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미래

작가
팀 던럽
출판
비즈니스맵
발매
2016.12.23.
평점

리뷰보기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


신약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개역개정)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 말을 했던 사도바울이 <노동없는 미래>를 읽는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이 표현을 공산주의의 원칙으로 삼아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노동에 높은 가치를 뒀던 레닌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궁금합니다.

 

매일 노동과 돈을 맞바꾸며 살고 있는 제게 '노동없는 미래'는 항상 꿈꾸지만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해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어주고 원하지 않게 이상향에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몰린 노동없는 미래는 '실직'이라는 두렵고도 슬픈 미래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요? 팀 던럽은 인공지능, 로봇 혹은 다른 어떤 종류의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이 된 급료를 받는 일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인가라는 물음 대신 일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일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고 유용한 부의 재분배 방식이 아니다. 이제 일은 최저 생활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으며, 그 몸부림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처절해져 가고 있을 뿐이다."(16쪽)


일을 바라보는 위와 같은 관점은 제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가 굳이 일하지 않아도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일의 과거와 현재, 기술과 일자리의 관계, 기본소득 제도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불안감의 뿌리는 일자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


고대에 '노동'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일'은 자유인이 온전한 시민권과 인간적 성취를 추구하는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이 경계가 희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 혹은 노동이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애덤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를 거치면서 노동은 개인적 생존 차원을 넘어선 유익하고 '생산적'인 일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자긍심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은 상품이 되었고, 일자리는 귀해졌습니다. 때문에 고용인과 고용주의 불평등한 관계는 심화되었습니다. 여기에 막스 베버의 '개신교적 노동 윤리'가 등장해 자본주의와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천직 혹은 소명이란 개념이 등장합니다. 천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일을 기계들이 대신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라면 아마 기꺼이 로봇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듯한 상상입니다. 기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진 불안감의 뿌리는 일에 대한 관점에 있습니다.


"우리 삶을 일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그 일을 앗아가는 모든 기술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이는 현재 우리의 경제적 행복이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가진 일자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47쪽)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기본소득


저자는 묻습니다. "과연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가? 그리고 과연 내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자동화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일의 미래와 관련되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자동화와 노동이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면서 생산성과 수입을 증대시키고 노동 수요를 늘린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양쪽의 입장엔 각각의 전제와 가정이 있기 때문에 전망도 엇갈릴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팀 던럽은 "인간이 미래에 관해 얘기하면, 신들이 웃는다"라는 중국 속담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증거들을 면밀히 살펴 가장 그럴듯한 미래를 추측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들에는 많은 변수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여지가 항상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인가 하는 의문 속에 갇혀 있지 말고, 일의 미래에 대해 더 나은 사고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우리가 겪을 커다란 변화를 부정하지 않으며, 그래서 의문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맞춰지게 된다. 우리는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걸까?"(130쪽)


저자는 자동화 시대의 일자리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뜸금없는 것 같지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사람들이 낭비하고 나태해지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우려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로 인한 일자리 감소 및 실업에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입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미래로 돌아가는', '탈 노동'이라는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할 것인지, 복지와 다양한 노동 보호 정책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유급 고용 중심 체제를 벗어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을 꿈꿔볼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 데 쏟지 않고 개인적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 또 급여나 각종 수당을 못 받게 되거나 일자리 자체를 잃게 될까 두려워 늘 시간 맞춰 출퇴근하고 온종일 뼈 빠지게 일하는 게 아니라 가족 및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 말이다."(222쪽)


말미에 인용된 제임스 퍼거슨의 주장이 신선합니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배부르게 해줄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고 살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는 격언은 저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개념입니다. 하지만 제임스 퍼거슨의 주장처럼 지구촌 전체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일정 몫을 사람들이 나누어 받게 된다면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울 필요 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자리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저자가 제안하듯 '탈 노동'의 미래에 대해 상상해 보고 논의해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정부에서도 일자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일'에 대한 개념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조금 더 나아가 '일의 대안'을 찾아보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3색볼펜 읽기 공부법

작가
사이토 다카시
출판
중앙북스
발매
2016.02.11.
평점

리뷰보기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있다. 그 생김새와 냄새는 물론이고, 그것이 전해준 약속까지 모두 다 사랑한다. 때로 그 책들은 너무나 흉측하게 변해 있기도 하고, 역겹고 실망스러운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참 신기한 것은 흰색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빼곡히 박혀 있는 그 평범한 물건들에서 매번 하나의 신세계가 솟아나온다는 사실이다.”


“책은 결코 삶과 대립하지 않는다.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 중에서 -


이토록 책을 사랑했던 한 독서가 샤를 단치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책 자체를 소중히 다뤄 밑줄을 긋거나 책장을 접지도 않을 것이지만, 누군가는 똑같이 소중한 마음으로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밑줄도 치고 빈 공간에 메모도 하면서 책을 읽을 것입니다.


책 자체를 다루는 방식 만큼이나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접근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랜 독서가라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틀이 잡혀있을 것 같고, 반면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이들은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몰라 막막할 것도 같습니다. 이런 초보 독서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습니다. 제목도 표지도 매력적이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을 나름 재미있게 읽고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 같은 <3색볼펜 읽기공부법>입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의 대가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과 상통하는 생각을 전합니다. 저자는 독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다가가는 좋은 훈련”(81쪽), “독서는 정보 습득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폭넓게 수용하는 행위”, “독서는 여전히 유효한 공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86-87쪽) 


그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요?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3색 볼펜'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자유롭게 밑줄을 그으며 읽기를 권합니다. 책이 지저분해지기에 밑줄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시험삼아 책에 밑줄을 죽죽 그어보니 나름의 쾌감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나만의 책'으로 삼는다 생각하니 크게 망설이지 않고 줄을 그을 수 있었습니다.


“책에 줄을 긋다보면 자연히 문장을 읽는 데 열중하게 된다. 즉, 문장에 자신을 더욱 강하게 관여시키는 것이다. 손을 움직여 줄을 긋는 육체적 행위는 문장과 자신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이 책과 자신 사이에 생겨난다.”(28쪽)


“3색볼펜 읽기는 독서의 '신체감각'을 기술화하는 방법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감각은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줄이라는 각인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224쪽)


저자가 3색볼펜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결국 저자가 제안하는 책읽기 방법은 객관과 주관을 분리해가면서 책을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즉, 객관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곳에는 파란색과 빨간색 밑줄을, 주관적으로 중요하거나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초록색 밑줄을 그으며 읽는 겁니다.


