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
출판
사이행성
발매
2016.03.1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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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가정과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 성역할 편견 등 페미니즘 논쟁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점차 피로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성차별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를 찾는 길은 멀고 더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필요만큼 진보적이지 않다.”(157쪽)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에서 한 말은 미국 사회에 대한 것이었지만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성들의 삶을 숫자나 통계상으로 보면 과거보다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에서 말하는 기저효과가 성평등 영역에도 적용되기에 ‘옛날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는데도 여성들이 만족할 줄 모른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페미니즘이 완벽한 이론이나 운동일 수는 없겠지만 오랜 세월 가부장제 아래서 살아온 우리 사회엔 페미니즘이 가진 한계나 결점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부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 몇 해가 지난 요즘에도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만날 정도이니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을 없애자는 운동’은 여전히 더욱 알려져야 합니다.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록산 게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결점과 한계,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결점과 한계를 인정합니다. 모든 사건 사고에 일관적이지도 논리정연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그리고 과거보다 꽤 나아졌다고 하는 사회 속에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노력하는 한 여성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지나가는 장난이고 농담인데 그냥 웃고 넘겨요. 외모로 칭찬 좀 할 수 있지 뭘 그래요?’와 같은 노랫말, ‘가해자를 염려하고 피해자의 결점을 찾아내는’ 성폭력 사건 기사, ‘여성 대상 폭력이 너무나 쉽게 소재로 사용되는’ TV와 영화 등에 대해 가볍게 넘어가지 않고 잘못된 점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급격히 변하지만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여전하고, 우리는 아직도 선조들이 싸웠던 바로 그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이어지는 성폭력 관련 판결들, 그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들, 이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주변 남성 동료들의 반응을 보면 저자가 말한 의식의 진보는 우리 사회에서도 요원해 보입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선 여성들이 성차별적 사건들에 한 마디 하거나 성평등을 지지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라도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인신공격을 하기 일수입니다.

록산 게이가 소설, 영화/드라마, 법률 등에 스며 있는 여성차별 혹은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사람이야”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시선을 경험합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으니 이쯤에서 분노를 거두고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좀더 거대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유명인들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대체로 여성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째서 여성이 더 야심이 넘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를 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했고, 집 밖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싸워야 했고, 성희롱 없는 근무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싸워야 했고, 대학이나 학과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싸워 왔으며, 작은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증명하고 또 증명해 내야 했다.”(130쪽)


저자는 계속해서 인기있는 책,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에 스며 있는 성역할, 페미니즘, 여성 등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점들을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해 줍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처럼 불편한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속한 ‘문화적 관습과 세계관’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록산 게이가 말한 ‘자신이 속한 젠더 포지션을 극복하고 저항’하려면 저 역시 좀 더 민감한 젠더 감수성을 가져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젠더 감수성이 점차 섬세해져 가고 있는 현상들도 간혹 보입니다. TV프로그램이나 강연에서 예전에는 그냥 웃고 넘어갈 만한 상황이나 발언들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공적인 토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이전보다 섬세한 젠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젠더에 대한 민감하고 섬세한 감수성은 또 다른 심각한 차별 문제인 인종에까지도 확장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저자는 대표적으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기를 지니지도 않았는데 죽임을 당하고도 그를 죽인 사람은 정당방위였다며 무죄를 선고받은 트레이번 마틴 사건과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자행한 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에 대한 대중의 동정을 비교해 보여줍니다. 성에 대한 편견만큼 인종에 대한 편견 역시 강력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미국은 원래 인종차별이 심했던 나라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제주도로 들어온 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분열적 대응에서 인종적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에 온 동남아시아 국가 여성들에 대한 대우와 시선에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성차별 문제는 다른 차별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민감한 젠더 감수성 더 나아가 인권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록산 게이는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할 때는 더욱 철저히 냉정하게 여러 차례 질문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곱씹으며 기억해야 할 명제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록산 게이가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부족한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왔고 또 앞으로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다 민감하고 섬세한 젠더 감수성을 갖춰가는 남성으로 성장해가고 싶습니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내가 페미니스트이자 솔직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트위터에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과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모든 사소한 것들을 다 쓴다. 블로그에 내가 요리한 음식을 올린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어 세상에 나가고 싶고, 이렇게 하면서 더 좋은 여성이 되고 싶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솔직하게 내보이고 내가 어디에서 비틀거렸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부 다 털어놓고 싶다.

