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후 문제는 우리들의 집합적 경험을 크게 벗어나 있어서 민간 부문에서의 고위 리더십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참여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사업, 시장, 자본주의에도 위협이 되고 있고 가장 상위에 있는 기업들 조차도 홀로 감당하기에는 어렵다.

우리의 뇌는 갑작스런 위협에는 반사적으로 대응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시스템의 위기는 무시하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그런 시장역학은 회오리바람이나 물에서의 소용돌이처럼 움직인다. 소용돌이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때는 매우 시야가 넓거나 하지 않으면 눈치채기가 어렵다. 이 단계에선 많은 것들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배라도 위험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가차없이 빨려들어간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내가 탄소 소용돌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은 느리지만 결국 지수적으로 상승하는 역학의 특성을 가진다. 2017년 가을에 있었던 세 개의 큰 허리케인 사진을 보라. 또 중국 경제 성장의 상당부분이 석탄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2017년에 2%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라.

탄소 소용돌이가 동력을 얻게될수록 보다 혁신적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쪽으로 우리를 이끄는 동일한 그리고 반대되는 소용돌이가 있다는 증거들도 있다.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석탄산업 지분을 처분한다는 선언을 했다. 지멘스가 가스터빈 사업을 위해 계획된 직무들을 줄이겠다는 것도 부분적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붐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석탄에 대한 감축을 두 배로 하겠다 결정한 GE는 전력 부문에서 수천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는 동일한 시장 조류에 합류했다.

주변 영역에 있던 것이 주류로 흘러들어오면서 세계는 시장 변곡점에 놓인 것은 확실하다. Generation Investment Management는 2017년 백서에서 “지속가능 혁명은 산업 혁명, 농업 혁명의 규모와 정보 혁명의 속도를 가지는 것 같다. 이전 세 번의 혁명들에 비해 지속가능 혁먕은 경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규모의 변화는 헤아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몰려오는 먹구름에서 잠재적인 밝은 희망을 발견하고 잡아채고 능수능란하게 탄소 문제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네 가지 단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1.데이터에 빠지라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어떤 소용돌이든 무엇인가에 있는 소용돌이다. 물이 없이는 소용돌이가 생길 수 없고, 공기없이는 돌개바람도 생길 수 없다.” 탄소 소용돌이를 만드는 매개물은 무엇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탄소 소용돌이가 과학, 기술, 사업 모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돈 때문이다. 데이터를 보자.

시장 자본이 이 영역에 참여하는 것은 속도가 느렸지만 앞서 언급한 노르웨이의 사례는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지표들이 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탄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자산들의 증가하는 위험에 대한 Carbon Tracker의 일들을 보라. 또 G20국가들에서 저탄소 전환의 속도를 추적하는 PwC의 2017 저탄소 경제 지수를 보라. 2016년 최고 성과를 냈던 국가는 각각 6.5%와 7.7%의 탄소 강도 감축을 한 중국과 영국이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탄소 소용돌이는 우리를 이러한 궤도로 이끌고 있다.

2.배움의 여정에 오르라

많은 조직들이 변화의 최첨단에 있는 지역들과 조직들을 방문하는 배움의 여정을 떠나고 있다. 2018년 이와 같은 여정에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GDP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OECD의 활동, 영국 정부가 런던에서 시행하는 탄소 예산 등이 포함될 수 있겠다.

그 밖에 테슬라를 방문해볼 수도 있겠고 캘리포니아의 X Prize도 찾아볼 수 있다. 금융시장의 역할에 강조하며 성장하고 있는 탄소 X Prize가 후자에 속한다. 새로운 탄소 경제를 위한 Noah Deich의 Center for Carbon Removal과 시멘트, 콘크리트, 철강 등 가장 탄소배출이 많은 부문에 집중하는 Bernard David의 Global CO2 Initiative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탄소 배출을 기가톤 수준으로 삭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3.탄소의 가격을 올리라

우리가 파리 기후 협약에서 정한 약속을 이행하려면 현재 유럽연합에서 유통되는 톤당 6달러에서 50-100달러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비용을 올려야만 한다. 이는 세계은행의 지지를 받는 선도 경제학자들 그룹인 탄소가격 위원회의 결론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지지를 받는 탄소가격 체계이다.

한편 지속가능한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것을 돕기 위해 구글, 유니레버, 타타자동차 등을 포함하는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기후 그룹의 RE100에 가입했다. 이 플랫폼 상에서 기업들은 100% 재생가능 전기로의 전환 사례를 공유하고 장애물에 대응하고 있다.

4.소용돌이를 되돌리라

급락하는 것에 겁을 먹는 건 쉽고 반사적으로 탄소를 악마화하고 급진적 탈탄소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은 지구생명의 기초가 되는 탄소의 마법같은 측면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탄소와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지만 Noah Deich와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탄소 경제 측면을 말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탄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순환 경제에 통합될 것이다.

탄소를 다시 생각하려는 이러한 작업들 중에는 지구온난화를 되돌리기 위한 가장 포괄적 계획으로 블리는 Paul Hawken의 Project Drawdown과 Climate Take Back전략을 가진 Interface라는 카펫 타일 회사가 있다.

이 역전적 접근은 독일의 소재회사 Covestro가 중심이 된 Carbon Productivity Consortium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목표는 경제, 사회, 환경적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 탄소 예산을 최선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컨소시움은 기업들이 변화의 손잡이를 확인하고 당기는 것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탄소 생산성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재결합, 강화, 제품 및 사업 모델 설계, 반복이라는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화석연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결국 전체 탄소 사이클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장 커다란 변화의 파도일지라도 몇 번의 잔물결에서 시작된다. 탄소 소용돌이가 사업이 되려면 수십 년의 전략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곳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딘가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그곳이 바로 오늘이다.