“3색 볼펜 읽기의 최대 목적은 주관과 객관을 전환하는 기술을 익히는 데 있다.”(59쪽)


특히 객관적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자의 독특한 표현이 힘있게 담긴 부분엔 빨간색으로 표시합니다. 문장에 맛이 있는곳 혹은 자신의 취향이 투영된 관심거리에는 초록색 밑줄을 사용합니다. 저자는 여러가지 책을 읽을 때 신체와 관련있는 표현 중 재미 있는 곳에 초록색 밑줄을 그어두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관심있어 하던 정보를 꾸준히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것과 같이 책을 읽는 훈련을 하게 되면 저자가 말했듯이 “객관적인 요약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곳을 구별해냄으로써 주관적인 생각을 단련”(88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책을 읽는 초보 독서가들에게 유익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는 모든 독서가들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줄을 긋는 것은 타인의 강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있다. 스스로 책을 더욱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이 곧 책을 더욱 자유롭게 읽는 방식이지 않을까?”(132쪽)


“3색의 색 구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훈련으로써 중요하다. (중략) 줄을 그으며 읽어나가는 동안 사고를 깊게 하거나 능동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143쪽)


이렇게 책을 읽고 이해하게 되면 종종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냥 흥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 읽었던 책이 그냥 머릿속을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 짧게 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읽기와 쓰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자도 효과적인 읽기 방법을 이야기하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읽기와 쓰기는 별개의 행동이지만 서로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만약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기라는 행위의 축적을 기반으로 쓰기라는 스킬이 생겨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중략) 쓰기라는 작업은 방대한 읽기 위에 성립되는 빙산의 일각과 같다. 수면 아래에 보다 방대한 독서량이 존재할수록 쓰기는 당연히 쉬워진다.”(166-167쪽)


“비평을 잘하는 요령도 이와 같다. 오히려 줄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데 주목해보라. 결론이 해당하는 내용만 가지고 풀어나가다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글을 쓸때는 반드시 자신만의 엣지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논쟁이나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지루한 문장, 즉 죽은 글이 될 수 있다.”(172쪽)


'죽은 글'.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고민이 고밀도로 표현된 말인 듯 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어느 새 저도 책과 함께 3색볼펜을 들고 책읽기를 연습해 봅니다. '나만의 책'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쓰기'라는 빙산의 일각을 물 위로 올려놓기 위해서. 어찌보면 촌스러워보이는 <3색볼펜 읽기공부법>.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닐지라도 어떤이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작가
황석영, 이재의|전용호
출판
창비
발매
2017.05.15.
평점

리뷰보기



지난 5월 18일 37주년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자들은 광주 민중항쟁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9년만에 공식적으로 제창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촛불 정부 탄생으로 이루어진 올바른 역사인식 회복의 서곡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때부터 왜곡되고 폄훼되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의 위상 바로세우기와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부상자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상처 치유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잔혹한 국가폭력을 행사했던 전두환, 노태우 정부가 물러난 후 90년대 민주정부 하에서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지속되었습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민중항쟁의 진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여러 가지 한계는 있었으나 폭력을 행사한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진실이 남아 있으며, 당시 시민들이 입은 깊은 상처는 3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들까지 아우르는 온 국민에게 5.18 광주 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리고자 자신을 희생하며 호소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에 기반이 되었던 책, 1980년 오월의 광주를 기록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개정판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온갖 어려움 끝에 1985년 출간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금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백지의 표지 상태로 시중에 배포되고 입소문으로만 몰래 판매되었는데도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책입니다.


광주 민주항쟁의 고전, 촛불 시민에게 다시 오다

이 책이 32년만에 개정증보판으로 2017년의 촛불시민에게 찾아왔습니다. 주저자 중 한 명인 이재의 님이 책의 말미에 개정판을 내며 쓴 짧은 글에 이 책이 역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어떤 난관을 뚫고 초판이 세상에 나왔는지를 알게 되니 더 숙연해집니다. '항쟁의 진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민주 시민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재의 님이 밝히는 이번 개정판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넘어넘어> 초판이 피해자인 광주시민의 증언과 기록만을 토대로 집필된 데 반해, 개정판은 그 이후 밝혀진 '계엄군의 군사작전' 내용과 5.18 재판 결과를 반영하여 '역사적/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5.18을 현장에서 목격한 내외신 기자들의 객관적인 증언도 실었다. <넘어넘어> 초판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인식과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개정판에서는 초판과 달리 증언자들의 실명을 밝혔다. 다만 계엄군 관계자 가운데 하급 지휘관(대위, 중대장 이하)이나, 사병들의 경우 익명으로 처리하였다. 법률적으로 처벌받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진압작전을 지휘한 책임이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대대장들의 이름은 실명으로 밝혔다."(584쪽)

지난 두 번의 정부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지독히도 훼손하고 싶어했던 5.18의 민주적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이 책이 다시 읽혀야 합니다. 또한, 저자 황석영 님이 쓴 것처럼 옛 권위주의 체제의 기득권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던 '타협적 민주화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도 1980년 광주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촛불 혁명을 이뤄가고 있는 우리는 진실한 5.18의 기록을 고통스럽지만 다시 한번 마주하며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이 책을 '지금까지 나온 광주항쟁에 관한 여러 기록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고전적인 저술'이라 평가합니다. 그는 '광주의 비극이 서울과 워싱턴 두 나라 정치권력의 합동작품이었다'는 점을 고통스럽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군사독재자들을 수십 년간 지원한 결과로 광주항쟁이 일어났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민주의 가치를 피로서 지켜온 대한민국 국민에 경의를 표합니다.

왜 광주였는가?

1980년 광주의 비극에 도화선이 된 사건은 이전 해 유신독재에 항거해 일어났던 '부마항쟁'과 이후 이어진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이었습니다. 책의 시작 부분엔 1979년 10월 박정희의 죽음 이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부상 배경과 과정, 그리고 5월 민중항쟁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사건들이 압축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당시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에 비해 이 열기를 담아낼 만큼 준비되지 못했던 민주운동 진영과 조직적이고 공격적으로 권력 찬탈을 준비 했던 신군부의 모습이 대조되어 안타까웠습니다.