 

어떤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하건 간에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의 절대적인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375쪽)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

작가
쥘리에트 모리요, 도리앙 말로비크
출판
세종서적
발매
2018.06.0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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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두 나라 정상의 세 번째 만남과 그 결과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에서의 해방, 열강들에 의한 분단과 전쟁 이후 지난한 갈등 관계를 수십 년 동안 이어오던 두 나라가 드디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최근 정상회담 모습을 보면 두 나라가 언제 전쟁을 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지난 4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올해 1차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소탈한 말투에 친근감을 느낄 정도로 남쪽 사람들의 심리적 긴장도 상당히 해소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북쪽 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한’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과 전후 시기를 거쳐온 세대에겐 북한은 여전히 때려잡아야 할 공산당 혹은 빨갱이들의 나라일 뿐입니다.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세대의 자식 세대인 저도 북한을 하나의 독립국가라기보다는 언젠가는 우리가 품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일부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 정도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 공산당이 싫다던 이승복 어린이 신화를 들었고, 군대에 징병당해서는 철책 근처에 머무르며 대치하고 있는 저 너머 사람들이 우리의 주적이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라긴 했지만 독일처럼 흡수 통일을 하게 되면 독일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겪게 될거란 이야기를 들으며 통일은 섣불리 하는게 아니란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기쁘고도 슬픈 행사를 보게 될 때는 그래도 통일은 되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손자까지 세습하며 인민들을 수탈하는 체제를 생각하면 북한의 지배층을 좋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나라 북한입니다.

막연한 이미지로만 인식해오던 ‘북한’을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웃 나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분단된 한 민족이라는 과거의 집착을 내려놓고 이제는 흘러온 시간만큼 달라진 차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단 후 대한민국 만큼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변화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합니다. <100가지 질문으로 본 북한>이라는 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해하는 첫 발을 내딛어 봅니다.

이 책은 북한전문가인 쥐리에트 모리요와 도리앙 말로비크가 수 년간 취재하여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저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과 한국 중심의 편향된 정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역사, 북한의 정치, 지정학, 북한의 최근 상황, 경제, 사회와 문화, 선전 7가지 분야에 대한 총 100가지 궁금함에 개괄적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상세한 정보보다는 전반적인 모습을 그려봄으로써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언론 종사자들은 상사들로부터 더 충격적인 뉴스를 제공하라는 상시적 압박을 받는다. 정보망은 제한되어 있다. 북한을 분석하는 일은 종종 공식적 출현이나 텔레비전 연설, 혹은 북한 언론, 또는 북한을 도망친 탈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공식 석상에서 한 인물이 사라지면 즉각 처형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활동가들에 근거한 이 정보들은 대개 한국 정보부에 의해 발표되고, 이어 미디어에 의해 최소한의 거리도 두지 않고 확산되고, 극화된다. 소문은 세계를 돌고, 매번 더 비열한 묘사들이 덧붙여진다.”(295쪽)


저자들은 그 동안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혹은 황당 무계한 정보들이 나돌았던 이유를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모든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한 정보들이 이렇게 왜곡되거나 날조되어 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두 국가가 직접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서로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들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와 ‘지정학’ 부분에선 사실 크게 새로울 만한 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정치’, ‘현실’, ‘경제’를 다룬 2, 4, 5부입니다. 정치 부분에선 최근 김정은 위원장으로 이어진 후계 준비,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으로 달라지고 있는 정치 구조,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하는 세력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권력 승계 작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북한의 지배체제가 쉽사리 붕괴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체제에 반하는 이들은 숙청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하는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다가 특별사면으로 출소해 살아나온 탈북자의 증언은 충격적입니다. 사형을 피해 수용소에 간다고 해도 살아나올 확률이 매우 적으며 이 증언자의 경우 수용소 생활을 마친 후 몸무게는 30kg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하니 그곳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할 지 짐작할 만합니다.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과거와 그리 많이 달라지진 않은 듯 합니다.

