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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정직이 최선일까?

초원위의양 2016. 3. 14. 21:50

Harvard Business Review싸이트에서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옮겨본다.
이 글은 HBR 블로그에 Michael Schrage가 쓴 글이다.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해도 될까요? 아마도 당신은 아니라고 대답하겠지요. 미안하지만 한가지 질문을 더 해 보겠습니다. 당신은 상사에게 손해가 되는 사실을 숨기실건가요? 제가 추측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옳다고 하는 판단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직함 일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끝을 맺고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유토피아인들에 의해 투명함의 미덕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온 이유입니다. 조직에서의 사회적 연결망은 좋은 의도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투명함이 커질수록 더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직업적 사생활과 개인의 투명도 사이에 있는 적당한 긴장관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고결,정직함을 투명함과 혼동하는 것은 재난을 일으킨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채용담당자가 지원자의 페이스북에 있는 어떤 것을 보고 그것이 지원자의 직업적 적합성에 흠집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적합했던 고용 후보자가 채용에서 제외되었던 불행한 이야기를 최소한 하나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의견, 술취한 사진, 구글이나 빙(Bing)을 통한 노골적인 블로그 일 수도 있습니다. 불공평하다구요? 비합리적이라고구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내일의 기준이 됩니다.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장래의 고용주들이 그들을 구글링하거나 페이스북 자기소개 페이지를 판단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고 합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디지털적으로 숨기는 것이 오해하게 하거나 부정직하거나 비윤리적인것이 아닌가요?

  블랙베리와 항상 끼고다니는 휴대전화가 개인적영역과 직업적영역의 접근용이성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린것과 같이 사회적 미디어는 동료 및 상사에 대한 타고난 크리프 요인을 갖게 합니다. 당신 상사의 상사가 페이스북에서 당신과 친구 맺기를 요청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당신은 어떤 부하직원의 초대에는 응하고 다른이들의 초대에는 응하지 않을 건가요? 최근의 한 조사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사가 친구되기를요청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객이라면 어떨까요? 전도 유망한 리더라면? 정말로 당신은 당신의 상사가 당신이 뜨거운 기대를 갖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위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나요? 혹은 당신은 LinkedIn 에 빠져있나요? 만약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당신의 최고 고객(당신은 사적인 것과 직업적인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친구되기를 거절했던 고객)과 친구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비밀이야기가 없는 것이 위선적인 이중 잣대인가요? 부정직한 것인가요?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당신과는 상관없는 것인가요?

  이제 가정에서 현실로 돌아가봅시다. 포춘20대 기업의 부서들은 시간계획 및 회의를 위해 웹기반의 일정관리 포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계급조직에서는 상사들이 당신 일정표에 빈 곳이 있으면 그 시간을 잡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왔습니다. 과도한 일정에 짜증이 난 부하직원들은 상사들이 자신들의 일정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허위 미팅을 점점 더 잡아 놓게 되었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상사들은 이것이 핑계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비정한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의 일정표에 우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적 선택권을 원하기도 합니다. 약간 더 친절하고 신사적인 그룹은 허위 미팅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냄으로써 속이는 부하직원들이 돌아오도록 제안하기도 하죠. 직면과 대응이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잘못한 쪽은 누구인가요? 교활한 부하직원인가요? 아니면 거부할 틈을 주지 않는 상사인가요? 아니면 이렇게 불가피한 분쟁을 일으키게 하는 시스템을 설계한 프로그램 설계자인가요?

  이러한 것들은 도덕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비지니스적 문제이기도 합니다.투명함을 지향하는 것은 정중하게 숨길 수 있는 가치 또는 인식의 충돌을 불러일으킵니다. 속되게 말하자면 회의에서 누가 방귀를 뀌었는데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방귀 뀐 사람이 누구인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너무 많은 정보' 라는 어구가 대중적으로 즐겨 사용되는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일터에 리얼리티 티비의 정서를 도입하는 것은 극적인 기분전환을 위해서는 훌륭하지만 그것은 해로운 기분전환이 될 것입니다. 더 솔직하고 투명한 것에 대한 병리적인 편향은 비지니스 초점을 임무 또는 목적에 집중할 수 없게 하고 개인간 마찰을 일으키는 가치, 인식, 처리 방식의 차이를 불가피하게 증가시킬 것입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되어서 서로서로 투명하게 연락을 주고 받게 된다면 우리가 정말로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동료, 또는 더 생산적이 될까요? 많은 일화적인 데이터와 사람들의 사회적 미디어에 대한 증가하고 있는 회사의 감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터에서 투명함의 이익이 투명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보다 더 크다는 인식은 경험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입니다. 가장 어려운 관계 중의 몇몇은 가장 잘 아는 사람들과 또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죠. 우리는 더 투명한 것이 그러한 현실을 다루는데 최선의 접근 방법이라 믿나요? 악화된 직업상 관계를 건강하게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업적, 윤리적 행동을 흐릿하게 취하는 것입니다.

  투명함은 마술처럼 조직을 더 평등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균형한 권력과 더 확실한 계층구조를 만들어내지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행하는 능력이 힘이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지원자들은 노골적인 페이스북 사진이나 장래 상사로부터의 과격한 블로그 의견에 의해 덜 방해를 받을 것 같습니다. 기술에 의해 매개된 투명함은 권력을 얻기 위한 여정에서 더 높은 개인적 성취에 대한 약속을 빗나가게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있을까요? 물론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인류와 조직의 상황 사이에 본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단순히 그것의 예외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비춥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페이스북이나 다른 인터넷 기반의 일정관리 프로그램을 금지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당신이 책임질 수 있을 만큼 투명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