게다가 당시 운동권 인사들은 미국의 입장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주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학생 시위를 필두로 저항의 물결이 일어나자 군부는 미국의 동의 하에 군대를 동원해 민주화 시위 진압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했습니다. 5월 13-14일 전국의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입니다. 당시 군부는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활동 및 비정규전 위협이 예상된다'는 이유를 대며 소요 진압을 위해 군대 동원을 준비합니다.

치열해지던 학생시위 속에 서울에선 총학생회 대표들이 격론 끝에 시국 추이를 관망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시위를 중단하기로 합니다. 일명 '서울역 회군'을 결정합니다. 이와는 달리 광주에선 5월 16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횃불시위'로 민주화대성회가 개최됩니다. 결국 군부는 17일과 18일에 걸쳐 국무위원을 겁박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결의하게 하고 국회까지도 점거함으로써 쿠데타를 완성해갑니다.

광주/전남 지역의 반응을 주시하던 신군부는 군대를 배치해 학생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연행됨에 따라 총학생회 지도부는 힘을 잃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저항의 불길은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5월 18일 시위 학생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하다 공수대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폭력을 가한 것이 항쟁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출처: 5.18 기념재단

학생시위에서 민중항쟁으로

대학생에 이어 고등학생들까지도 희생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광주 시민들은 더욱 비장해졌습니다. 책에는 공수부대의 잔혹함 앞에 전부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위기감이 '잠재되어 있던 민중의 원초적 생존 본능의 뇌관을 건드렸다.'라고 당시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이 점점 더 거세지자 군인들의 폭력도 더욱 강력해졌고 결국 고교생 한 명이 총에 맞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이같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이 때에도 언론은 민중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평소처럼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그램만 방영되고 있었다. 나라의 한편에서는 '집단적인 인간사냥'이 벌어지는데, 텔레비전에서는 다리를 흔들어대며 춤을 추는 출연자의 모습만을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배신감과 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다음날 시위대가 문화방송국을 불태워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120쪽)

20일부터는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격해지시 시작하자 정부는 공수부대의 투입을 늘려갑니다. 광주 시민들은 자신들을 '폭도'라 매도하는 진압군을 향해 더욱 분노합니다. 금남로에는 '어린 꼬마 손을 잡은 할머니부터, 학생, 회사원, 주부 등 모든 계층, 전시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날 저녁 시간엔 대규모 차량시위가 조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저자들은 이 때를 '민중 스스로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온 생애를 던졌던 항쟁의 정점'이라고 평가합니다.

출처: 5.18 기념재단


극단적으로 대치되던 전투는 결국 시민을 향한 군인들의 발포로까지 치닫게 되면서 잔인한 학살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헬기에서도 총을 쐈다고 하니 군인들은 시민들을 적 혹은 폭도로 여긴것이 틀림 없어 보입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시위대도 예비군 무기고 또는 광주 주변 지역의 경찰서 등에서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하고 진압군에 맞서게 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됩니다. 군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흑백 이념으로 세뇌된 병사들은 광주시민의 저항을 '용공부낮들의 준동'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섬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광주시민은 '국민'의 구성원이 아니라 '적'이 됐고, 병사들은 양심의 거리낌 없이 그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249쪽)

잠시 동안의 해방 공간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계엄군은 잠시 물러나고 시민들은 약 6일 동안의 해방기간을 맞이합니다. 저자들은 이 기간을 "'특정 집단이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민중의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돼 억압체제를 무너뜨렸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도청 앞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분수대 위로 올라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정한 형식이나 제약도 없이,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순전히 자연발생적으로 궐기대회가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나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말했지만 시민들은 이를 통해 서로를 공감하고 일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출처: 5.18 기념재단


해방기간 동안 광주시민들은 계엄군과 여러차례 협상을 하게 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합니다. 또한 신군부 입장에선 광주에서의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안정적으로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쉽게 협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계엄군은 25일 광주를 '소탕'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27일 공수부대에 의한 잔혹한 도청진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광주 민중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선 현재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남겨진 과제를 말해줍니다. 당시 희생되어 암매장된 70여명의 사람들이 37년이 지난 현재에도 행방불명자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사체를 직접 묻었던 군인들의 자기고백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책에 따르면, 1988년 광주 국회청문회를 통해 광주 학살의 진상이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항쟁의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학살 책임자들의 반성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는 전두환,노태우 등 고위지휘관 9명을 5.18책임자로 고소, 1994년 시민사회단체가 5.18유혈진압의 책임을 물어 전두환, 노태우 포함 35명을 고발하였으나 각각 무혐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어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출처: 5.18 기념재단


이후 각계의 끈질긴 노력으로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어 1997년 12.12쿠데타와 5.18학살책임자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대법원은 12.12쿠데타를 군사반란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신군부의 진압을 내란으로 판정'했습니다. 하지만 학살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장지휘관들은 전혀 처벌되지 않았고, 책임자들이 법정에서 남발한 위증들에 대해서도 추궁되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은 철저하지 못한 책임자 처벌은 역사적 진실 왜곡과 항쟁 과정에 대한 거짓 주장들이 난무하게 했습니다. 행방불명자 확인, 발포책임자, 현장지휘관에 대한 처벌,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명예회복과 상처 치유,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이들에 대한 처벌 등 대한민국에 남겨진 과제들이 새 정부에서는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작가
기시미 이치로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17.03.15.
평점

리뷰보기


제목에 '혹' 하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가 그랬습니다. 제목에 더해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라는 부제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일 것만 같았던 제 부모님에게서 소위 말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되는 최근 몇 년 동안 종종 생각하게 되는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대 때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했고, 50대 때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꽤 오랜 기간 동안 돌봤다고 합니다. 본인도 예상치 못한 심근경색으로 투병을 하며 꼼짝하지 못하는 기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과 생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부모님과의 인생을 통해 가졌던 “움직일 수도 없고 의식마저 잃었을 때, 과연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나의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이 물음에 진부한 대답을 합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노화'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자는 겁니다. 저자는 인간 혹은 인생의 가치 평가 기준을 생산성에서 '존재'로 옮겨보자고 제안합니다.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뭔가를 달성하는 것, 생산적인 것만을 유일한 가치로 믿으며 살아온 사람은 나이가 들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실을 비참하게 여깁니다.(중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50쪽)


이런 생각은 기시미 이치로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도 들을 수 있는 제안입니다. 하지만 진부해보이는 대답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그것이 진리 혹은 사실이라서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표지나 책 날개에 있는 문구를 보고 기대했던 독자들은 저자의 대답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제안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때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지만 막상 가족이 혹은 자신이 크게 아파 몸져 눕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단지 숨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적응해 가는 데에는 저자가 아픈 부모님과 오랜 시간 지내온 것처럼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동안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사자가 자신의 인생에 가치를 느끼도록 돕는 것 뿐입니다.