숙청과 함께 유아기부터 받는 철저한 교육, 개인간 감시 체계는 북한 체제를 유지해 온 주된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북한에서도 과거 강조되던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들의 잘살고 싶은 욕망이 북한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도 이 변화의 조짐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고 개인 통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 보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 세력이 어떤 방향으로 북한을 이끌어 갈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경제 부문에 있어선 2000년대 초 소규모 사설 시장을 허용하였고, 요식업, 교통 분야에선 자본주의적 모델이 더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외화를 거래해 주던 환전상들이 대출도 해주고 있고, 여전히 금융거래가 불법이기는 하지만 시장경제의 싹을 받아들인 이상 금융 흐름을 통제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북한에도 ‘더 벌기 위해 더 일한다’는 생각이 세를 얻고 있다고 하니 자본의 힘이 북한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어느 정도까지 변화시킬 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날, ‘시장 세대’의 구성원들은 이념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다는 점을 공유하며, 확실한 가치인 돈을 통해 삶을 즐기려 한다. 만약 그들이 정권에 충성을 바친다면 이는 정치적 신념보다는 민족주의에 의한 것이다. 15년 후쯤 그들의 자식들, 즉 최고의 안락함 속에서 자라고, 바깥 세계의 이미지를 접하고, 가족 내에서 이념의 세뇌교육을 받지 않은 그 아이들은 분명 ‘다른 것’을 갈구할 것이다. 더 많은 정상, 여행, 여가, 사업할 자유 등… 어쩌면 그때가 정권의 다음 도전이 될 것이다. 즉 이 신세대의 갈망에 답하고, 그들의 꿈에 맞는 활력 넘치는 세계를 제공하는 것. 물론 권력을 잃지 않고.”(277쪽)


최근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두 나라의 교류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양국의 관계가 진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한쪽의 반응을 보면 체제 유지를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하던 핵무기의 효력은 다했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내어줄 것은 과감히 내어주고 체제보장과 경제라는 실익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들이 언급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의 갈망에 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 주안점을 둬야 하는 영역은 인터넷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구가 많지는 않지만 “과학과 신기술에 매료되는 한국의 ‘괴짜’ 혼은 38선 남북이 똑같다.”는 저자들의 말처럼 북한 인민들에게까지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될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정권은 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

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
출판
북레시피
발매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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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제1야당 원내대표는 얼마 전 ‘출산주도성장’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출산장려금 2천만원,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1억원을 지급하자고 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돈을 주면 아이들이 순풍순풍 태어날까요? 돈으로 아이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 아이들을 왜 필요하다고 하는 걸까요? 경제 성장을 위해서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제정신으로 봐줘야 할까요?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대책이 나옵니다.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게 되는 원인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옥같은 사회에서 자기 몸 하나 추스리기도 힘겨운데 결혼은 왠말이며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왠말입니까. 아니, 이렇게 종합적으로까지 고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일단 이 책이라도 함께 읽어보시죠.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낸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입니다. 생명을 경제성장의 자원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김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주장을 듣고 오마이뉴스 계대욱 기자도 만평으로 출산이 성장의 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인가요? 애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나오기 전에 여성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9개월의 임신 기간 동안 여성들이 견뎌내야 하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테스트기에 나타난 두줄로 확인된 임신. 생명탄생의 시작이지만 임신한 여성에겐 날벼락이기도 하면서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두 줄 생긴 테스트기를 들고 숭고하게 임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온갖 복잡한 생각에 정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딱입니다.

아내의 임신을 두 번이나 옆에서 지켜봤는데도 제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습니다. 두 번이나 이 과정을 거쳤을 아내에게 미안해집니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 구토, 피곤함, 특히 두려움으로 병이 난 줄 알고 병원을 가보기도 합니다. 물론 ‘새 생명이 자라고 있을 뿐 지극히 정상’이라는 당연한 진단만을 받을 뿐이지만요.

