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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마음대로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타임머신을 갖게 됐다 본문
인생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그림책 <100 인생 그림책>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만 갑니다. 시간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댐이라도 세워 잠시 가둬두기라도 할텐데 시간은 그럴 수도 없네요. 어릴 땐 시간이 더디가서 언제 어른이 되나 한숨지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선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버려서 한숨을 쉽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더 많아지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마음은 더 간절해 지겠지요.
단 한 번만 주어지는 인생이기에,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에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생각해보는 때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땐 특히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선택에 대한 후회나 안타까움, 소원해진 인간관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이럴 때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조망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미래로 찾아 다니며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도와주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다른 이들이 인생에서 배운 교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책 표지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가 글을 쓰고 발레리오 비달리가 그림을 그린 <100 인생 그림책>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음을 바로 앞둔 순간까지를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살펴볼 수 있습니다. 100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일생 100장면’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그림책입니다.
글을 쓴 하이케 팔러는 “삶이 흐르는 동안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초점을 맞춰 책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죽음을 앞둔 고령의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살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보고 들은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면서 배운 교훈들이 담겨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나이 대의 페이지를 펼칩니다. 단 번에 보이는 말은 “산다는 건 정말 스트레스 넘치는 일이지”입니다. 비슷한 세대에 있는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할 말입니다. 이번엔 제가 지나온 세월들을 훑어 봅니다. 30대에 자녀가 생기고 경험한 삶을 단 한마디와 그림 한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 문장, 그림 한 장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게 이 책의 매력입니다.
“34 이젠 어른이 된 거지.”
“36 꿈 하나가 이루어졌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를거야.”
“39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거야.”
“40 누군가를 이토록 걱정한 적도 한 번도 없었을 거고.”
자녀를 가지게 된 부모들의 마음은 이와 비슷하겠지요. 좀 더 나이가 들면 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요? 현실에선 나이 든 선배 혹은 부모님,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생각보다 쉽게 웃 어른들의 깨달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되거든요. 하이케 팔러가 이렇게 묻네요.
“45 지금 그대로의 네 모습을 좋아하니?”
음...제 대답은요. “아니요.” 욱하는 성격은 좀 다듬어지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건강하면 좋겠어요. 경제적으로도 좀 더 풍요로우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좀 더 높아도 좋겠구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위치면 좋겠어요.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마음속에 욕심과 탐욕이 꿈틀꿈틀합니다.
“52 이루지 못한 꿈도 많지만...”
“53 괜찮아.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하이케 팔러가 제 생각을 읽은 걸까요?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겠지만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네요. 아직은 이 정도의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월을 좀더 살아내고 나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닐테니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을 잘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제게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노인이 되는 것과 노인이 되었는데도 세월의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대로 통제할 수 없는 몸을 갖게 된다는 것이 참 두렵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해도 더 많은 시간이 들게 되겠지요. 좋은 선배가 되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내 경험과 지식에만 갇혀서 후배들의 삶을 판단하려는 선배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60 너도 이제 예순이구나. 하지만 어릴 때 보았던 60대 할머니가 네 자신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지?”
“62 자기가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70 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지? 생전 처음 해본 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을 거야.”
“73 사는 동안 뭔가 다른 일을 해봤더라면 싶은 게 있니?”
딱 한 줄 써 있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라는 물음이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다른 일’, ‘생전 처음 해본 일’을 더 많이 해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어짜피 “90 인생은 뒤죽박죽”이라네요.
“인생체험에 관해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삶을 정말이지 갖가지 경험으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면 이 말은 공허해질 뿐이라는 거지요. 그 채움의 방법 중 하나는 이 책을 삶의 경험이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서 이 글들이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입니다.”
“삶이 흐르는 동안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살펴보며 살면 나이 먹어가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 직접 인용한 글들인데도 페이지를 적지 않았습니다. 책에 페이지가 안 적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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