책의 중반부에서부터는 저자가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의 인생을 차츰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실제로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모셨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절절하게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지금, 여기' 현재만을 살았다는 표현, 부모님의 기억이 사라졌을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세월 속 자신 또한 지워진 것 같은 기분 등이 마음에 깊이 남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이 취했던 태을 기반으로 모범 답안과도 같은 조언들을 써 내려갑니다. 어떤 문제에는 모범 답안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둔 자녀들에게 더욱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노인이 된 부모를 둔 대부분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라.”
“과거를 잊어버렸다면 그 시점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과거와 현재의 구별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어도 굳이 일깨워 줄 필요는 없다.”
“예전에는 뭐든 할 수 있었던 이상적인 부모님의 이미지를 머리에서 지운다.”


“자식 눈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의 현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오늘 할 수 있었던 일을 내일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자.”
“때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부모님을 간병할 때 진지하되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부모, 자식이라는 역할의 가면을 벗고 한 인간으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모님을 좀 더 잘 간병하고 싶겠지만,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할 수 있는 일뿐이다.”
“간병에는 왜(why)가 없다. 어떻게(how) 밖에 없다.”


저자는 말합니다. “스스로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을 가치 있다고 여긴다.”(224쪽)고. 이것은 병을 앓고 있는 노부모에게도 그들을 돌보는 자식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좀더 확장하면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읽으면서 '진부한데?' 혹은 '뭘 이런걸 책으로까지 썼어?'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시미 이치로가 인생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인생을 출발점과 목적지가 있는 길에 비유했을 때, 효율적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과연 효율적으로 살고 효율적으로 죽을 필요가 있는 걸까요? 길 위에서 지정거리고,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시간을 잊고 놀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꽤나 먼 곳까지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238쪽)


주변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애쓰며 허덕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버스를 놓친 저자가 자신의 아들과 다음 버스를 기다릴 때 깨달았던 '어린 아들의 시간이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흐른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애써 돌진하기보다는 기시미 이치로가 말했듯 순간순간의 움직임이 완전한 형태를 이루는 '춤'을 추는 것 같은 인생을 걸어볼까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대중화로 인해 전자책이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이에따라 다양한 종류의 전자책 리더기들도 출시되었습니다. 종이책은 이제 곧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에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책을 읽는 비율이 감소하고 있고 다시 종이책 판매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자책을 읽을 때와 종이책을 읽을 때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역시 책을 읽는 맛은 종이책을 넘길 때가 좋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시간이 더 지나면서 이들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2016년 9개월 동안 미국의 전자책 판매는 18.7% 감소했고, 영국에서는 2016년 한 해 동안 17% 감소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같은 기간 동안 종이책 판매가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같은 기간 종이책과 잡지 판매는 7% 증가한 반면 어린이 책은 16%가 증가했다. 같은 경향이 미국에서도 나타났는데 미국에서 보급판 책은 7.5%, 양장본은 4.1%까지 판매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종이책 판매가 꼭 문학 분야에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책은 항상 인쇄본이 더 인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드커버 형식의 책을 더 좋아했다. 또한 색칠공부 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크게 유행했다."


영국의 Ofcom은 일부 소비자들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도하기도 했다.


"Ofcom은 2016년엔 성인의 3분의 1정도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디지털 해독(digital detox)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2011년에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전자책 리더 판매에서 주된 변화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전자책 리더 대신에 주로 태블릿을 선택하고 있다. 나 역시 킨들을 버리고 아이패드에 있는 iBooks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얼마나 책을 읽는가?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1,400여권을 가지고 있고, 책이 없는 집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대체로 전자책을 읽는다.


출처: Ben Lovejoy, eBook sales down 18.7% in the US, 17% in the UK, as paper book sales climb, 9To5Mac.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침묵의 기술

작가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출판
arte
발매
2016.02.20.
평점

리뷰보기


갑철수, MB아바타, 강간미수, 삼성세탁기, 설거지는 여자가, 동성애 반대.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자신을 갉아먹는 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체로 이런 말들은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부메랑이 되곤 합니다. 이로 인해 토론회 후 후보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TV토론은 이제 두 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선후보들은 남은 토론회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선후보들은 지금까지보다 더 강박적으로 말을 쏟아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대선후보들에게 역설적인 책 한 권을 추천합니다. 1771년에 출간되었던 <침묵의 기술>이라는 아주 짤막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침묵의 역설을 이해하고 토론회에 임한다면 지금까지의 실수들을 만회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학창 시절 시험전날 벼락치기 한다 생각하며 이 책을 읽으시고 토론 준비하는 데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난 해 한국어판을 내면서 번역자인 성귀수님이 당부한 점을 꼭 이해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18세기 성직자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을 저자인 디누아르 신부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교회는 말 그대로 행정적 시스템으로 변질되어가는 추세였고, 순수한 신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었다. 그에 따라 성직자 역시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공무원이자 관리로서 전통적 제도를 주관하는 가운데, 글과 말을 통해 그것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일이 직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서문, 한국어판을 펴내며)


때문에 책의 앞부분에 제시된 침묵에 대한 고찰 이외에 세부적인 내용들은 '보수적 사회질서의 수호를 강력하게 주창하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문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을 번역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루소, 볼테르, 디드로 등 혁명적 사상가들이 전복의 담론들을 앞다퉈 쏟아내던' 시기에 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한 것을 보면 저자의 수구적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고 보면 디누아르 신부가 제안한 침묵의 기술은 '말'과 '글'로 인해 신세를 망칠 수도 있는 대선후보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썼던 글로 인해 정체성을 드러냈던 홍준표 후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짧은 시간만 주어지는 토론회 동안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다 보면 말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다음 원칙들을 잠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지혜에서도 상책은 침묵하는 것이고, 중책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이다.”(서론)


디누아르 신부가 제시한 침묵의 필수 원칙 14가지 중 인상적인 문장들을 살펴보시죠.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말을 해야 할 때가 따로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언제 입을 닫을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을수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할 말을 먼저 혼잣말로 중얼거려본 다음, 그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혹시라도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가며 다시 한 번 되뇌어보아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할 때 침묵은 넘칠수록 좋다.”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현명한 자의 침묵은 지식 있는 자의 논증보다 훨씬 가치 있다.”
“사람들은 보통 말이 아주 적은 사람을 별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을 산만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아무리 침묵하는 성향의 소유자라 해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약에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1장 1절 침묵은 하나의 능력이다)