출처: John Elkington, Climate change is an overwhelming problem. Here are 4 things executives can do today, HBR.

[TED talk에서 Zeynep Tufekci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이익집단들이 만들게 될 아니 이미 만들어가고 있는 디스토피아를 말한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디스토피아가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두려움을 말할 때 종종 미친듯이 날뛰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터미네이터는 고려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먼 위협이다. 아니면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디지털 감시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1984가 멋진 책이기는 하지만 21세기에 맞는 디스토피아는 아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할 것은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새로운 때로는 비밀스럽게 그리고 미묘하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조종할 것인지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자유와 존엄에 위협이되는 많은 기술들은 우리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판매하고 우리 관심을 광고주들에게 돌리게 하는 사업을 하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회사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이 그들의 사업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광고 후 다음 먹거리는 인공지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은 아예 범주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많은 연구 분야들에 대한 이해를 가속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잠재력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온라인 광고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이야기해보자.  온라인 광고는 성가시고 정제되어 있지도 않고 비효율적이다. 우리는 모두 인터넷에서 뭔가를 검색하거나 읽을 때 광고가 따라다니는 경험을 해봤다. 일주일 동안 부츠를 검색하고나면 그 부츠가 계속 당신을 따라다는 것을 경험한다. 당신이 이 광고에 항복하고 그걸 구입한 후에도 광고는 당신 주위를 맴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기초적이고 값싼 조종에 익숙해진다. 눈알을 굴리며 ‘뭐야 이런건 소용이 없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광고만을 말하지 않는다. 실제 세계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수퍼마켓 계산대 앞에 아이들 눈높이에 놓인 사탕이나 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당신은 안다. 이것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징징거리게 만들어 부모들로 하여금 한 번 더 고려하게 만든다. 이는 설득 시스템이다. 그리 멋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작동한다. 모든 수퍼마켓에서 이런 류의 것들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세계에선 계산원이 놓는 물건들로 제한되기 때문에 설득 시스템에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다. 또한 사탕과 껌은 징징대는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에게만 작동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실제 세계에선 이와 같은 제약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설득 시스템은 거의 무한한 다양성을 가질 수 있고 개인들의 취약점을 공략해 모든 사람들의 개인화면에 보내질 수 있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보자. 라스베가스행 비행기 표를 팔고 싶다고 하자. 예전엔 경험과 당신이 추측할 수 있는 것에 기반해 목표 고객을 생각했다. 나이, 재정, 개인의 상태(퇴직 등) 등을 고려해 광고를 했을 수 있다.

빅 데이터와 기계학습의 시대엔 더이상 이렇지 않다. 요즘엔 페이스북에 당신이 쓴 얘기들, 메신저로 나눈 대화, 당신이 방문한 장소들, 업로드한 사진들 등 모든 데이터가 있다.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려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그걸 지웠을 때에도 페이스북은 그것도 분석 대상에 넣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점점 더 온라인 데이터와 오프라인 데이터를 연결하려고 한다. 이를 데이터 브로커들이 구매할 수 있다. 당신의 재정 기록에서부터 방문했던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미국에선 이런 데이터가 일상적으로 수집되고 판매된다. 유럽에선 더 규제가 강하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이런 모든 데이터들을 휘저으면서 이전에 라스베가스행 표를 구입했던 사람들의 특징을 알아내는 것을 학습한다. 알고리즘이 기존의 데이터에서 이러한 것을 배우면 이것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지도 학습한다. 이것을 새로운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그 사람이 베가스행 표를 살 것 같은지 아닌지를 분류할 수 있다. 베가스행 티켓 구매를 제안받았을 때 그걸 무시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이 복잡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이상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라나는 지적 존재, 우리가 프로그래밍하지 않은 존재가 생겨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일들은 거대한 데이터가 있을 때에만 작동할 수 있다. 때문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동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 대한 면밀한 감시를 장려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이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페이스북은 우리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길 원하는 것이다.

베가스행 티켓 사례를 좀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정신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베가스행 티켓을 파는 것이 더 쉽다고 결정했다고 하자. 이런 사람들은 과소비하는 경향이 있고 충동적인 도박사 경향이 있다. 이들이 티켓을 살 수 있을텐데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들은 이미 회사들에서 개발하고 있는 것들이다.

유투브에서 영상을 하나 보다가 한 시간 후에 27개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영상 오른쪽에 ‘다음 재생’이라는 버튼이 생기고 뭔가 다른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알고리즘이 당신이 관심있어할 수도 있을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이 하는 게 바로 이런 일이다. 당신이 봤던 것,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봤던 것을 가지고 당신이 관심있어 할 것 같은 영상들을 추정하고 그것을 당신에게 더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유용한 기능인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2016년에 난 당시 후보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 그를 지지하는 운동을 연구하기 위해 학자로서 참여했다. 난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있었고 트럼프의 집회에 대해 뭔가를 쓰려고 유투브를 몇 차례 시청했다. 유투브는 극단주의적 정도가 심해지는 백인 우월주의 영상들을 자동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의 영상을 보면 유투브는 보다 정도가 심한 영상을 추천하고 그것을 자동으로 재생했다. 당신이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의 컨텐츠를 보면 유투브는 음모 등의 영상을 추천해주고 그것을 자동으로 재생한다.

