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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회사에선 시키는 일만 해야 할까? 본문
[부속품이 되지 않고 버티기 위해 했던 일들]
강렬한 사랑에도 권태는 찾아온다. 뜨거운 연애를 하다가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심드렁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직장생활도 비슷하다. 원하던 직장이었든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곳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만나는 사람, 하는 일 등 모든 게 새로워 지루할 틈이 없던 입사 초기가 지나면 많은 것들이 익숙해진다. 1년 정도 후엔 쳇바퀴 돌리는 듯한 하루가 반복된다.
직장인으로 삶을 시작한 이상 퇴직하기 전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과감히 퇴직을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같이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대엔 직장에 남는 길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1년, 2년, 10년, 가능하다면 30년까지 직장에서 버티려면 반복되는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있다.
낯선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운좋게 재벌 대기업의 연구노동자로 일하게 된 후 내게 처음 주어진 일은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기계 부품 개발이었다. 사람을 뽑을 땐 ‘전공이 뭐냐’, ‘학교 다닐때 공부한 걸 어떻게 써먹을거냐’ 묻기도 하더니만 막상 부서에 배치되니 전공은 모두가 ‘불문’이었다. 그때 그때 필요한대로 일을 시켰다. 이런 대기업도 있구나 싶었다.
개발하게된 부품과 그 연관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당연히 부족했다. 관련 논문과 참고서적을 찾아 읽고 공부해가면서 간신히 주어진 일을 해나갔다. 일이 어렵고 힘에 부쳤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일을 해야 했기에 입사 후 시간이 지났어도 무료함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부품을 설계한 후 만들고, 시험을 하고, 문제가 있으면 뭔가를 고치고...또 물건을 만들고, 시험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이긴 했지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덕분에 입사 후 생활이 익숙해짐으로 인해 찾아오는 권태기는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게다가 어느 날 교육 담당 부서에서 보낸 공문 하나가 운명처럼 눈에 띄었다.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 업무 현장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행착오를 줄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교육 기간도 자그마치 6개월!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면 전문 자격증도 준단다.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은 최대한 받자
이런 교육기회는 잡아야 한다. 모집 인원에 제한이 있어 지원서를 신경써서 작성해야 했다. 직장을 구할 때 지원서를 쓰는 것처럼 공을 들였다. 당면한 문제들 중 해결하기 매우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골라 전략적으로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교육 후보 선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몇 주간은 기대감으로 즐거웠다.
몇 주 정도 후에 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쁘기도 했지만 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약 6개월 여가 걸리는 교육 기간 동안 1개월 반 정도는 집합 교육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떠나 있어야 했다. 나머지 기간들에도 담당하는 업무 이외에 시간을 내야 했다. 과연 우리 팀장이 이런 교육을 허락해 줄까?
팀장에게는 이 교육을 통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상세하게 적어 보고했다. 또 다른 지원서를 쓰는 느낌으로. 오랜 기간 사무실을 비우는 걸 못마땅해 하기는 했지만 팀장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조목조목 설득하는 팀원을 무작정 막아서지는 못했다.
사무실을 떠나 공부하며 새로운 기법을 배우면서 회사 업무에서도 개인적으로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무실을 비우는 날이 많았지만 교육받은 방법론을 업무에 적용해 여러 가지 문제해결 아이디어를 냈다. 이 아이디어들은 특허출원으로도 이어졌다. 업무에 필요한 기술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개인 업무성과도 높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주어진 것과 우연찮게 받은 교육으로 회사 생활에 찾아오는 무료함이 어느 정도는 늦춰졌다. 입사 후 4년 정도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업무는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불편했지만 버티고 버텼을 뿐.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게 맞는 업무를 찾아서
몇 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담당하는 업무를 바꿔야겠다 결심했다.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하면 좋아하는 조직에서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무턱대고 말해선 안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왜 더이상 못하겠는지, 어떤 일을 왜 하고 싶은지, 그 일을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간의 업무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준비해 팀장을 찾아갔다. 하고 싶은 일이 팀내 업무여서 팀장 선에서 결심하면 조정이 가능한 일이었다.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팀장에게는 그 어떤 논리와 근거도 소용이 없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후에 다시 생각해 볼게. 연말 인사평가에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가 너무 순진했다. 괴씸죄로 연말 인사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꼭 해야했다. 좀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회사 내에 호감가는 팀을 고른 후 몰래 그쪽 팀장을 만나 나를 받아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이 때는 더 철저하게 팀을 옮겨야 하는 이유를 준비했다. 다행히 그쪽 팀장은 우리 팀에서만 허락한다면 좋다고 했다.
몇 주 정도 고민하며 팀장에게 할 말을 정리해 다시 팀장을 찾아가 내 의지를 전했다. 업무를 바꾸는게 안된다면 팀을 옮기겠다, 그쪽 팀에서는 날 받아주겠다 했으니 허락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고민끝에 팀장은 자신의 팀원이 줄어드는 것보다는 그래도 업무를 바꿔 자기 아래 두는 걸 선택했다.(더 괴롭히려고 그랬나?^^)
업무를 바꾼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었고 배경지식도 있는 일이어서 처음에 주어졌던 일보다는 더 잘할 수 있었다. 업무 성과도 기존보다 더 나아졌다. 마뜩잖아 하던 팀장도 변경된 업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 어느 정도는 나를 인정해주었다.
부속품이 되기 싫어서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의 한계인걸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그저 그런 회사일이 되어갔다. 시키는 일에 파묻혀 지내다보면 내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라는 인간이 살아있다는 자율성 혹은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했다.
규모가 큰 회사라 다양한 부서에서 본업무 이외의 일들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사내기자였다. 회사 안에서의 활동 한개를 필수로 쓰는 것 이외에는 글쓰기 주제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사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 기사 업로드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생동감을 느꼈다. 2년 동안 사내기자를 하면서 주변 동료들 인터뷰, 회사 청소노동자분들의 이야기 소개, 서평, 여행이야기, 유명인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쓴다고 취재나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하면 팀장은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이런 딴짓을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 있으면서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사실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다른 일들을 찾는 이유는 하나의 부속품이 되지 않고 버티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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