저자는 침묵의 대 원칙을 제시한 후 침묵의 유형을 10가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침묵의 유형에는 신중한 침묵, 교활한 침묵, 아부형 침묵, 조롱형 침묵, 감각적인 침묵, 아둔한 침묵, 동조의 침묵, 무시의 침묵, 정치적 침묵,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침묵이 있습니다. 디누아르 신부는 각각의 유형을 한 두 문장으로 설명하고 그러한 침묵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서도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대선후보들이 자신의 기질을 토대로 다양한 유형의 침묵 기술을 적절히 시연해 두 번 남은 토론회에서 이미지 쇄신을 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일반 시민들께도 일상생활의 대화와 인간 관계 속에서 위와 같은 침묵의 기술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에 한 번쯤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디누아르 신부는 말과 침묵에 대해 쓴 후 글과 침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글을 쓰거나, 이따금 너무 많은 글을 쓰거나, 때로는 충분히 글을 쓰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물론 저자가 서두에 언급된 것처럼 교회를 비판하거나 당시 체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정당한 글쓰기조차 잘못된 글쓰기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부분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 저자가 생각하는 원칙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 만한 문제제기입니다. 쓸데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좋은 내용이라도 지나치게 미주알고주알 글로 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진 한계를 무시해가며 닥치는 대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글을 쓰고자 하는 격한 감정에 취해 서둘러 글을 써내고 있지는 않은지?


책의 후반부에선 1장에서 다루었던 말의 침묵 원칙들에서 '말'을 '글'로 바꾸어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제안합니다. 이 역설적으로 보이는 침묵 원칙들을 토대로 글쓰는 제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침묵보다 나은 쓸거리가 있을 때에만 펜을 움직인다.”
“펜을 붙들어두는 법을 먼저 깨치지 않고서는 결코 글을 잘 쓸 수 없다.”
“글을 써야 할 때 펜을 붙들어두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펜을 붙들어두어야 할 때 글을 쓰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긴요하게 쓸거리가 있을수록 특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먼저 생각을 하고 또 해보는 가운데, 혹시라도 글을 쓴 다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가며 쓸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아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경우 결코 그것을 글로 옮겨서는 안 된다. 절제는 그 때 넘칠수록 좋은 무엇이다.”


“아무리 글쓰기를 자제하는 성향의 소유자라 해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약 무언가를 쓰고픈 요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펜을 붙들어두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2장 4절 침묵은 하나의 처세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작가
김혜원
출판
오마이북
발매
2011.03.31.
평점

리뷰보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어떤 책들은 쉽게 펼쳐보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 후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을 인터뷰했던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랬습니다. 책이 출간되고 2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상황과 슬픔을 진정으로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책을 읽고는 그 고통을 너무 쉽게 안다고 말할까봐, 깊은 슬픔들을 헤집어 보면서 이들을 동정하기만 할까봐 읽기를 미뤄왔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를 들고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생각해보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던 분들인데 겉표지의 할머니 사진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일부러 눈에 잘 띄지 않는 책꽂이 아래쪽 칸에 채워진 다른 책들 위에 올려놓고 며칠을 흘려보냈습니다. 어느 날 읽을 책을 찾으려고 책장을 살피는데 표지의 할머니가 안경을 벗으시며 제게 한 마디 건네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책을 다시 집어들었습니다. '독거노인 열 두 명의 인생을 듣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노인'이라고만 해도 외로움과 쓸쓸함이 떠오르는데 한술 더 떠 '독거노인'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대면할 자신이 없어 또 다시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헌데 내려놓은 책 뒷표지"사는 모습과 생김새는 달라도 여든을 바라보는 내 부모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그분들 삶에 대한 연민과 존경 때문"이라는 한 구절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또 “독거노인의 삶을 동정이 아닌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자의 바램처럼 독거노인들을 그냥 불쌍히 여기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분들의 외로움,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겪어왔던 아픔을 공감하며 고통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 두 분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견뎠습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향한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으셨던 분들입니다. 죽도록 일했지만 결국 가난을 대물림 할 수 밖에 없었던 슬프고도 처절한 현실이 절절하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 길지 않은 인터뷰 글들인데 어느 이야기 하나 단 번에 읽어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얼굴이나 한 번씩 볼 수 있게 잊지 말고 자주 찾아와 달라 말씀하시는 박복례 할머니. 20년 전부터 하루 한 두끼를 라면으로 해결해 오셨고,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복지단체 노인잔치가 가장 기다려진다는 고재호 할아버지. 자신은 관절염, 허리통증, 고혈압과 당뇨병 등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손자만은 잘 되기를 바라시는 주삼순 할머니.


한겨울에도 난방비 낼 돈이 없어 보일러도 켜지 않고 지내셔야 하는데다 거동도 불편하신데도 노인정 봉사활동을 쉬지 않으시는 이금예 할머니. 독거노인으로 살아가지만 매니큐어도 바르고 화사한 블라우스도 입으시는, 하지만 그 이면에 깊은 아픔을 간직하고 계셨던 조필남 할머니. 과도한 노동 후유증과 사고로 척추가 내려앉아 거동조차 어렵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봉사자의 자녀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시는 박막순 할머니.


무엇이 이분들을 이토록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것일까요? 저자는 독거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분들의 삶을 기사로, 책으로 알리면서 우리 사회의 복지 현실과 한계를 지적합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독거노인들의 고독사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그때마다 노인 정책과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하지만 이렇다할 대책은 세워지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삶과 고독한 죽음에 우리는 정말 아무 책임도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일까?”


“차마 꺼내기 어려웠던 독거노인들의 삶을 이렇게라도 들추어내어 알리려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이 사회적 배려와 관심, 지원의 결핍으로 매일을 죽음과도 같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지내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며 이들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공동체적 대책과 지원방안을 마련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19-20쪽)


이와 같은 기대를 하며 저자는 기사와 책을 썼습니다. 당시에 글을 통해 알려진 노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저자는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가가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내 실질적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착한 이웃들도 있었기에 작은 희망을 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기사로, 책으로 독거노인의 이야기를 알린 지 7,8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독거노인 지원 정책은 어떠했는지,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던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주변 관심있는 이웃들이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폐지를 모으시는 분들은 과거보다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모든 분들이 독거노인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노쇠한 몸으로 가난과 홀로 싸우는 어른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따뜻해지는 봄날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어 상대적으로 이분들이 소외되는 것은 아닐지도 걱정됩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의 정책들에 노인복지와 관련된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있다면 이 책에 언급된 것과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대안을 고민했을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 복지 정책을 기획/실행하는 역할을 맡게 될 분들은 복지 정책에 대해 저자가 강조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거노인들을 향한 복지는 무조건 베푸는 식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신 어른으로서 노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기초가되어야 함을 저자는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가가 채워야 했던 자리를 대신 채워주었던 봉사자들의 호소를 대신 전했습니다.