‘이게 정치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행동을 이해하고 있는 알고리즘이다. 내가 유투브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영상을 보면 유투브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항 영상을 추천하고 자동으로 재생해준다. 이는 당신이 유투브의 열혈 시청자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에게 뭔가 더 심한 정도의 무엇인가를 보여주면 그쪽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구글이 그들에게 광고를 보여주면서 계속 그와 같은 영상을 보면서 머물도록 할 수 있다. 요즘 상점의 윤리를 개의치 않는데, 이런 사이트들은 유대인 혐오자, 유대인들이 기생충이라 생각하는 사람, 명백한 반유대주의자들에게 맞는 영상을 제공하고 광고를 할 수 있다. 구글은 명확한 반유대주의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러한 메시지를 수용할만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알고리즘을 변경할 수도 있다. 믿기 어려운 사례로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ProPublica는 이를 조사했고 이러한 일들이 페이스북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페이스북은 그와 같은 청중들을 확장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BuzzFeed는 이와 같은 조사를 구글에 대해서도 해봤는데 역시 구글에서도 이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비용도 비싸지 않다. ProPublica의 기자는 이 조사를 하는데 30달러를 썼을 뿐이다.

지난 해 도널드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관리자는 그들이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안좋은 글을 올리는 일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핵심지역인 필라델피아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들이 보게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보이도록 하는 비공개 게시글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것을 테스트해 보고 이것이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런 나쁜 게시글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페이스북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패이스북은 당신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게시물들도 알고리즘을 이용해 정렬시킨다. 그것을 시간순으로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 패이스북은 당신이 자신들의 페이지에 더 오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게시글 순서를 배열한다.

이는 많은 결과를 낳는다. 당신은 누군가가 페이스북에서 당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당신의 게시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 일고리즘은 게시글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다른 게시글들을 덮는데 이용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당신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페이스북은 미국에 사는 6,100만명의 사람들에게 실험을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늘은 선거날이야”라는 문장이 보이게 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 투표했음”에 클릭한 친구들의 작은 페이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아주 작은 수정이었는데 이 차이가 34만명이 더 투표에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2012년에도 같은 실험을 했는데 역시 27만명의 추가적인 투표인원을 모았다고 한다. 2016년 대선에서 약 10만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되었으니 이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도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도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랫폼이 한 후보자의 지지자들 중의 한명인 것을 결정한다면? 

이제 악의 없어 보이는, 우리 주위를 맴도는 온라인 광고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대중이자 시민으로서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같은 정보를 보고 있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공적인 토론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우리는 이런 환경의 초기 단계에 와있다. 이런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민족, 종교 및 정치적 관점, 개성, 지능, 행복, 중독성 물질 복용, 부모의 이혼, 나이와 성별 같은 것을 페이스북 같은 곳으로부터 아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들 알고리즘은 얼굴이 반 정도 가려져 있어도 시위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데이트 사진들로부터 사람들의 성적 지향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성 있는 예상이기는 하지만 100%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가지 부정적 결과들(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강력히 저항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시민들의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국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해보라. 중국은 이미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하기 위해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사람들이 광고를 클릭하게 하는 것을 통해 감시 권력의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오웰의 감시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1984의 상황과 다르다. 만약 권력이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려고 명시적인 두려움을 이용한다면 우리 모두는 겁을 내겠지만 그것을 알게되고 그것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우리를 조용히 감시하고 판단하고 은근히 압박을 가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예측하고 확인하고 설득 체계를 실행하고 개인적 약점을 이용해 조정하는데 이런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지못한 채 개인들의 화면을 통해 하고 있다면 그 권력은 우리를 거미줄에 잡아 넣은 것처럼 옭아맬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가치가 500억 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이것은 페이스북을 설득 체계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체계의 구조는 당신이 신발을 팔 것인지 혹은 정치적 성향을 팔 것인지와 동일한 것이다. 알고리즘은 이 차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광고에 보다 유연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 그 알고리즘이 우리의 정치적, 개인적, 사회적 정보 흐름을 조직화하고도 있다. 이것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큰 가치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이용한다. 난 전 세계 친구들과 가족들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페이스북을 쓴다. 사회 운동을 위해서 소셜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도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런 기술들이 검열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계를 편향적이 되게 하고 극단주의로 나가도록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악의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기술분야에 있는 이들은 아닌듯 하고 사업모델을 구상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 디지털 기술이 운영되는 방식을 전체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지는 투명성 부족과 기계학습의 불투명함, 우리들 주변의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것에 대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목적을 지지하지만 인간의 가치를 제약하지 않도록 하기 의해 기술, 창의성, 정치를 유연하게 해야한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닌다. 이러한 말들의 의미에 동의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를 더이상 연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구조들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조직화하고 있고 그것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광고로부터 돈을 버는 많은 플랫폼들은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뽐낸다. 이런 맥락에선 우리가 판매되는 상품이 된다. 우리의 데이터와 관심이 높은 값을 부르는 기관 혹은 선동 정치가들에게 판매되지 않도록 하는 디지털 경제가 필요하다.

출처: Zeynep Tufekci, We’re building a dystopia just to make people click on ads, TEDGlobal.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한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제조업 등의 분야에선 기계로 인한 실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주고 인간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TED 연사로 나선 Martin Ford는 기본소득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혹은 지방자치 단체의 정책들을 통해 실험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 Ford씨가 말한 것처럼 기본소득 제도에서 재원도 재원이지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제도에 그냥 올라탈 무임승차자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사는 추가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기본소득에 더하는 방법 등을 하나의 예로 제시하며 미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주문한다. 이전 정권들에서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는 일자리 만들기에 재원과 노력을 쏟아붇기보다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움직여 갈 수 있는 제도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자리 없는 미래를 향해가고 있을까? 자율주행차와 같은 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보면 이런 종류의 의문이 들지만 사실 이런류의 말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진짜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번은 정말로 다를 것인가 라는 물음이다. 자동화가 노동자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200년 전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었을 때 이래로 이런 문제는 계속되어 왔다.

Triple Revolution 리포트라고 들어봤을랑가 모르겠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보고서였다.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된 똑똑한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인데, 보고서는 산업 자동화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기에 경제가 붕괴되고 사회적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1964년 3월 Lyndon Johnson에게 전달되었다.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는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다.