남편들은 아내의 속도 모르고 축하파티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임신 1개월을 지내는 아내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헛소리야! 이건 거의 재앙 수준이라고!…잠도 제대로 못자게 될 걸? 토요일 밤이면 TV나 보면서 각자 지내게 될 거고…내 몸무게는 30kg이나 더 늘어날테고 피부도 축 처지겠지. 내 인생이 송두리째 거덜나는 거라고. 난 우울증에 빠질 거고, 당신은 어느 순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겠지. 난 그렇게 시들어가기만 할 뿐. 행복? 개나 물어가라 그래!”(21쪽)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입덧이 시작되면 음식 냄새가 재앙으로 덮칩니다. 3개월 정도가 되면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처음 초음파 검사도 합니다. 여전히 먹은 걸 토해내기 일수인데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으면 울화가 치밉니다. 책에 나온 남편의 모습과 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집니다. 

“카롤린은 아주 잘 지내. 반짝반짝 빛이 나 보이고 왠지 고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니까. 아이 갖고 완전 피었어. 정말 광장하지 않아? 임신이 여자를 변화시킨다는게…캐롤린 챙기고 신경 써주느라 정신없어서 정말 한시도 짬이 없다니까.”(47쪽)

한 달 두 달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려는 때엔 주변 사람들로부터 하지 않아도 될 조언들을 듣게도 됩니다. 아는 친구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유산했다든지 등의 이야기들 말이죠.

5개월쯤 되면 출산 육아와 관련된 것들로 머릿속이 가득차게 됩니다. 게다가 만나는 친구들은 임신한 친구들에게 변비, 정맥류, 튼살 등 듣기 싫은 말들만 골라서 하곤 합니다. 6개월쯤 되어 눈에 띄게 배가 나오면 더 곤란한 일도 겪습니다. 신기하다며 배를 만져보겠다는 주변 사람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할 정도로 배가 나옵니다. 운전도, 책상 앞 작업도 힘들어지고 몸에는 튼살과 셀룰라이트가 그득그득 해집니다. 작가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만 10여분이 걸려 시작부터 진을 빼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임신한 모습을 보며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친구에겐 사실 속마음을 말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천만에, 미칠 지경이야. 병든 강아지처럼 시름시름 앓기만 해. 등 아프지, 시도 때도 없이 방귀 나오지, 거기다 다리털도 못 깎는 신세라고. 알기나 해?”(113쪽)

하지만 출산이 가까운 여성에게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모유를 먹일 것인가 분유를 먹일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말은 마음에 쐐기를 박아버립니다.

“모유 먹일거지? 아기한테 풍만한 젖가슴에서 나오는 영양 만점 모유를 줄래, 아니면 발암성 젖병에서 나오는 쓰레기 같은 산업 폐기물을 먹일래?”(126-127쪽)

마지막 9개월째는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출산준비 가방을 챙겨둡니다. 이 시기는 걱정과 불안이 극에 달합니다. 아기가 나오는 신호는 어떻게 아는지, 진통은 어떨지, 살은 빠질지, 분만은 어떻게 하는건지, 아기를 제대로 안을 수 있을지…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통이 찾아옵니다.
 

배가 나오고 손과 발이 붓는 자신을 보며 자신은 아름답다는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여성들의 마음이 어떨 것인지 저로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을 곁에서 지켜봤는데도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힘겨운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여성입장에서 이렇게 전체 기간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임신 기간에 아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아기가 자라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두가 그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당연한 것도 아닙니다.

온통 혼란스럽고 낯선 감정과 생각, 예쁨과는 멀어져만 가는 신체변화, 주변과 사회의 노골적인 압박까지 견디며 긴 시간을 통과한 아내를 둔 남편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둘째치고 임신 기간에만 이렇게 힘이 듭니다. 출산률이 낮다며 걱정할 수는 있지만 대책을 세울 때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작가
황현산
출판
난다
발매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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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님,

함께 읽은 책의 감상을 나누며 책을 소개하는 <복팟>이라는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있는 아내를 통해 선생님이 쓰신 <밤이 선생이다>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과 문제들을 바라보며 써내려간 선생님의 글들에서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느꼈습니다. 참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 즐거워하며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기도 했습니다.

