭과 더 비슷합니다.
이 책은 35개의 큰 블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물, 동료작가, 비평&비평가, 대화, 좌절, 술, 편집&편집자, 용기, 장르, 문법과 용법, 글감, 돈, 작가라는 직업의 위험, 표절, 플롯, 문학상, 과정, 홍보, 출판&출판사, 문장부호, 자질&자격, 독자, 독서, 원칙, 비결, 스타일, 성공&실패, 기법, 요령, 왜 쓰는가, 단어, 글 쓰는 습관, 작가의 벽, 작가의 삶, 조언. 이 블럭들은 여러 유명 작가들이 남긴 말들로 이루어진 수십 여 개의 작은 블럭들로 구성됩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을 위한 기본형 레고 블럭 시리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옮긴이 한유주님이 ‘글쓰기에 아무런 원칙이 없기에 글쓰는 사람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도 하지만 시작하지도 끝을 맺지도 못한 채 포기하기도 한다’고 쓴 것처럼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막막함’일 것입니다. 이 책은 테마가 있는 레고 제품처럼 글쓰기의 원칙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을 앞두고서도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본 레고 블럭을 다루듯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만년필로 쓰든, 워드프로세서로 쓰든, 글쓰기란 결국 방 안에 홀로 앉아 자신으로부터 쥐어 짜내는 것이다. 누구도 이 일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수많은 시도와 실패 속에서 도무지 글쓰기에 몰두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작가로 거듭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으며, 어느 순간 자기의심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이럴 때 필요한 건 스승들이다. 즉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 시, 희곡, 전기 등을 읽으며 글쓰기를 배우면 된다.”(13쪽)
엮은이 존 워너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남긴 말들 수백 건을 이 책에 모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버트런드 러셀, 스티븐 킹, 아이작 아시모프, 안톤 체호프, 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 괴테, 셰익스피어, 존 스타인벡, 줄리언 반스, 찰스 디킨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F. 스콧 피츠제럴드, T.S. 엘리엇 등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작가들에게서 글쓰기를 배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작가처럼 읽어야 한다. 보통의 독자는 재미나 정보를 구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책을 읽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목적 외에도 기법과 기교, 수완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중략) 어떻게 보면 저주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는 결코 책 속에 푹 빠져들지 못한다. 텍스트에 굴복하기는커녕 불신을 완전히 거두는 법이 없다. 작가는 언제나, 읽고 있을 때조차도 늘, 관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3-14쪽)
존 워너커는 작가(writer)와 저자(author)를 구분합니다. 저자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말하지만 작가는 ‘자기 자신을 쥐어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예술가’이자 ‘그 사람 자신’입니다. 그는 또 ‘모든 사람이 저자가 될 수는 있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기에 작가는 희소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책을 읽을 때에도 관찰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책을 읽을 때 재미, 정보, 위안을 넘어서 글쓰기를 배우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네요.
글을 쓰는 사람 혹은 글쓰는 것과 관련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언제나 손에 잡히는 가까운 거리에 두고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특히 글을 쓰는 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거나 글을 쓰다 높다란 장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 가볍게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다만, 40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조언들이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생각이 많은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는 ‘대화 쓰는 법 1, 2, 3..’, ‘명료하게 쓰는 법’, ‘탐정 소설을 위한 십계명’ 등과 같이 글쓰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에서부터 ‘대개의 경우 시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란…가급적 적게 쓰는 것이다’, ‘경험을 들이마시고 시를 내쉬어라’ 등의 격언 같은 조언까지 다양합니다. 때문에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서부터 SNS 등에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겐 인물, 대화, 장르 편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출판을 앞둔 작가라면 비평&비평가, 편집&편집자, 홍보, 출판&출판사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읽어보면 좋습니다.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면 좌절, 용기, 장르, 돈, 작가라는 직업의 위험, 표절, 독자, 왜 쓰는가, 글쓰는 습관, 작가의 삶, 조언 편에 무게를 두고 읽어보시기를. 마지막으로 문법&용법, 글감, 플롯, 과정, 문장 부호, 독서, 비결, 스타일, 기법, 요령, 단어, 작가의 벽 편에 있는 조언들에서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기술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어서 찾아 읽던 정형화된 글쓰기 설명서 혹은 안내서들에 지루함을 느낀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을 엮은이도 썼지만 이 책이 글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고라 인정받는 작가들이 남긴 한마디 한마디를 읽어가면서 옮긴이의 바램처럼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마다, 인물이 지루하게 보일 때마다 용기를 얻어 자신만의 글을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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