경고는 반복되었지만 항상 잘못된 경고였다. 계속 잘못된 경고를 해왔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게되었다. 사람들은 ‘맞아. 기술이 전체 산업을 파괴할지도 몰라. 모든 일자리를 쓸어갈지도 모르고. 물론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진보가 있게 될 거야. 그래서 미래에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것이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게 될거야. 새로운 종류의 일이 만들어지지 않겠어?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지금까지 이야기되는 방식이지만 꽤나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과거보다 더 좋은 일들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은 맞다.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고, 더 안전하고, 더 안락한 노동 환경이 만들어졌다. 물론 급료도 올랐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던 긍정적인 모양새다. 하지만 이것과는 아주 다른 노동계층이 있다. 이들 노동자들에게 기술은 이들의 일을 완전히 없애버렸고 새로운 기회도 전혀 만들어주지 않았다. 이 노동자들은 ‘말’들이다.

이렇게 묻고 싶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말들이 경험한 것처럼 상당한 사람들이 해고당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감정적으로 대응할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돼. 어떻게 사람과 말을 비교할 수 있겠어? 물론 말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자동차, 트럭, 트랙터가 출현했을 때 말들은 정말 돌아갈 다른 곳이 없었다. 한편 사람들은 영리하다.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론적으론 우리는 항상 새로운 할 일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 경제에도 항상 적절히 살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미래에 인간 노동자를 위협할 기계들은 자동차, 트럭, 트랙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고, 배우고, 적응하는 기계들로 가득찰 것이다. 이것은 기술이 기본적인 인간 능력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말들과는 다르게 만들었던 그 능력 말이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해줬던 그 능력 말이다. 과거에 우리가 봐왔던 기술과 오늘날의 기술이 다른 점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지수적 가속도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을 알 것이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커뮤니케이션, 통신 등에 확장시킬 수 있다. 핵심은 이 가속화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것이란 점이다.  수십 년 동안 진행될 것이다. 단순히 컴퓨터칩의 속도만 봐도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 동안 수십배가 향상되었고 그 가속도는 더 커질 것이란 점이다. 우리는 이것에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아마도 깜짝놀라게 될 것이다.

둘째,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기계들이 사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 로봇은 아니다. 단순히 기계와 알고리즘이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기계들이 문제를 풀고 있고 가장 중요하게는 배우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기계 학습이다. 이는 정말로 강력하고 파괴적이고 확장성있는 기술이다.

가장 좋은 사례는 구글 딥마인드 부서의 알파고일 것이다. 알파고는 최고 수준의 바둑 기사를 이길 정도로 발전했다. 바둑은 체스와는 달리 둘 수 있는 수가 엄청나게 많은데 이젠 인간이 컴퓨터를 바둑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계가 생각하는 것처럼 접근한다는 것이다. 사실 바둑 기사들은 때론 직관에 의지하곤 하는데 기계가 마치 직관적으로 바둑을 두는 것 같아지는 것이다.

사실 세계 챔피언 수준의 바둑을 두는 것은 자동화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을 하나 그어 놓고 선 한쪽에는 기본적으로 일상적이고 반복적이고 예측가능한 일들을 놓는다. 이런 일들은 어느 정도 자동화가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전체 일의 절반 이상일 것이다.

선의 다른 한편에는 인간 고유의 지각 능력이 필요한 일들을 놓고는 이것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둑에서 본 것처럼 이 선은 굉장히 유동적이다. 기술은 언제든 우리가 자동화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

세번째는 저임금노동 혹은 블루칼라 노동,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을 요하는 일들에 대해선 어떤 대안도 없다는 점이다. 회계, 금융 분석, 저널리스트, 변호사, 방사선 전문의 등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 미래의 자동화로 인해 위협을 받게될 직업 혹은 업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미래에 상당한 실업을 겪을 것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최소한 우리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임금이 정체 혹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불평등의 수준이 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회에 스트레스를 가하게 될 것이다. 이것 너머에 현재 수입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직업인데 이것을 잃게 되면 구매력이 감소하는 것이다.

활기찬 시장 경제를 위해선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많은 소비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시장 경제에 성공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를 어떤 섬에 떨어뜨려 놓는다고 해 보자. 거기서 그는 애를 쓰겠지만 시장이 없는 곳에선 스티브 잡스조차 어쩔 수 없다. 시장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이상적으로 볼 수도 있다. 미래에는 우리 모두가 일도 덜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보람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난 이건 끔찍한 비전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애를 써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다. 하지만 우린 좀 더 현실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상당한 수입 분배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일로부터 나타나는 수입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최선의 그리고 확실한 방법은 보장소득 혹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플러그앤 플레이 방식으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구축하고 정제해 갈 수 있는 개념이다. 당신이 학교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고등학생이라 상상해보라. 그래서 당신은 학교를 중퇴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런데 미래의 어느 시점에 모두에게 똑같은 기본 소득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당장이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중퇴할 수 있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주게 될 수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지 말자. 대신 학교를 쉽게 중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뭔가를 더 해서 졸업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 기본소득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을 다른 분야로 확장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돕는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도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긍정적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도 있겠다. 기본소득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강화할 수 있다. 미래에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전통적인 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세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의 문제들을 풀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확장하고 정제함으로써 그것이 좀 더 나아보이게 해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프리라이더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즉 경제라는 카트를 끌기보다는 올라타려는 사람들만 많아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기저에 있다. 하지만 미래에는 기계들이 그 카트를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회와 경제를 운영하는 데 더 많은 선택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를 활기있게 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을 부여하는 것이 일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게되면 전체 시스템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미래의 경제가 모든 사람에게 작동하고,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도 잘 작동하게 하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출처: Martin Ford, How we’ll earn money in a future without jobs, TED2017

이번 지구의 날(Earth Day)은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이 다수의 행사에서 지구온난화를 "값비싼 거짓말 expensive hoax"이라고 부르는 대통령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그는 파리 기후 협약(Paris climate agreement)을 취소하겠다 위협했고, 인간 활동이나 이산화탄소가 기후 변화에 주된 기여요소가 아니라는, 150년 동안의 기초적인 물리학과 수십 년의 과학적 의견일치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Scott Pruitt을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수장으로 임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EPA 예산을 30%이상 삭감하고 직원 수도 15,000명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변화된 태도는 미국과 세계 환경관리에 커다란 공백을 남기게 된다. 이는 민간 부문에서 채워야만 한다.