“그들(봉사자들)은 이야기한다. 아무리 대단한 지원이라도 노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복지가 되어야 한다고. 밥 한 끼를 대접하더라도 품위 있게 드리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바닥에 떨어진 노인들의 자존감을 높여드리는 정신적 지원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318쪽)


우리들 할머니,할아버지 혹은 부모님 같은 독거노인들이 올 겨울은 따뜻하게, 배고프지 않게,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으며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떠나고싶을때나는읽는다

작가
박준
출판
어바웃어북
발매
2016.02.26.
평점

리뷰보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외 대통령 후보께


대통령 파면에 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 만큼이나 제 머릿속도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증이 솟아오릅니다. 대선후보로 나선 분들은 요즘 어떤 심경인가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혹은 상대후보의 지지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동분서주 하느라 정신이 없으시겠지요.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추천해 드리고 싶지만 선거를 앞두고 그럴 수 없겠지요. 현실의 제약을 넘어 세계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책여행을 통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지는 마세요.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괜찮은 책 한 권 추천합니다. 박준이란 여행작가가 2010년 출간 했던 <책여행책>을 개정판으로 다시 낸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에요.


“책은 여행과 마찬가지로 낯선 세상을 보여주고, 세상과 내가 사는 이곳의 차이를 드러낸다. 차이를 인정하면 삶이 유연해지고, 단단해진다.”(8쪽)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올바르지 않은 것에는 굳게 저항할 수 있는 단단함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특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당하고 있는 후보님들에게 더욱 그러합니다.


모순되는 듯한 유연함과 단단함을 둘 다 갖추는 게 가능하냐고요? 자전거를 생각해보세요. 우리 나라가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이 대통령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페달과 뒷바퀴를 연결해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하는 체인같은 역할을 대통령은 해내야 해요. 진보와 보수를 유연함과 단단함으로 연결해 우리 사회가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산책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며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창조자'로 살아보는” 책여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보이는 여행작가가 다녀왔던 세계 곳곳을 돌아보며 지금 매몰되어 있는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여유를 되찾으신 후 자신의 역할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저자는 알래스카 여행 중 그곳에서 10년 정도 살고 있는 일본 출신의 사진가를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저자는 자연에 살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들도 결국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의 고래잡이 이야기도 듣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강들을 죽여버렸습니다. 강에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파헤쳐 흐르는 강을 썩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빚 지며 살아왔지만 지키지 못했던 우리의 강들. 다시 생명이 깃들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돈으로 평가할 가치도 아닙니다. 자연이 허락했던 완전함을 손상시켰던 것을 되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2.

“몽골 사람들은 초원을 소유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모두의 것이다. 몽골 유목민들은 언제나 탁 트인 하늘 아래 대지를 딛고, 말 타고 초원을 달리며 산다.”(46-47쪽)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가요?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유목민이 되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처럼 우리도 땅을 공유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운좋게 땅과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만행에 우리는 언제까지 떠돌아야 하는 걸까요? 자신의 손바닥을 물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부동산 문제, 조금이라도 풀어갈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대한민국 시민들의 탐욕을 제어할 방법은 없을까요?


3.

어느 날 산을 오르고 싶다는 충동에 저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쳐 있는 6,959미터 높이 아콩카과에 올랐다고 해요. 산을 오르면서도 왜 오르는지 몰랐다고 하네요. 정상에 이를때까지 기계적으로 다리를 옮기는 게 전부였다고. 정상에 올랐을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강렬한 삶 같은 걸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는 걸 산을 오르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돼요.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산을 오를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겨선 절대 안됩니다. 정상에 올라 강렬한 쾌감을 느끼기 위한 여정으로 생각하고 그 자리를 가려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대신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것처럼 그 자리로 걸어가세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을 들어보세요. 후보님들은 어느 쪽인가요?


“신화 속의 영웅은 다음 둘 중 하나의 이타적인 행위로 여정을 마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물리적 행위, 또는 돌아와서 자신의 비범한 경험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에 깊은 유익을 끼치는 영적인 행위.”(71쪽)


4.

미국 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적 소수자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프로빈스타운'이 있대요. “세상의 소수자들은 언제나 비난받지만 프로빈스타운에서는 모든 종류의 마이너리티가 환영받는다"고 합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웃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온갖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성소수자에서부터 장애인,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한부모 자녀,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들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는 정책들을 구상하고 실행해 주시기를.


5.

연봉 40만원으로 살 수 있을까요? 쿠바에선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무료, 의료비도 무료, 집세는 월급의 10%이하로 정해진다네요. 돈이 많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쿠바. 열네 살짜리 아이가 '혁명'의 유익을 말하는 나라 쿠바. 후보님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말을 하지는 마세요. 몽상 속의 나라가 아니라 실재하는 나라잖아요.


"20년 가까운 경제봉쇄 속에 쿠바는 오히려 식량자급률이 95퍼센트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바나 근교에는 수천 개의 유기농 농장이 있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견학을 갈 정도다. 굶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약이나 비료를 구할 수 없으니 '본의 아니게' 자타가 공인하는 유기농이 되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이런 쿠바의 모습에서 생태주의자들은 또 다른 꿈을 꾼다. '인류의 미래'라는 꿈이다.”(256쪽)


체 게바라는 혁명가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선 게 아니지만 여행은 그를 혁명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게바라의 여행은 몽상가의 여정이었지만, 여행이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는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라 저자는 쓰고 있어요. “몽상가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꿈꾼다.” 대통령에게 때론 몽상같은 상상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길을 가 보고, 되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어보기 위해서요.


