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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40주년] 역사적 순간 40장면 (01) 본문
애플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되었다. 애플의 여정은 가정집에 세운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파산과 싸우는 약소기업이 되었다가 지금은 2천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우뚝 선 거대기업이 되었다. 이 과정 동안에 애플에게 일어난 주요 이벤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애플 역사상 가장 중요한 40가지 순간들을 뽑아 보았다.
1. 애플 설립되다.
1976년 4월 1일 만우절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로날드 웨인이 공식적으로 애플 컴퓨터 컴퍼니를 시작한 날이다. 1977년 3월 1일까지는 주식회사가 아니었다.
2. 로날드 웨인이 자신의 애플 지분을 800달러에 팔다.
잡스와 워즈보다 나이가 많았던 로날드 웨인은 애플이 사업을 개시한 후 단 12일 만에 자신의 지분을 800달러에 팔고 포기했다. 웨인은 Cult of Mac과의 인터뷰에서 “난 40살이었고 그들은 20대였어요. 그들은 회오리바람있었어요. 전 예기치 않은 곤경에 빠진 것 같았어요. 애플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전 무덤 속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한 바 있다.
3. 애플 I
애플의 첫 컴퓨터 애플 I은 소량 만들어졌는데 악마같은 가격 666달러에 판매되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반복되는 숫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요즘 작동되는 애플 I은 90만달러 정도에서 경매가 이뤄질 것이다. 잡스와 워즈는 이것으로부터 가치있는 교훈을 얻었다. 애플 I은 요즘의 광택있고 멋진 애플 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4. 애플 II
애플의 첫 일반용 컴퓨터인 애플 II는 그 당시 혁명적이었다. 애플 II는 구입해 집에 가져와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의 하나로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흑백 모니터의 바다에서 애플 II의 컬러 그래픽은 진귀한 것이었다.
5. 애플 로고의 탄생
한 입 베어문 사과는 사실 애플의 두 번째 로고이다. 첫번째는 애플 I에 사용된 아이작 뉴턴의 목판화 스타일 로고였다. 이것은 1977년에 그래픽 디자이너인 Rob Janoff가 만들었다. 베어 문 자국은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던 앨런 튜링의 죽음을 나타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만큼 유명한 로고는 많지 않다.
6. 제록스 PARC 방문
만약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한 실험실이었던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에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적용되지 않았을 것이고 DOS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고 아이폰에도 자그마한 키보드가 들어가 있지 않을 것이다.
7. 애플 기업공개
1980년 12월 12월에는 애플의 IPO가 있었고, 이를 통해 잡스, 워즈니악 등 수 많은 백만장자들이 만들어졌다. 이 때까지 가장 규모가 큰 기업공개는 1956년에 있었던 포드의 공개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날 “이브가 사과를 먹은 이래로 이와 같은 유혹은 없었다.”고 썼다. 애플 주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많은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스톡옵션이 무르익는 것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볼 수 없었다. 애플의 엔지니어였던 Bruce Tognazzini는 자신의 감정이 다우존스와 묶여 있어 1년 여를 미친 것처럼 보냈다고 말한 바 있다.
8. 디스크 II
클라우드 서비스가 제공되고 아이패드 프로에 256GB 저장용량이 있는 시대에 애플 기기들에 저장 공간이 심각하게 부족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다. 디스크 II 5.2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는 애플 II에서 가장 중요한 보조장치였다. 이것은 저장을 위해 이전까지 사용되던 카세트 테이프를 대체했다. 디스크 II의 제조비용은 단 140달러였는데 판매가격은 495달러였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애플의 고수익 모델의 시작이었다.
9. VisiCalc
디스크 II가 애플 II의 핵심보조장치였다면 VisiCalc은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최초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를 그냥 멋진 장난감에서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보조기기로 만들었다. 결국 IBM PC같은 다른 제품에도 적용되었고 VisiCalc은 약 백만 카피가 판매되었다. 다른 제품에도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애플 II와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었다.
10. 리사(Lisa)의 등장
애플 리사는 1983년 1월에 처음 판매되었다. 이것은 실패작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애플에게 중요한 컴퓨터였다. 리사의 이름이 잡스의 딸 이름을 땄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리사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사용했던 최초의 애플 컴퓨터였다. 오늘날 오리지널 애플 리사는 경매에서 수만 달러 정도 가격이 되는 것을 보면 딱히 실패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To be continued..
출처: Luke Dormehl, 40 moments that have defined Apple over 40 years, Cult of M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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