두어 달 전엔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책의 번역자에 황현산이라는 반가운 이름이 적혀 있어 내용은 알아보지도 않고 읽기 목록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거실 식탁 위에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라는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것을 봤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해 줬던 제 아내가 구입한 것이더군요. 한 번 뵌적도 없는 분인데 이전 에세이집에서 받았던 좋은 기억이 떠올라 참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문학평론가 황현산 별세’라는 뉴스가 스마트폰 알림으로 날아왔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해 좀 더 알아가고 싶었던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황현산이라는 사람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선생님을 더 알고 싶은 제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더 다가가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소한 부탁>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두고 선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겐 선생님이 세상을 뒤로 하시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남기고픈 이야기를 담은 유언처럼 느껴집니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선생님께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사회문제와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도 역시 감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 생각했었습니다.

평소 생각지도 않던 것들에 갑작스럽게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선생님은 ‘문학적 시간’이라고 하셨죠. 또한 이를 나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역사적 시간’, ‘깨우침의 시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오랜 물음과 고뇌를 통해 남기신 또 하나의 책 <사소한 부탁>을 들고서 문학적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5년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남북관계, 무너져 가던 민주주의, 5.18 민주항쟁의 의미를 지우려는 세력들 등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던 문제들이 지난 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을 철저하게 없애기까지는 치열한 싸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악마가 한 짓에 비유하셨던 세월호, 용산 참사, 쌍용차 사건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우리 마음을 무디게 만들고’, ‘용의주도’하고, ‘섬세한’ 악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매우 ‘친화력’있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섬뜩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악마적 사건들을 바라보시며 뭐라도 해야 한다고 쓰셨던 글귀를 마음에 새깁니다.
 
“물론 나는 악마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악마만이 저지를 일을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악마의 처사였다면 악마의 연구로 끝날텐데, 그것이 우리의 죄이니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75쪽)


삶의 기본 터전이 되어야 할 집이 끝없는 탐욕의 먹이가 된 우리 사회. 선생님은 아파트와 그곳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끌어안아야 할 모든 것을 몰아내고 제 번뇌와 오욕만을 가두어둔 지옥”이라고까지 쓰셨습니다. 심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부동산에 대한 광적인 집착, 그리고 그 안에서 아귀다툼하듯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선생님께서는 2002년 월드컵 때 배타적 감정 같은 것 없이 모두가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고 해방된 생명력을 느꼈던 때를 회상하셨습니다. 그리곤 그 기억속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재확인하며 “옆 사람을 끌어안는 우리에게서 거대한 문화 하나가 솟아나고 있다. 이 문화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153쪽)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5년 ‘헬조선’에서 일어났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고영주 방송문화진응위원회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 모욕, 문화 예술인들에 대한 검열 등을 보시며 토론이 사라진 우리 사회가 지옥이라는 점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헬조선’이라며 지옥을 자각하고 있기에 우리가 지나온 공통체의 역동적 역사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예언을 철회하지 않으셨죠.

선생님의 예언이 실현될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헬조선’을 자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모욕했던 고영주 이사장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 여전히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몽니를 부리는 제1야당 원내대표 등을 보고 있자니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촛불로 힘겹게 되돌린 키를 또 다시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저와 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민주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및 국가의 리더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인성’이라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통찰력 있게 지적하셨듯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구성원들의 인성입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에서 저를 비롯한 시민들과 문재인 대통령 이하 시민들의 머슴들이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을 확인하길 바랍니다.


“인성 교육이란 폭넓게 말하면 인문학 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 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113쪽)

황현산 선생님. 선생님을 어느 자리에서건 한 번쯤 만나뵙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들을 하나 하나 찾아보려고 합니다. 책은 도끼라고 말했던 니체를 인용하시면서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127쪽)고 하셨죠.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이라는 이름의 도끼 앞에’ 저를 바쳐볼까 합니다. 도끼에 찍혀 넘어졌다가 새사람이 되어 일어나기 위해서요.