선거일까지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상대 후보 진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들, 언론의 선동, 이리저리 흔들리는 유권자들 등 투표가 진행되는 그 날까지 후보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성을 가지고 자신이 지키려는 가치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낸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지겠지요. 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반드시 한 권의 책과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어메이징 데모크라시

작가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아르라함 카와|애니 ...
출판
궁리
발매
2017.02.24.
평점

리뷰보기


대한민국 시민들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곪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지난하고도 힘겨운 투쟁을 몇 개월째 이어왔습니다. 시민들은 마침내 불의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과 그 동조자들의 구속을 촛불의 승리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촛불 항쟁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내딛은 첫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모습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던 고대 아테네의 이야기를 그린 <어메이징 데모크라시>라는 책을 보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빚어갈 민주주의를 그려봅니다. 그런데 최근 이십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경험해 왔던 상황이 2,500년 전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렸던 아테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해 놀랍습니다.


책을 읽을 때 일반적으로 작품 해설이나 평을 먼저 읽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이 책의 경우엔 책의 뒷부분에 정리되어 있는 등장 인물과 신화 등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저처럼 그리스/로마 역사나 인물, 신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분들이라면 꼭 책의 마지막 부분부터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이야기는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침공했던 전쟁터에서 시작됩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하면 아테네는 또 다시 독재 하에 놓일 것입니다. 전투를 앞둔 긴장감에 아테네 시민군중 한 명이 악몽을 꾸다 깨어납니다. 이 꿈 이야기를 계기로 또 한 명의 시민군인 주인공은 과거 아테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부침을 겪으며 민주주의를 이뤄냈던 투쟁의 모습이 현대 대한민국 역사와 놀랍게 닮아 있습니다.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린 직후의 아테네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초로 여겨지는 아테네에도 참주를 중심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시민들을 통치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를 올바르지 않다고 여겼던 아테네인들은 치열한 투쟁으로 참주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혁명적인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뜨거운 선거 열기에 아테네 사람들은 반으로 나뉘어 싸움박질을 하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기회주의자들은 수구 세력에 붙어 개혁 세력을 흠집내며 대중들을 선동했습니다.


“참주를 두들겨 패는 생각으로 아테네인들은 흥분해 있었다. 참주의 죽음 후 재건과 새로움의 열기는 새 최고 집정관 선거 때 절정에 달했다. 많은 의원들이 클레이스테네스(개혁 세력)편을 들었다. 하지만 상류층의 지지를 얻은 자는 히피아스(참주) 때의 유명인 아사고라스(기존권력 유지 세력)였다. 한 때 개혁세력에 몸담았던 에케크라테스(기회주의자)는 외부 세력인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권력을 차지해가며 수구세력 측에 붙었다. 에케크라테스는 개혁세력도, 참주도 배신했다. 충성도 양심도 사고 팔렸다.”(114-116쪽 정리)


최근 우리 나라로 눈을 돌려봅니다.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 구속시켰고 곧바로 다음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테네처럼 반반으로 나뉜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의견이 개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압도적인 일치를 이룬 것도 아닙니다. 선거를 앞두고 자극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극우/수구 언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야합을 시도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부패한 권력을 보위했던 세력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개혁 시민이 선거에서 패배하다


마치 우리 나라 극우 언론과 같은 아테네 수구세력들의 네거티브 전략이 대중들에게 아주 정확히 먹혀들었습니다. 개혁 세력은 기존 수구세력의 부정의함을 대중들 앞에서 외치지만 아테네는 수구세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선거에서 개혁 세력이 패배하고 맙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개혁세력 지도자는 패배 원인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우선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들어서 사랑을 받고, 그들이 자길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람들을 부리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믿겠지.”(130쪽)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야권이 패했던 원인과 비슷합니다. 야권은 이지지와 정책 둘 다에서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은 수구세력이 만든 박정희라는 신화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겨버렸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정치적 상황이 야권에 유리하다 생각되지만 여태껏 권력을 차지해왔던 수구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이들은 지난 선거에서의 실패를 치열하게 곱씹어 봐야 할 것입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개혁의지


아테네의 개혁세력이 참주 제거 후 치러진 선거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개혁 의지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혁 세력 대표는 아테네의 평의회에 파격적인 개혁안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다 보았고, 다 시도했습니다. 왕정, 참주정, 귀족정. 그 모두 다 결국 하나에 의존했습니다. 통제권에. 주 약점도 모두 같았습니다. 불안정성이었습니다. (중략) 우리 귀족들은 땅과 선물과 긍정적인 신탁을 약속하며 사람들을 기분 좋게 했습니다. (중략) 솔론의 법, 페이스라토스의 법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법의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를 일구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모하는 순간, 그 잔혹한 전환점에 섰습니다.”(132쪽 정리)


“지금 아테네가 마주한 미래는 절망적입니다. 참주나 왕에게 책임을 편안히 떠넘기는 대신 미래를 직접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권력은 파악하기 어려워졌고, 일단 더 이상 귀족들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누가 권력을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중략) 시민이야말로 지배적인 힘입니다. 시민들이 힘을 갖도록 합시다. 그들이 투표하고 권력을 갖게 합시다. 그들이 국가가 되게 합시다.”(133쪽)


이 장면에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던 독재세력을 몰아내고 형식적으로나마 이뤄냈던 민주주의를 시민을 주인으로 삼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발전시키고자 분투했던 노 대통령의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이명박에게 정권을 내줬던 대한민국의 민주정부처럼 아테네의 개혁세력도 결국엔 수구세력에 의해 추방되거나 학살당하고 맙니다.


보통 사람들이 불같이 일어서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우린 몰랐어요.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무런 전조도 경고도 없었어요"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전조와 경고는 항상 있었지만 우리가 알고도 살아갈 뿐이다."라고 말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당시의 아테네 시민들의 모습을 아프게 그립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두 번의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기존의 수구세력들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명박을 앞세워 권력을 잡았고 어렵게 싹틔웠던 민주화의 새싹들을 짓밟았습니다. 더 나아가 또 다시 민주정권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언론, 재벌, 심지어 국가기관까지 동원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공공히 했습니다. 결국 수구세력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이명박근혜 시절 잘못된 이들에 대해 일부 반대하기는 했으나 국민 대다수는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그냥 살아갔습니다.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때때로 저항하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힘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계속되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시민들을 점점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자 탄압, 4대강, 해군기지, 세월호, 선거개입, 국정농단 등으로 켜켜이 쌓이던 시민들의 분노가 마침내 광장을 촛불로 가득채웠습니다. 참주와 스파르타의 지배에 저항했던 아테네 시민들처럼 말입니다.


