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술에 찌들어 살 수는 없다 본문

맛있는 책읽기

술에 찌들어 살 수는 없다

초원위의양 2016. 3. 20. 08:19

술 권하는 사회

작가
현진건
출판
앱북
발매
2011.10.15.
평점

리뷰보기


  우리 선조들은 일본 식민지 시절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아니 그 시절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며 살았을까? 나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험난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살았던 현진건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 시절의 괴로움을 당대의 사람들과 나누려 했던 것일까? 술 권하는 사회라는 아주 짧은 글을 통해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식민지 조선에서 상당한 자산가의 자손으로 보이는 남편은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당시 식민지 하에선 술에 찌들어 살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어느 날 괴로움으로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당시 시대 상황에 민감하지 않아 보이는 아내의 물음이 그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한 모양이다. 아내와의 대화 중 남편은 자신이 왜 매일 매일 술에 취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해 준다.

 

  "(중략) 여기 회를 하나 꾸민다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 치고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그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아니하는 놈이 하나도 없지. 하다가, 단 이틀이 못 되어, 단 이틀이 못되어..(중략) 되지 못한 명예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가 적으니…… 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무슨 시업을 하겠소? 회(會)뿐이 아니라, 회사고 조합이고…… 우리 조선 놈들이 조직한 사회는 다 그 조각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보겠다고 애도 써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중략) 그저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꾼 노릇 밖에 없어"

 

  남편은 식민지 본국에서 공부해 얻은 능력을 자신의 조국을 위해 사용해보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나보다.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분열되어 각자의 유익만을 구하던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에 대한 실망과 자학적 관점이 드러난다. 무엇을 해 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모든 시도가 실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은 할 수 있는 것은 죽거나 혹은 술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 듯 하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일찍 포기하고 절망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의 답답함과 무력감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분열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내 온 그 구성원들의 심정이 이 남편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최근 극우화되어가는 정부와 권력을 잡은 일부 정치인, 행정부 수반들의 행태를 바라봐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남편처럼 쉽게 절망에 빠져 술에 찌들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현 정권의 실소를 머금게 하는 행태에 어느 정도는 신물이 나 아예 외면해 버리고 그냥 내 인생 하나나 챙겨가며 살자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자질 없는 이들이 대표로 선출되고 그들이 또 저열한 정치를 해대고 국민들은 점점 더 무관심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권력을 잡은 이들에게 이 악순환의 고리는 자신들의 생명줄이며 끝까지 이어가야 하는 영광의 고리이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그리고 끊어 내야만 하는 사람들은 관심을 돌려버린 대다수의 민초들이다. 와 같은 상태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다수의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들이 저열한 정치를 거부하고 자질 없는 대표자들을 걸러낼 때에야 비로소 이 악순환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국가 공동체를 그리며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부패한 권력자들에 맞설 때에야 이 나라 꼴이 바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