 

매 지구의 날 매일이 지구의 날이고 우리는 우리의 공유자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쓰고 싶다. 물론 이는 진부한 말이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기후, 청정 공기, 청정한 물, 안전한 식품 등은 가져서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다.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생물물리학적인 지원요소들이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환경규제가 사업을 죽인다"는 쪽 사람들에게는 놀라워보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특정한 규제의 비용과 유익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할 수 있지만, 거시적 수준에서 Clean Air Act와 같이 중요한 법률은 값비싼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익이 되는 규제일 것이다. 몇몇 부문 및 회사들은 탄소 배출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선행 투자를 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이 가장 그렇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이 건강관리 비용 감소가 경제에서 수십 조 달러를 아낄 수 있게 해준다고 추정하고 있다. 직접적인 건강관리 유익만 따져봐도 그렇다. 청정 경제를 유지하는 유익들이 훨씬 더 크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점점 이상해지기는 하지만 숨 쉬기가 어려운 노동자들은 생산성이 낮아지고 누설률이 더 높은 미국의 3,000개 지역들은 차치하고라도 미시간의 Flint 같은 안전한 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들은 강력한 경제를 세우는 데 문제를 겪고 있고, 해수면 상승 혹은 극심한 가뭄과 싸우는 도시들에 있는 사람들은 고객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사람들과 지구가 고통을 받고 있으면 경제가 번성할 수 없다.

 

공기, 물, 환경보호의지가 약화되는 것은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 설탕을 먹어대면서 '왜 이렇게 이상하지'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이 행정부는 공기가 덜 깨끗해지게 놔두고 식품 시스템에 유독한 살충제가 남아 있도록 하고, 급증하는 기후 붕괴가 가속화되게 놔둘 것 같다. 트럼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계 기후 협정으로부터 미국을 탈퇴시키는 것을 천천히 하라고 말한다해도 기후 논의를 업신여김은 세계에 위험한 신호를 보낸다.

 

기업 리더들은 다른 신호를 보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지구의 날 주간은 기업들이 지구를 보호한다고 표명하는 데 항상 적절한 시기이다. 여러 해 동안 이는 주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무를 심는 것에 관한 것이었는데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역할에 점점 더 정교해짐에 따라 그리고 변화하는 기후에서의 위협과 기회에 관한 것이 되어감에 따라 기업들의 공표는 점점 더 크고 대담해지고 있다.

 

이번주만 해도 세 개의 거대 기업들이 자신들의 배출가스와 관련된 가치사슬 전반에서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했다.

 

-월마트는 자신들의 공급처들에 2030년까지 10억톤의 온실가스 절감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10억톤은 세계 배출가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매년 세계 배출가스는 400억톤 정도) 한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상당한 양이다. 이는 2010년 공급업체 목표의 50배에 달하는 수치이고 다른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높은 목표이다.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거의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이미 조달하고 있는 애플은 세 개 이상의 공급업체들도 100%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발표했다.(월마트와 애플의 임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스웨덴 의류 기업 H&M은 2040년까지 전체 공급업체들에게 탄소 배출 목표를 설정했다. 의류 기업에게 이는 어느 곳보다 더 공격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공표는 지난 해 자신들의 공급 업체들에게 온실가스 목표를 설정했던 거대 식품기업 General Mills와 켈로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공급 사슬 목표 요소에 더하지 않은 경우에도 요즘엔 과학 기반 탄소 목표나 100%재생가능 에너지 목표를 설정하는 대기업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많은 기업들이 한쪽으로는 환경 보호를 위해 애쓰면서 또 한쪽으로는 환경 규제를 가능하면 낮추려고 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새로운 기술 및 전기 자동차에 투자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에는 연비 표준을 낮춰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세계가 알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다음 주 워싱턴에서는 두 개의 대규모 행진이 예정되어 있다. 많은 문제들에 대해 거짓 수사를 구사한다고 느끼는 과학자들은 지구의 날에 과학을 위한 행진을 조직했다.(과학 문제들이 극도로 슬프지만 이런 날에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릴 필요) 한 주 뒤 4월 29일엔 기후 행진이 있을 것인데 여러 도시와 주들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과학 행진을 지원하는 데에는 보다 편안하게 여기지만 기후 이벤트에 나타나는 것은 반기업 정서가 있기도 하지만 기업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고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기후 행진을 지원하는 회사들은 16가지 길이 있다)

 

어떤 CEO들은 특히 정치적으로 부과된 환경에 있어 환경보호를 편파적인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학은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다. 고객, 공급업체, 주주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GE CEO Jeff Immelt는 최근 "우리는 기후 변화가 실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 협력사, 국가들이 배출가스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비용은 줄이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틀을 잡았다.

 

나는 더 많은 미국의 기업 리더들이 이 선두를 따르기를 희망한다. 실물 자산, 공급 사슬, 거시 경제를 지키기 위해 기후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한 단계 나아갈 중요한 동기여야 한다.

