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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2016년에도 살아남을까?

초원위의양 2016. 12. 8. 22:08

<김용민 브리핑>에 출연한 인권운동가 고상만 반장이 김기춘에 대해 말해줬다. 박근혜를 앞세워 권력을 누리는 세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아주 조금씩 그 세력들이 누구였는지 밝혀지는 듯 하다. 그 중 한 명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최근 청와대 전 민정수석으로 일했던 고 김영환씨의 비망록이 언론에 입수되면서 김기춘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매번 법망을 피해 무혐의 처분을 받아왔던 김기춘이 이번엔 어떻게 될까?


김기춘은 1939년 11월 경남 거제 출생으로 거제에서 세 번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1960년 대학 3학년 재학중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을 정도로 영민했다고 한다. 1964년부터 광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공직상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장관급으로만 17년 공직을 하고 있다. 현재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1972년 법무부 검사에서 중앙정보부로 파견임무행하던 김기춘을 박정희가 눈여겨봤다고 한다. 이후 박정희는 김기춘을 김똘똘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일을 맡기면 자신의 입맛에 잘 맞게 처리하고 나중에 자신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었다고.


김기춘은 1972년 10월 유신악법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당시 김기춘은 자기 기수보다 3-4단계 높은 선배그룹을 제치고 과장급으로 승진을 하기도 하는데 유신악법 기안에 실무자역할을 한 덕분이었다고 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신악법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곳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법이었다. 또한 대통령이 국회위원 3분의 2를 뽑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삼권분립을 유린하는 법이었다. 김기춘 자신도 유신악법 기안에 기여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을만큼 진짜 악법이었다.


김기춘이 박근혜의 깊은 신뢰를 받았던 사건 중 하나는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의 범인처리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형을 당한 문세광이 진범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문세광이 쏜 총알은 모두 다른 곳에 박혀있다는 것이 확인된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기춘은 이 사건을 담당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던 문세광에게 단 하루만에 자백을 받아내 처리했다. 


박정희와 육영수는 박정희의 여자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하는데. 1971년 3선 개헌을 통해 박정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되는데 이때 김대중에게 밀리고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가 선거운동을 위해 대전엘 갔는데 여길 육영수가 말없이 따라갔다고 한다. 육영수가 대전에 도착해 박정희가 묵는 호텔에 갔는데 박정희가 어떤 여배우와 속옷만 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박정희가 재털이를 던지며 육영수에게 화를 냈는데, 재털이가 육영수 머리로 날아가 육영수가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이런 이유로 심하게 다투는 박정희 육영수 관계를 고려할 때 문세광 사건이 순수한 우발적 사건인가라는 논란이 많았는데, 이 문제를 김기춘이 깔끔하게 정리해줬다는 것이다. 


고상만 반장의 말에 따르면 문세광이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그의 일본인 약혼녀가 면회를 왔는데, 그 때 문세광의 태도가 특이했다고 한다. 문세광은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하고, 약혼녀에게 일본에서 자신들이 살 집을 알아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이후 사형을 당하기는 했지만 왜 죽기전 사형당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의혹으로 남아 있다. 문세광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기춘의 대표 악행 중의 또 하나는 1992년 부산 초원복국집 부정선거 모의 사건이다.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 선거에 현재 새누리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 김영삼, 민주당 김대중, 통일국민당 정주영이 후보로 나왔었다. 당시 김영삼 당선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 초원복국집에 김기춘과 사람들이 모였다.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기춘, 당시 부산직할시장 김영환,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이규상,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용(이후 경찰청장 역임), 부산지방경찰청 검사장 정경식, 부산직할시 교육감 우명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박남수가 모여 나눈 대화를 통일국민당 관계자가 전직 안기부 직원과 공모해 도청을 하고 언론에 폭로했다.


김기춘: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야당에서는 선거운동에 대해선 강경하지만 당신들이야 지역발전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좋고. 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박일용: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김기춘: 민간에서 하여튼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돼.


우명수: 우리는 지역감정이 일어나야 해


이같은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당선된 김영삼은 당선 후 언론과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 초원복국집 부정선거 의혹 처리는?


김영삼: 처음 그 보고를 받고난 후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밝혀내겠다. 누가 이러한 도청행위를 했는지 반드시 밝혀서 처벌하겠다.


고상만 반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당선되는데 도움을 받았던 김영삼은 도청행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처벌했고, 그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지 않았다.(박일용은 김영삼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함) 게다가 도청행위에 대한 처벌법도 만들었다고. 부정선거 주도자 김기춘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박근혜 2대 비서실장도 했다. 

김영환 비망록에 의하면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질장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박근혜에 저항했던 모든 세력을 응징하려했다. 김기춘은 응징과 제재,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응징이 체감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헌법재판소에 김기춘이 개입한 의혹이 있으며,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에도 개입해 삼권분립을 위한한 행위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세월호 7시간, 언론통제, 정윤회 문건 조기 종료, 문화예술계 탄압에도 김기춘 배후설이 제기되고 있다 말한 바 있다. 추 대표는 최순실에 이은 제2의 국정농단을 저질러 왔던 김기춘은 구속해야 한다 주장하기도 했다.


명백한 부정행위를 저질러 왔으나 기소된 경우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단 한번도 처벌받지 않았던 김기춘. 2015년 성완종 자살 사건 시 성완종이 김기춘에게 10만불 줬다는 메모로 인해 당시에도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되었다. 형사처벌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김기춘은 2016년 현재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