축제와 같이 선생님 책들을 읽고 조금은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


역사 기록에서도 차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작가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출판
어크로스
발매
2018.03.21.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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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타자이며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은 불완전하고 무능력하며 무가치하다고 말했다. 2000년 동안 인류는 파울로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그 성경 구절을 되뇌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원죄의 이야기, 뱀의 꾐에 넘어가 인식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이야기는 더 자주 입에 올렸다. 그런 다음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생각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머리에 뿌리내렸다. 몸으로 밀고 들어와 피와 살이 되었고 우리의 행동방식,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했다.”(502쪽)


최근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의 맥락을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케르스틴 뤼커와 우테 댄셸이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라는 책에서 말한 것처럼 여성은 인류 역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자신을 역사 속 주체로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를 고려하면 정말 최근의 일입니다만 그마저도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린 생각에 좀처럼 균열을 내지 못했습니다.


당해봐야 차별인지 알 수 있을텐데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남성들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당해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여성이 ‘해방’되었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에겐 당연한 일들이기에 제2의 성이 겪은 일들을 차별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책의 저자들은 이 성별에 따른 차별이 ‘태초’부터 시작되었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다수의 남성들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성들이 경험한 역사에선 이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거대한 세계사 속에서 있어왔던 여성 소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차별 논란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려는 일부 극단적인 이들이 마치 성평등을 외치는 그룹의 전체인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두 저자는 세계사 속 중요한 사건, 인물들에서도 여성은 주변에, 아니 역사의 흐름 밖에 놓여 있게 된 것에 주목하고 세계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자신을 가둔 틀을 뚫고 나온 여성들이 항상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며 비범한 여성들을 소개합니다. 최초의 제사장이자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의 공주 엔헤두안나, 사랑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썼던 그리스의 여인 사포, 중국 황가의 역사 집필을 마무리했던 반소, 후에 러시아가 되는 키에프 공국을 국가로 성장시킨 여성 올가, 일본 최초의 소설 ‘겐지 이야기’를 쓴 궁정여인 무라사키 시키부, 몽골을 다시 일으킨 만두하이 여왕, 제네바 종교개혁에 큰 역할을 했던 마리 당티에르.

인류 역사에서 비범한 일들을 해냈던 여성들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류였던 남성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는 점도 저자들은 강조합니다. 책의 각 장의 시작부에 기록된 연표에서 여성들의 이름을 볼 때 독자들이 느끼는 낯섬의 정도가 그 동안의 세계사 기록에서 여성들의 업적이 얼마나 가려져 있었는지에 대한 지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 소개된 세계 역사 속 비범한 여성들과 그들의 업적들을 알아가면서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얼마나 어이없는 편견인지를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부분은 여성 차별의 기원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저자들은 3천년 전 아시리아의 법과 함께 등장한 ‘베일’,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의 출현과 종교 내에서의 원죄 낙인에서부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공화국이었던 로마의 법, 중국의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했던 역사를 말해줍니다.

저자들이 지적한 역사 속 여성들의 소외는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노동자의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외쳤던 마르크스도 여성 노동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종교개혁, 계몽사상, 프랑스 혁명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했지만 자유를 얻은 인간은 남자였습니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이 역시 남성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무슨 혁명이든 혁명이 끝나고 나면 여성들은 대대로 내려오던 부엌의 자리로 돌아갔다.”(396쪽)는 말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 크리스틴 드파상이 눈에 띕니다. 그녀는 여자를 아무 가치도 없는 천박하고 비열한 존재로 묘사한 <장미 이야기>(13세기 궁정풍 운문소설)라는 소설에 분노해 여성이 주도권을 잡은 세상을 그린 <숙녀들의 도시>를 썼다고 합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남성 중심 세계에 ‘여성의 영혼도 남성의 영혼 못지않게 가치가 크다’고 주장하며 여자들도 과학, 예술, 정치 등 모든 일에 똑같이 잘할 수 있음을 외쳤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주장의 폭발력은 실로 엄청났지만, 그래도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다는 생각에 비하면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크리스틴이 던진 여성에 대한 질문들은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결과를 불러왔다. 여성에 대한 공식적 논쟁 ‘여성 논쟁’의 불을 붙인 것이다.”(279쪽)