 

그들이 청정 경제를 향한 진보를 방해하는 행정부가 기업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빨리 깨달을 수록 기업들이 리더십의 공백을 더 빨리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세계적 경쟁자들이 그렇게 하기 전에.

 

출처: Andrew Winston, There's a leadership vacuum on climate change. Business should fill it., HBR, 2017. 4. 17.


사람들은 인생의 상당 부분을 일하는 데 씁니다. 때문에 일은 사람들의 행복 수준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UN 세계 행복의 날에 맞춰 매년 출간되는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일과 행복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결과는 전 세계 150개국에서의 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집니다.(Gallup World Poll) 지구인들의 일과 행복은 어떤 관계를 보일까요?


행복이라는 것을 측정하기 위해 이 조사에서는 최상의 상태와 최악의 상태를 11단계로 나누어 측정합니다. 사람들은 이 조사에 자신이 어느 단계에 위치하는지 답합니다. 이 점수를 통해 일상에서의 기쁨, 스트레스, 걱정 같은 긍정/부정의 상태를 조사합니다. 또한 직업 만족도, 고용자 헌신도와 같은 일터에 초점이 맞춰진 측정치도 살펴봅니다.


어떤 직업이 가장 행복할까?


이 조사에선 직업 유형을 11개 범주로 구분합니다. 여기에는 사업가, 사무실 노동자, 관리자, 농업, 건설, 광업, 운송 노동자 등의 다양한 직업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그룹의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더 행복할까요?


첫 번째로 주목되는 부분은 육체 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낮은 행복 수준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건설, 광산, 제조, 운송, 농업, 어업, 임업 등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관리자, 임원, 공무원, 전문직 등으로 스스로를 분류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을 10점 중 6점이 조금 넘게 평가한 반면, 농업, 어업, 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0점 중 4.5점 정도로 자신들 삶의 질을 평가했습니다.


이는 전체적인 삶을 평가했을 때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구체적인 일상적 감정 경험에서도 발견됩니다. 화이트 컬러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미소, 웃음, 기쁨 같은 보다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경험한다고 대답했고, 걱정, 스트레스, 슬픔,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들은 보다 적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들 통계는 직업 유형 전반에 행복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행복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입과 교육 뿐만 아니라 나이, 성별, 결혼 상태와 같은 많은 다른 인구학적 변수들의 차이를 고려하기 위해 우리는 추정치들을 조종할 때에도 이와 같은 경향은 유사했습니다.


자영업은 복잡하다


자영업자가 되는 것은 행복과 다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세계 평균을 보면 자영업은 고용된 사람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낮은 수준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역과 고려중이 주관적 행복 척도에 따라서 크게 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자영업자가 되는 것엔 더 높은 수준의 전체 인생 평가와 스트레스와 걱정 같은 부정적이로 일상적 감정 둘 다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자영업자가 되는 것이 보상과 스트레스 둘 다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실업 상태에 놓인 이들은 비참하다.


행복 경제학에서 가장 확실하게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는 실업이 사람들의 행복에 파괴적이란 점입니다.. 고용된 사람은 실직 상태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훨씬 더 높게 삶의 질을 평가했습니다. 실직 상태인 개인들은 또한 일상에서 약 30% 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직업을 갖는 것의 중요성은 월급 이상의 의미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고용의 비물질적 측면이 또한 사람들의 행복에 중요한 동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상태, 사회관계, 일상의 구조, 목적 등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행복에 강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실직상태의 사람들이 일을 가지 사람들보다 덜 행복한 것에 더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직 상태로 시간이 흘러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 실업의 마법은 다시 일자리를 얻을 이후에소 사람들의 행복에 흉터처럼 남는 것처럼 보이죠.


실직의 경험이 개인을 비탄에 빠져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실직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영향을 받지만 그 파급효과는 더 큽니다. 실업률 수준이 높이지면 사람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감정이 고조되어 고용되어 있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전세계 직업만족도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결정하는지를 논의했죠. 하지만 직업 만족도와 같은 보다 구체적인 노동 행복 정도는 어떨까요?


갤럽 조사는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하는지 예/아니오로 답하게 했습니다.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의 나라들에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응답자의 95%가 자신들 직업에 만족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가 뒤를 이었습니다. 직업 만족도와 개인 삶의 평가 사이에 0.28 정도의 상관관계를 보입니다.(완벽한 상관 관계는 1) 


어떤 사회들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직업 만족도가 더 크게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럽사회조사(European Social Survey) 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직장인들의 행복과 관련된 특정한 일터의 특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소득이 높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자신들의 삶과 직업에 더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다른 많은 양상들도 다양한 행복 측정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일-삶 균형은 사람들 행복의 특히 강력한 예측 변수가 되었습니다. 다른 요인들에는 직업 다양성,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 고용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개인 자유도 수준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직업 안정성과 사회적 자본도 행복과 긍정적인 상호관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건강과 안전에 위험성을 일으키는 작업은 행복 수준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직업 만족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국가들이 비금전적-직업 특성을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질의 직업을 제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습니다.


높은 직업만족도는 낮은 몰입도를 가릴 수 있다


갤럽 세계 조사에선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일에 얼마나 "헌신", "헌신하지 않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음"인지를 물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직업 만족 수치와는 달리 이에 대해선 훨씬 암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적극적으로 헌신적인 사람들은 보통 20%가 되지 않았고, 서부 유럽에선 약 10%, 동아시아에선 그 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직업만족과 직원 헌신도 사이의 세계적인 결과 차이는 부분적으로 측정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 두 가지 개념이 일터에서의 행복에 서로 다른 측면을 측정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직업만족도는 사람들이 직업에 만족하는 느낌으로 추론될 수 있지만, 직원 헌신의 개념은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일에 긍정적으로 흡수되고 조직의 관심에 앞서나가도록 온전한 헌신을 요구합니다. 직원 헌신도 증가는 극복하기에 더 어려운 장애물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의 행복을 만드는 일과 고용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행복과 고용의 관계는 복잡하고 두 방향으로 작용하는 역동적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과 고용이 사람들의 행복을 이끄는 동력이 될뿐만 아니라 행복이 그 자체로 고용시장 성과, 생산성, 심지어 기업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연구들이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일터에서 행복해지는 것은 단지 개인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출처: Jan-Emmanuel De Neve and George Ward, Does work make you happy? Evidence from the world happiness report, HBR, 2017. 3. 20.