"정말,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중략) 어쩌면 한 번도 항의해보지 않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 그가 화가 나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의 말이 어떤 점에서 심금을 울렸는지도. 그러나 그 거슬리는 소리는 행동의 소리였다. 한 명의 목소리가 열 명 목소리로. 열 명이 쉰 명으로. 일흔 명으로. 백 명으로. 모두 화가 나서 일제히 일어섰다.”(154-155쪽 정리)


촛불의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 철저한 과거 청산


아테네 군중들은 시민의 적들과 스파르타군을 몰아냈습니다. 시민들은 스파르타군이 떠난 후 남은 귀족들과 정치인들, 수구세력의 편에 섰던 자들을 체포해 재판을 했습니다. 공정한 재판 후 처형했습니다. '아테네가 심고 피를 뿌려 키운 것은 어쨌든 보호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몇몇은 절벽에서 투신해야 했다. 몇몇은 바로 세운 판자에 팔목, 발목, 목을 금속 사슬로 감긴 채 매달렸다. 목을 감은 금속 사슬에 죄어 자기 몸무게에 목 졸려 죽거나 턱이 부러졌다. 조금 더 간접적으로 관련된 자들은 사약을 마시도록 허락받았다.”(187쪽)


박근혜 정권과 그 부역자들을 구속하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촛불 시민의 대한민국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철저한 과거 청산. 박근혜를 앞세워 권력을 즐기던 자들이 몰염치하게도 대통령 후보도 내고, 그 후보는 용서를 말합니다. 이런 세력들을 철저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촛불이 모이기 전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흘렀던 희생자들의 피가 헛되게 버려질 것입니다.


촛불 광장에 선 우리는 승리를 이룬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이뤄가려는 첫 걸음을 이제 막 뗀 것입니다.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전두환까지 이어져왔던 독재를 몰아낸 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게 했던 역사를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기도 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기도 했던 사람들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에 맞서 투쟁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위해 맞서 싸우면, 싸움은 끝나지 않아. 결코. 끝은 우리가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한단 말이야.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돼.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늘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위대한 인간. 지도자. 참주가 되는 사람. 우리를 참주에게서 구하겠다는 사람. 시민의 꿈을 빼앗아 자신의 꿈으로 삼는 사람. 그런 생각은 두려움과 광기를 다시 불러와.”(198-199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

작가
권정임
출판
생각비행
발매
2012.07.05.
평점

리뷰보기


"당신은 근로자입니까?"
"취업규칙에 대해 알고 있나요?"
"임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아시나요?"
"지각 세 번이면 결근인가요?"
"30분 일찍 출근했는데 이것도 연장근로인가요?"
"공휴일이면 모든 근로자가 쉬는 법정휴일 일까요?
"출퇴근길에 다치면 산업재해 처리가 되나요?"
"사직서를 내면 퇴직 처리가 되는건가요?"

알쏭달쏭합니다. 임금 노동자로 살아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이같은 물음에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노동법을 알고 있으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노동자임에도 노동법을 알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그동안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부당한 일을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제정된 법을 알 필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오르내리는 노동 혹은 일자리 관련 뉴스들이 이젠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하는 급격한 기술 발전을 다룬 소식들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위축됩니다. 크고 작은 노동과 직장생활 문제들을 다룬 뉴스들을 보면서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됩니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근로기준법을 기초로 '입사부터 퇴사에 이르는 직장생활에서 자주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정리한'책을 선택했습니다.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법은 우리의 권리와 의무, 생각과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기에 노동자라면 노동법을 상식처럼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자라면 한 번 쯤은 근로기준법을 가볍게라도 읽어두면 좋겠습니다.

"법의 내용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에서' 특정한 법이 왜 존재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법의 존재 이유에 따라서 그 법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높다랗고 견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반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법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고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있는 낮고 유연한 울타리입니다."(8쪽)

근로기준법을 찾아보았지만 법조문을 무턱대고 읽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익숙하지 않고 법조문에 쓰인 용어들의 정의도 낯설기만 합니다. 이럴 때 흥미를 자극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이 책과 같은 해설서는 근로기준법에 관심을 갖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저자는 근로자의 법적 신분에서 시작해, 근로계약, 임금, 근로시간/휴일/휴가, 징계/해고, 인사이동, 여성/비정규직/파견직/일용직, 산업재해, 노동조합, 퇴직까지 총 10가지의 주제를 일반인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조문을 힘겹게 읽어 갈 때와는 다르게 실제 직장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항들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막연하게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저의 법적 신분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고,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근로계약서와 회사에서 나눠줬지만 휴지통에 집어 던졌던 취업규칙이 적힌 수첩의 중요성도 깨달았습니다. 통장에 찍힌 월급액과 급여명세서에 기재된 각종 수당의 의미를 다시 보게도 되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과연봉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근로시간, 휴일/휴가, 시간외 수당과 칼퇴근을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을 다룬 부분에선 법이 있다고 해도 모든 문제에 법을 들이댈 수는 없다는 현실에 한숨도 나왔습니다. 결국 사용자(회사 혹은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와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과 객관적 능력 증명이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란 저자의 제안에 살짝 허탈해하며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저자도 책의 도입부에서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의 기저에 있는 철학이 사용자 중심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책의 제목도 '노동법'인데 실제 법명은 근로기준법입니다. 중립적 의미인 '노동'대신 '근로(열심히 일하다)'라는 사용자의 입장이 반영된 표현이 법적으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노동법이라 부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으로 되어 있어 저자 역시 갈등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서도 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판례를 참고해 개인이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동자 권익보호라는 목적을 합당한 수준에서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책에서 뿐만 아니라 근래 접하는 노동관련 뉴스들을 통해서도 목도합니다. 진정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법으로의 개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근로관계의 법률문제에 모범답안은 있을지 몰라도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문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결국 온전한 법률 주체인 '나'의 문제입니다. 누가 대신 결정해주거나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리부터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판단을 내리기 위한 방향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 판단으로 가는 올바른 첫걸음만 뗄 수 있어도 이미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415쪽)

사실 저자는 현행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우리 일상을 둘러싼 법률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에 대응해나가는 방향을 전달'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행 법률의 철학과 한계, 개정의 필요성 등을 다루지 않아서 아쉽다라고 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또 하나의 책으로 다루려고 해도 부족한 문제일 듯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와 같은 임금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노동현장에서 마주치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현행 법률의 문제 혹은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의 법 개정이 필요한 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