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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20세기 소년
삼성 76년 무노조 경영을 깨뜨린 역사, 염호석 열사와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조합을 기억한다. 본문
[김용민 브리핑에서 ‘경제의 속살’이라는 코너를 맡고 있는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 이완배 기자를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전해주는 정보 혹은 소식들을 듣다 보면 호감을 가지게 된다. 지난 주에도 인상 깊은 내용을 소개해 주셔서 잊지 않고자 이완배 기자의 부분을 정리해 놓는다.]
2월 6일 네이버 웹툰에 최규석 작가의 '송곳' 시즌 5가 돌아왔다. 첫 화 내용이 노동자의 분신으로 시작된다. 분신한 노동자가 장례절차를 노조에 맡긴다고 유서에 남겼는데, 경찰이 시신을 탈취하고자 한다. 노동자의 아버지가 회사의 회유로 시신을 경찰에 넘겨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떠오른 건 염호석 열사의 사건이다.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노조이다. 삼성에 민조노총 소속 노조가 있어? 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종종 접한다. 이병철 이래 삼성은 76년 동안 무노조 원칙을 지켜왔다. 하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깨고 최초로 삼성에 세워진 민주노조이다. 76년 동안의 방침을 거스르고 노조를 만들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 회의적이었다. 2014년 마침내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염호석 열사가 목숨을 바쳤다.
삼성전자 서비스라는 회사는 삼성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수리를 담당하는 회사다. 삼성계열사다. 삼성은 노동자들을 본사에 두기는 싫고 서비스 자회사를 만들어서 하위 노동자로 계층화했다. 수리를 하는 기사분들은 또 삼성전자 서비스 소속도 아니다. 삼성전자 서비스가 고용하는 협력회사 소속의 노동자들이 수리를 담당한다.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수리에 만족하지 못할 때 삼성전자에 불만을 제기하려고 삼성전자에 전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전화는 삼성전자 서비스로 간다. 삼성전자 서비스는 협력업체 기사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 노동자의 소속은 어디여야 하는 것일까? 노동자의 근로감독은 삼성전자 서비스가 한다. 업무 지시도 삼성전자 서비스가 한다. 안전관리도 삼성전자 서비스가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서비스가 지휘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삼성전자 서비스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책임은 삼성에겐 없다. 협력업체 일이라며 삼성은 발을 뺀다. 위장도급이고 불법 파견이다.
삼성전자 서비스는 108개 협력업체 가지고 있는데, 이 중 64%인 69개 사장이 삼성전자 서비스 임직원 출신이라 한다. 삼성전자 서비스에서 경영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협력업체 경영에 간섭한다. 하지만 실제로 경영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법적 책임만 피해가기 위해서 삼성전자는 위장도급, 불법파견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0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라는 노조를 결성했다. 삼성 안에서 노조를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조가 설립되자 삼성의 악랄한 노동탄압이 시작된다. 삼성이 만든 노조파괴 문건이 공개되었는데, 노조에 참여하면 일거리 주지 말라(월급 받는 사람들이 아니고 건 당 수당을 받는 구조), 협력업체 폐업한다고 협박하라, 내근 조합원 외근으로 돌려라, 조합원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가하라, 법정공휴일인데 안나오면 휴가원 내지 않았다고 결근처리해라 등의 지시사항들이 있었다.
정식 노조가 출범하고 교섭을 요구해도 회사는 협상장에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투쟁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에 성실하게 교섭하자 요구했다. 2014년 5월 17일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부산 양산센터 염호석 분회장은 당시 34세였다. 그는 정동진의 한 공터에서 아반떼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차량 조수석에는 번개탄이 있었다. 부모님과 동지들에게 쓴 유서도 발견되었다. 노조 노동운동을 하는 동안 염호석 열사가 받은 급여는 3월엔 70만원, 4월엔 41만원이었다. 회사에서 일감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염호석 열사 사망 후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는 무기한 농성을 벌였다. 드디어 76년 만에 삼성과 임단협을 성사시켰다. 삼성이 노조를 인정하게 된 최초의 역사가 되었다. 염호석 열사의 죽음으로 얻어 낸 가치 있는 한 걸음이었다.