이 때에도 어떤 남성들은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변호하는 책들을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그렇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책에 따르면 크리스틴 드피상이 여자가 못할 것은 없다는 주장은 500년이 넘어서야 조금씩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파일럿, 자동차 경주 참여, 과학 및 사회 운동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는 점을 증명해 왔습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여성의 역할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일까?”(499쪽)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증대와 함께 성차별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케케묵은 병역의무 논쟁에서부터 최근에는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수사 논쟁에 이르기까지 언론 상에 오르내리는 주제와 대중의 반응을 지켜보자면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남성으로서의 직접 경험, 다양한 책과 자료들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판단할 때 여성이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차별당해 왔다는 점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잘못을 바로잡는 출발점은 인정입니다.

저자들이 책에서 물었던 것과 비슷한 물음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여성이 차별당해 왔다는 것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일까요?’ 차별여부를 문제삼는 소모적 싸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어떤 방식으로 바로잡을 것인지,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말, 생각, 행동 양식에 깊게 뿌리내린 성역할에 대한 편견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등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 카탈로그

작가
요리후지 분페이
출판
필로소픽
발매
2018.07.1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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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오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죽음이 말했습니다.
-볼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께> 중에서-
 



사건 사고로 인한 사망소식을 거의 매일같이 접하고, 주변 지인들의 부고를 꽤나 자주 받으면서도, 심지어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서도 죽음은 내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일입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라야 그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며칠 지나고나면 이내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린 것처럼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당장 내일 출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휴가 때 물놀이를 갔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죽음은 그림자처럼 삶을 따라다니는데 사람들은 좀처럼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죽는 순간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죽음 이후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한편으론 죽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인데 굳이 죽음을 미리 생각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말하기를 피하게 되는 주제이지만 어떤 면에선 죽음은 모든 삶의 종착지입니다. 때문에 죽음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삶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해 볼까요?

100% 적중률로 할 수 있는 예언이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죽을 것이다’입니다. 하지만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해선 누구도 정확히 대답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조차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기에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때론 이렇게 죽으면 좋겠다 등을 상상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재수없게 무슨 소리냐’, ‘왜 죽을 생각을 하느냐’ 등 어이없다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한 명 만났습니다.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죽음 카탈로그>라는 책까지 낸 요리후지 분페이라는 일본인 작가입니다. 저자는 답이 없는 질문이기는 하나 누군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작은 힌트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죽음은 생각만큼 어두운 것도, 그렇다고 마냥 유쾌한 것도 아닙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익살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죽음의 모습’, ‘죽는 때’, ‘죽는 장소’, ‘죽는 원인’, ‘죽음에 담긴 이야기’ 등을 덤덤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그림이 곁들여진 작은 죽음 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금기시되는 죽음을 새롭고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우리를 안내합니다.

죽음의 모습, 시기, 장소

저자는 죽음의 형태를 개성 있는 그림에 짧은 글을 곁들여 총 29가지로 요약해 보여줍니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살아 있는 세계 ‘현세’와 사후의 ‘내세’를 ‘죽음’이라는 경계가 나누고 있는 모습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혼이 빠져나간다’는 전세계 공통적인 개념에서부터 죽으면 ‘가까운 섬에 간다’고 생각하는 파푸아뉴기니, 죽으면 ‘파리, 귀뚜라미, 새, 나비’ 등이 된다는 각국의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죽음이 어떤 모습일거라 생각하시나요?
 

