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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아이들이 ‘섹스가 뭐에요?’라고 물어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본문
어려서부터 책과 ‘성’을 좋아했다고 말하던 아내가 ‘성 이야기’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아내가 생애 첫 책을 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책을 소개하고 읽어보라 권했습니다. 얼마 후 회사에서 만난 후배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수님 책을 주문해서 받았어요. 집에 가져가진 못하고 회사 사무실에서 쉬는 시간에 몰래 몰래 읽고 있어요.”
아내가 쓴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30대 중반, 한국인 남성인 후배는 군부 독재시절 금서를 가진 것처럼 책을 집에도 가져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몰래 몰래 읽고 있었을까요? 남자 후배에게 물어보니 ‘섹스’, ‘성기’, ‘노브라’, ‘생리’, ‘성 경험’, ‘야동’ 등의 단어가 책에 직접 언급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후배의 이런 반응은 우리 사회가 ‘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성과 관련있는 다양한 이슈와 궁금증을 두 저자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라는 성교육 교양서를 들고 읽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끼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내의 책을 대하는 남성 후배의 모습과 ‘우리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편견 없는 뉘앙스로 들어본 적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는 책 속 저자의 말이 겹쳐집니다.
“성기를 우리 몸의 일부로, 성을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성’과 ‘성기’를 대상화해서 우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큰일나는,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솔직한 성교육의 경험이 부족한 어른들의 편견과 수치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242쪽)
‘성’하면 가장 먼저 선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원인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성을 대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들의 편견과 수치심에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동감합니다.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로부터 기회가 되는대로 ‘성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저 역시 ‘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는 왠지 부끄럽습니다. 우리 삶의 일부인 성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참 갈 길 먼 우리 사회의 ‘성’ 인식 수준
최근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방에서 행해진 성착취 범죄가 드러나고 이 사건을 대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성’인식 수준을 확인하게 됩니다.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이 범죄는 기존에 자주 있어왔던 불법 촬영과 유포의 수준을 넘어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은 중범죄입니다. 그럼에도 각종 기사 및 SNS 채널 등에서 피해자인 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을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대부분이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합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들에게까지도 책임을 운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다른 범죄와는 다르게 유독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깊이 새겨진 ‘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불법 촬영과 유포, 성폭력, 성착취 등의 성범죄 기저에는 ‘사람, 특히 여성을, 여성의 몸을, 여성의 성을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고,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물건 혹은 도구’로 여기는 태도가 놓여 있다고 <이런 질문, 해도 될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성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태도가 사라져야만 합니다.
‘여성을 같은 인간이 아니라 사냥감’으로 여기는 현실, ‘남자라면 여성을 성적 도구로 즐기고 소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왜곡된 남성다움에 대한 압박 등도 우리가 성을 왜곡해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임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의 현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대하도록 도와주는 문답 연습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바르게 인식하려는 변화는 어른들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책에 따르면 2009년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조기성교육 지침서>에는 사춘기가 되지 전에 아이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와 충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돕기 위해 5세 때 자위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은 과연 자신의 성적 욕구과 충동을 이해하고 잘 다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을 떠나 오히려 지금 어른들이 성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겪어오는 ‘성’관련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성교육 전문가와 오마이뉴스 기자인 두 저자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 정리한 스무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성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어른들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섹스, 성기, 생리, 노브라, 성 경험 등의 단어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나의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아이들이 갑작스레 물을 수 있는 질문들에 당황해하며 얼버무리지 않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건강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담하게 편견 없는 뉘앙스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이야기’로 소통하는 장이 많아지기를
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고 저자는 썼습니다. 이 말은 어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했듯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보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시작으로 성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 중에는 생소하고 어려운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화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책 끝부분에 있는 추천 도서들도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을 은밀하게만 다루면 점점 드러내기가 어려워지고, 드러났을 때 느끼는 수치심도 클 수 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지나치게 야동에 빠지거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준비 없이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우리 몸에 대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알려주고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243-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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