염호석 열사의 부모님은 열사가 어렸을 때 이혼을 하셨다고 한다. 염호석 열사는 2개의 유서를 남겼다. 동지들과 가족에게. 동지들에게는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저를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저희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
부모님께도 유서를 남겼다.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삼성전자 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 때 장례를 치러주세요. 그리고 저의 유해는 남김없이 해가 뜨는 이곳 정동진에 뿌려주세요."
유서 두 곳에 유해를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염호석 열사 아버지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만에 마음을 바꿨다. 노조가 열사의 시신을 품고 노조장을 치르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유해를 내놓으라 요청했다.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었다. 아버지가 경찰에게 시신 인도를 요청하자 경찰이 영안실을 급습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갔다. 어머니는 막으려 했지만 경찰은 아버지와 합의를 끝냈다고 주장했다. 시신을 가지고 밀양 화장터로 가서 화장해 버렸다. 어머니가 화장장에 갔었으나 유골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어머니와 유족들은 열사의 유골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절규하는데도 경찰은 유골을 가지고 튀어버렸다.
한 노동자는 목숨을 잃었는데 삼성은 가족의 약점을 이용해서 고인의 유언까지도 받들지 못하게 했다. 열사를 잃은 동지들은 동지의 시신을 이틀밖에 지키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로부터 45일 뒤 결국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 노동자의 투쟁 끝에 삼성과 노조 사이의 임단협이 성사되었다. 이후 시신이 없는 상태로 염호석 열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여기서 백기완 선생이 조사를 했다.
"저는 염호석 동지를 바다에 묻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삼성의 이건희와 박근혜 정권이 합작해 우리 염호석 동지를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염동지의 마지막 당부도 저버리고 시신까지 탈취해 갔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장례식이라면 삼성재벌과 박근혜 정부를 바다에 묻는 장례식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염호석 열사는 정동진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살아서 정동진을 자주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정동진에서 해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떠오르니까 정동진을 좋아했다고 한다. 송경동 시인은 시로 염호석 열사를 추모했다. (원래 시는 어떤 모양으로 연이 나뉘었는지 모르기에 그냥 느낌대로 적었으니 양해 바란다-블로그 주인-)
우리들의 정동진, 염호석 열사 열전에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정동진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비는 얼마인가요?
힘겹게 장바구니를 들고가는 임산부에게
바삐 출발하려는 화물차 운전수에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 회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동자들에게도 밝은 해가 떠오른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자본가가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길거리 노점상에게 서울역 노숙자께
무료하게 가게앞에 앉아 있는 상점 주인에게
표를 팔고 있는 철도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혼자 그곳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을 못 봤나요?
젊고 씩씩한 사람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그리워하며 외로움 잘 타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늘 빛이 그리웠던 사람이었는데
더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어서
자신을 바쳐서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혼자 쓸쓸히 길 떠나던 한 사람을 보셨나요?
정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건지
언제까지 이렇게 착하게만 대기하고만 있으면
누군가 반드시 구해주러 오는건지
오늘 당신께 가서 물어봐야겠다
왜 바보같이 그랬는지
왜 우릴 두고 당신이 먼저 갔는지
왜 우릴 위해 당신이 갔는지
그렇게 좋은 곳이면 함께 가자고 해야지 왜 혼자만 갔는지
그런데 정말 그 정동진은 어디에 있나요?
노동자 민중의 신새벽이 떠오르는 곳
거짓된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가 떠오르는 곳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지 않고
만인이 만인의 행복이 되는 곳
누구도 누구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차별하지 않는 곳
그런 정동진을 아시나요?
그런 최종범을 염호석을 아시나요?
삼성 무노조 76년의 벽을 깬 그런 기쁨을 슬픔을 아시나요?
그런 노동자 민중의 생을 정동진 푸른바다에
자신의 유해를 남김없이 후회없이 뿌려달라고 했던 사람을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아시나요?
최종범 염호석 당신들이 간 그 아름다운 길을
눈물겨운 길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오늘 다시 떠오르는
이 뜨거운 결의를 분노를 약속을 아시나요?
우리들의 어제는 어둡고 힘겨웠지만
우리들의 어제는 외롭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맑은 날 우리 모두가 천 개의 뜨거운 해가 되어
만개의 천만개의 밝은 해가 되어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마지막 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영원한 날을 만나러 가는 날
사랑합니다 동지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의 정동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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