 


[김용민 브리핑 <경제의 속살> 코너에서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가 안철수의 불로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주었습니다. 확인된 사실과 이완배 기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나니 안철수라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최근에 언론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는 안철수의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벤처기업 안철수 연구소는 1995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자본금은 5천만원. 안철수 연구소는 3자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서 자본금을 늘려나갔다. 또한 무상증자를 실시해서 자본금을 늘렸다. 1999년엔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했다. 만기 20년. 이자는 연 복리 10.5%. 액면가 25억원짜리 이 BW(Bond with Warrants)가 3억 3천 9백50만원에 안철수에게 넘어갔다. BW의 신주인수권리에 대한 발행조건은 주당 5만원 행사가격에 25억원이었다. 


그런데 안랩은 BW발행 직후 10월 27일 무상증자로 기존 총 13만주를 38만주로 2.92배로 늘렸다. 때문에 안철수의 신주인수권리 행사가격은 5만원에서 1만 7천 100원으로 낮아졌다. 안랩은 2000년 2월 9일 액면분할로 주식수를 다시 10배로 확대했다. 안철수가 얻을 수 있는 주식 행사 가격이 다시 1710원으로 조정되었다. 2000년 10월 13일에 안철수는 신주인수권부를 행사해서 안랩이 새로 발행한 주식을 주당 1710원에 25억어치를 사들였다. 146만주를 취득해 안철수의 주식 지분은 39.7%에서 59%로 늘어났다.


이재용도 비슷한 짓을 했었다. 삼성 SDS주식을 이용해 230억을 가지고 3조원으로 늘렸었다. 이재용이 나쁜짓을 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어떤 나쁜짓을 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1999년 이재용이 날강도의 전설이 되자 벤처기업들도 이재용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니까. 이거 정말 좋은 방법이구나 라고 기업인들이 깨달은 것이다.


이를 조금은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말해보자.


어떤 회사가 있다. 회사는 돈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돈이 부족할 때는 빌려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은 은행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돈을 잘 안빌려 준다. 그래서 주주들을 찾아가서 투자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투자 받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초창기 기업들은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들에게 각종 혜택을 덤으로 제시하곤 한다.


이 덤이 올려진 것을 BW라 할 수 있다. 덤은 이렇다. 1억원 빌려주면 이자는 당연하고, 특별한 혜택으로 증서를 한 장 써준다. 이 증서를 들고 있다가 매년 이자는 꼬박꼬박 10%는 받고, 언제든 회사에 방문해서 요청하는 때 언제든 원하는 주가에 주식을 주는 것이다. BW를 받고 돈을 빌려준 투자자는 매년 이자 뿐만 아니라 언제든 주식이랑 바꿀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돈이 없을 때나 BW를 발행하는 것이다. 나중에 주식을 헐값에 내줄 것을 감수하고도 발행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나 이재용이 투자한 회사들은 굳이 BW까지 발행하면서 투자금을 모을 상태는 아니었다. 안철수 연구소도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2001년 7월 안철수 연구소 김기대 과장이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했다.


“주식을 코스닥에 상장하면 안철수 대표의 지분이 낮아지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BW를 발행했다.”


엄청난 혜택을 덤으로 주는 BW를 사주인 안철수에게 회사가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즉 안철수의 지분을 높여주기 위해서 발행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3억 5천만원 정도만 회사에 빌려줬다. 당시 안철수 연구소는 코스닥에서 앞다퉈 모셔가려고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안철수 연구소는 1년에 10%가 넘는 이자에 더해 안철수에게 146만 1988주, 전체 주식의 10%가 넘는 주식을 주당 1710원에 넘겨준다는 덤을 약속한 것이다. 2년 뒤 안철수 연구소가 상장되는데 주당 4만6천원이었다. 안철수는 2년만에 700억원을 벌게 된 셈이었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머니투데이 2001년 7월 23일. “안철수씨 경영권 방어용 BW가 황금알로 변하다.”


2월 매일경제, 기자수첩. “BW마술 이대론 곤란하다.” 내용: “가만히 따져보면 BW투자가 불법은 아니지만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BW는 실질적으로는 저가발행과 다름이 없다. 발행 후 딱 한 번만 주가가 반등하면 손쉽게 차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스타 벤처기업가인 안철수 사장도 BW로 대규모 평가차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안철수 후보가 BW로 큰 이득을 얻었고, 회사가 정말 어려워서 BW를 발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런데 불법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이재용의 경우는 재판부에서 불법으로 판정했다.(하지만 과장금 정도로 그쳤다.) 안철수 연구소는 어떨까? 3억 5천이 2년 후 700억원이 되었다. 불법이 있는지 아닌지는 당시 자료를 살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적으로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도덕적으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일단 매우 비도덕적이다. 고작 3억 5천만원을 회사에 빌려주고 700억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안철수가 독점했기 때문이다. 단지 경영권 방어라는 이유로. 이는 의도 측면에선 이재용이 한 짓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재용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후 다른 재벌들은 이런 방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나 소나 이재용을 따라했었다. 안철수가 이런 짓을 한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 하나 안철수가 정말 더 나쁜 사람이었느냐는 아직 판단하기가 어렵다.


