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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평등 문제의 해법, 남자가 아내되기

초원위의양 2017. 11. 12. 21:50

아내 가뭄 

작가
애너벨 크랩, 정희진
출판
동양북스
발매
2016.12.1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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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 공고]

 

- 담당직무: 생기 넘치지만 종종 정신없기도 한 환경에서 활달한 소규모 팀 이끌기

 

- 팀원성향: 변덕이 심하고 옹졸하기도 하며 대놓고 반항을 하는 경향이 있음

 

- 지원자 요건

1.참을성

2.청소, 세탁, 학습지도, 유지보수, 온갖것 조달업무, 안전/보건, 작업치료, 영양, 도덕적 지침과 상담, 교통편의 제공, 기술교육, 팀 내 인적 자원 관리, 아웃소싱, 멘토링, 중재, 교육과 위생 책임

3.탁월한 운동 조절 능력과 침착한 성격 필수

4.기초적 가정용품으로 10분 안에 그럴듯한 배트맨 의상 만들 수 있는 능력

 

- 참고사항

1.반복 업무를 해야 할 때가 많음

2.정식 업무 평가는 없지만 절망적 순간에 지원자가 정기적으로 자체 평가를 할 수도 있음

 

- 급여: 없음

 

이 구인공고에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합니다. 여성이 거의 대다수인 ‘아내’들입니다. 호주의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은 책 <아내가뭄>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의 원인이 가사 노동 불평등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 구인공고와 같은 일을 해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남성들이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다양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보여줍니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이는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공통적인 경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양성평등 혁명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주로 ‘유급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기업의 계산 장부 한쪽에서만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에게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만약 두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40쪽)

 

성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일터로 끌어들여 주류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 아니라 남성을 일터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애너벨 크랩이 썼듯이 지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58쪽) 모두가 패자인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가정 내 노동 세계에 남성들이 진입하지 않았기(혹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남성들에겐 가사 노동을 권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선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봅니다. 가족을 돌보려는 남성들은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 방법의 관점을 여성의 사회진출에서 남성의 가정 진입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주의 남성들이 결혼 프리미엄을 누려왔다고 했는데 지구 반대편에 살아가는 저 역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결혼한 남자를 더 능력있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아내가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면서 남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낳아주면서 남자들의 노동 능력을 향상시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로 남자들이 유급 노동을, 여자들이 무급 노동을 담당한다. 그래서 남편들은 일터에서 더욱 잘나가게 되고 지루하고 고된 그 모든 허드렛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깔끔하게 정리된 가정에서 영양가 높은 음식, 깨끗한 옷, 안정감과 목표 의식, 아이들, 엘리베이터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상사와 무리 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 등을 모조리 얻는다. 그동안 이러한 합의를 통해 밥벌이에 나설 필요가 없어진 아내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예회가 오늘 밤인지 다음 주인지 알아두고, 우유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등 무급 노동에 능숙해진다.”(175쪽)

 

우리는 은연 중에 남자와 여자가 각각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여성스러운 일, 남성스러운 일’ 등에 대한 편견, 여성의 최우선 순위는 집이라는 편견,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는 게 더 낫다는 편견 등을 꼬집습니다. 이와 같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한다는 식의 관습적인 행동 패턴은 남녀 모두를 괴롭힌다. (중략) 일반적으로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혹시 여성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의심이 든다면, 텔레비전 광고를 한번 보라. 바닥 세제, 화장실용 세제, 유리창용 세제, 지퍼백, 기저귀, 아기용 물티슈, 분유, 식빵 광고에 거시기가 달린 사람이 나오던가?”

 

“그런데 여자들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부분 여자 잘못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거나 집이 더러우면, 부주의하다면서 여성을 맹비난한다. 여성과 남성이 청결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12쪽)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가사 노동에 조금이나마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내의 높은 기준을 언급하며 불평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집안일을 주로 하게 되는 아내의 기준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에게 기준을 맞춰달라는 요구가 아내에겐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자가 육아를 더 잘한다? 여자가 아이를 기르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그래서 ‘여자가 육아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도 편견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도 그런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여자가 혹은 엄마가 육아를 더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는다”, “여성이 능력치를 쌓을 기회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다.”는 저자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빠를 육아 젬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의 제도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노르웨이는 1993년 표준 유급 육아휴식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만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도록 법을 정했다. 이 제도는 부모기 초기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생계부양자라는 기존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노르웨이는 재정적 혜택을 ‘안쓰면 소멸하는’ 식으로 바꿔서 휴직을 하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보게 한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몇 주 동안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 충동과 실천하는 아버지 노릇이 대개의 경우처럼 충돌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257-258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여성들에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은 가정에서의 역할을 감당할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위치로 갈수록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만큼 늘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책의 주된 주장과 같이 이젠 남자들이 변화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러려면 남성들도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느꼈던 혼란스러움 혹은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요즘의 남자들은 가족을 보호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는 구시대의 역할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강할 때는 강해야 하는 요구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남자들은 저자가 제안하는 것과 같이 “삶의 짜임새를 바꾸고 성공이란 무엇이며, 좋은 아버지란 무엇인지, 좋은 노동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가늠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지도”(403쪽) 모릅니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저자의 주장을 기초로 남자들의 논의와 실천이 활발해지는 것을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거다. 우리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일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고민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수년 동안 여성을 리더의 자리로 올리려고 할당제니 차별 철폐 조처니 온갖 보조적인 수단을 두고 왈가왈부했지만, 그동안 등식의 나머지 반은 간과했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열심히 독려할 뿐, 남성에게 가끔 뒤로 빠져도 괜찮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남성들(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직장 세계 전체를 얽매고 있는 남성에 대한 기대감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있는)이 아마도 변화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4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