첫째, BW를 발행할 당시 안철수가 뭔가 불법을 저지른 일이 드러난다면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기업인으로서도 자격이 없는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도덕적으로는 매우 문제가 있지만 불법 요소가 없었다면 당시에 개나 소나 이런 짓을 했던 것을 정상참작할 부분은 있다. 다만, 불법 요소가 없었다는 점에서 정상을 참작한다는 것은 기업인으로서의 안철수를 판단한 것이다. 경영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적 자격을 묻는다면 자격이 없다고 판단된다.

"인권운동가 한채윤의 지적처럼, 가부장제 사회의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이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색스하는 것이 '정상'이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늑대와 여우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늑대와 여우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토끼라고 부른다. 한술 더 떠서 늑대, 여우, 토끼가 함께 살면 '비둘기 가족'이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우리네 현실이다.

최순실과 박근혜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이제서야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들은 국민에게 위임 받은 국가권력을 사적인 재산 축적과 재벌과의 거래 도구로 사용해왔다. 

특히나 김기춘씨는 50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박정희 독재 부역, 체제 유지를 위한 각종 간첩 조작 사건, 민주화운동 세력 사법 살인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 번도 처벌을 받았던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김기춘을 단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과거의 모든 범죄들까지 샅샅이 죄를 물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송구송구하던 이재용씨가 일단 구속되기는 했다. 삼성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총수 구속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특검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에게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뿐이다. 이재용씨는 그 죄과에 걸맞는 20년 이상의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고 불법,탈법적인 상속을 위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친 것과 상속으로 얻은 재산을 몰두 몰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씨 밑에서 삼성 재벌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권을 이용하고 자신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했던 고위 임원들의 죄과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등 구속수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재용씨가 시켜서 한 것이라는 변명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들은 재벌체제 유지를 위한 부역자들이니까 공범이다.

아 황교안. 전도사 황교안. 기도를 열심히 하는 황교안. 기도모임을 만드는 공안검사 황교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다. 하나님을 믿는 이명박이 하나님의 존재를 회의하게 하는 증인인 것처럼.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이런 사람들을 가만 놔두지 말아주세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이 암만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삶을 살면 뭐합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회의하게 만드는데요. 뭐 비단 이런 사람들뿐만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구요. 이런걸 보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이 없으시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꿔온 세력들. 이들에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태극기를 망토처럼 매고 탄핵반대 집회 단상에서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김진태씨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아구창을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거겠지? 아무리 김진태라도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니까. 해당 지역구 시민들이 적절한 절차를 통해 국회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이명박, 박근혜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권력을 누려왔던 자유한국당은 해산되어야할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정작 해산되어야 할 정당은 자유한국당인데. 도대체가 왜 저런 국회의원들이 표를 얻고 당선되는 것일까? 정말 우리 시민들의 수준이 딱 저만큼인 것일까? 


태극기를 흔들면서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친다. 돈을 받고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몇명은 있을 것이리라. 단상에 오른 한 사람이 저 쪽에 자기들 아이들 같은 애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은 교육이 잘못되어서라고도 한다. 전교조가 있어서 그런거란다. 교육이 잘못되어서. 빨갱이 교육을 시켜서. 이런 사람들까지 대한민국이 품고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사람들을 자양분 삼아 터진 조둥아리라고 막말을 일삼는 김진태와 같은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그냥 놔둬야 하는 것일까? 관제데모라고도 불리우는 현장을 직접 대면하고 나니 기가 막히다.

태극기 집회 현장을 둘러보고 나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광화문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관제데모에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대한문 앞과 시청광장 약간을 채우고 있었을 뿐 광화문 쪽으로 조금만 걸어나오니 이렇게 도로는 빈자리가 많다. 보수 언론들이 얼마나 거짓을 전하고 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보수 언론들이 활개를 치며 설치게 놔둬야 하는 걸까? 

광화문 쪽으로 계속 걸어 올라가다 보니 휴전선이 나온다. 마치 공동경비구역 느낌이다. 한반도처럼 대한민국의 광장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시청쪽에는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쪽은 촛불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경찰 버스가 꽤 긴 거리를 막아두었다. 두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란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처럼. 사실 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저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태극기를 들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저 사람들도 나 같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겠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또 다른 분단의 모습을 광장에서 만난다.

그런데 이 비무장지대 부근에 촛불시민이 관제데모단에 침투를 시도했다. 허를 찔린 관제데모단은 촛불시민에게 물리력을 가하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근처 경찰들은 드디어 본연의 임무인 시민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촛불시민을 빙 둘러싸고 관제데모단을 막아섰다. 참 오랜만에 경찰들이 제 역할을 했다. 매번 권력의 시종처럼 시키면 옳던 그르던 지시를 따르기만 했던 경찰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좀 정신을 차린건가? 아무튼 다행히도 적진에 뛰어들었던 촛불시민은 경찰들의 보호와 안내로 다시금 광화문 광장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나누어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과연 같은 대한민국에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분단의 아픔처럼 광장의 분단도 아프다.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역에 내렸다.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왔는데 분위기가 낯설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흔들고 있다. 이게 바로 뉴스로만 접했던 맞불집회였다. 때마침 자유한국당(전 새누리당) 김진태씨가 단상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었다. 태극기를 둘러매고 입에 담기조차 혐오스러운 말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김씨의 발언에 화답했다. 이곳에서 흔들리는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태극기까지 혐오스러워졌다.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왜 이런 자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태극기와 성조기는 왜 같이 흔들고 있는 걸까? 그 아래에는 영국과 중국의 국기까지 있다. 뭘까 이자들은. 듣기로는 돈을 받고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보인다. 그런데 지나다 보니 젊은 청년들 몇몇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일부 청년들이 혹시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로 인해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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