“나는 죽음의 형태들 가운데 죽으면 가까운 섬에 간다는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좋아한다. 모두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살면 평온하고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누구든 죽음을 기분 좋은 일로 인식해야 살면서도 즐겁다. 죽음의 형태는 이렇게 다양하지만, 죽으면 모두 고통스러운 세계에 간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지옥도 있지만 균형을 이루듯이 천국도 있기 때문이다.”(52쪽)


다음으로 저자는 언제 죽음이 찾아올까에 대한 생각을 말해줍니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 우리나라도 100세 시대라는 말을 흔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한 몸의 수명, 즉 노화 속도를 생각해보니 그리 기쁘지는 않습니다. 수명은 늘지만 노화 속도는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저자가 말하듯 언제 죽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더 살고 싶은 기분이 더 이상 일지 않는데도 몸은 살아 있는 일이 생겨났다.(중략) 들짐승은 잡아먹힌다든지 부상을 입는다든지, 죽음의 시기를 몸이 결정한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죽음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다. (중략)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삶을 멈춰야 할지 생각해두어야 할 것 같다.”(68쪽)


한편, 이어지는 죽는 장소에 대한 통계를 보면 삶이라는 것이 참 덧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많이 죽는지 살펴보면(일본의 경우) 매년 집 밖에서보다 집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합니다. 집 밖 거리에선 교통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고, 집 안에선 익사와 질식 사망자가 가장 많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자료를 누군가 만들어주면 유용할 것 같습니다. ‘사망 가능성을 낮추려면 가급적 이런 장소는 피하세요’라는 조언이 담길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선 어디를 피해야 할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삶도 죽음도 ‘어떻게’가 문제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먼저 죽은 사람들의 이미지입니다. 저자는 “죽음의 이미지는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만든다.”라는 생각으로 실제 및 작품속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부처, 예수에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돌프 히틀러, 잔 다르크, 피카소, 빨간모자의 늑대,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에 이르기까지. 여러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에 나를 넣어보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죽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는다고 할 때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거나, 두려워하거나,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고통에서 해방되는 일이라 여기거나, 순순히 받아들이고 평온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기도 한다네요. 내가 지금 죽는다면? 억울하기도 하고, 남겨진 가족들이 걱정스럽기도 해 순순히 받아들이며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동시에 살아왔던 지난 순간들도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 사람 안에 있던 추억, 감정 등 온갖 것들이 응축된다. 죽음과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것이다.”(146쪽)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늘은 카레가 맛있게 됐다’, ‘이 성공은 그때의 실패 덕분이었다’ 하는 식으로 생활 속에서 일어난 일을 잘게 바수고 연결해 자기방식대로 차곡차곡 개어가는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가끔씩 죽음 편에서 지금의 자신을 돌아본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이 짓눌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똑바로 죽음을 향해 매일의 삶을 차곡차곡 개어간다.”(148쪽)


결국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초점이 맞춰집니다. 최근 훌륭한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으로 많이 슬펐습니다. 죽음은 역시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분이 삶을 통해 남겨준 유산을 생각하며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삶이 짓눌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똑바로 죽음을 향해 매일의 삶을 차곡차곡 개어”가야겠습니다.

이브 프로젝트

작가
리브 스트룀키스트
출판
푸른지식
발매
2018.01.1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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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음부: <의학> 남녀의 바깥 생식 기관. 주로 여성의 것을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


글의 첫머리에 소리내서 읽기 쉽지 않은 단어 ‘보지’를 보시고 당황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브 스트룀키스트라는 스웨덴 출신 작가가 낸 <이브 프로젝트: 페미니스트를 위한 여성 성기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어째서 여성 성기의 일부를 지칭하는 단어가 국어사전에서조차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를 갖게 된 것일까요?

“우리 문화의 이상한 점은 여성의 샅에서 성기가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을 언급하거나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보지(외음부)’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기를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36쪽)

“우리 문화에서 여성성기의 외형은 대체로 표현할 때 지워집니다. 완곡어법과 은유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 성기의 외부를 지칭합니다.(중략) 여성성기의 외부를 지칭하는 단어, 보지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보지를 지칭하고 싶을 때도 사람들은 생각없이 ‘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39-40쪽)

여성 성기, 특히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을 말하는 보지를 말하는 것이 꺼려지는 건 우리 나라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성평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스웨덴 출신인 작가도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요.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낯선, 그래서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 책. 그동안 저를 가두고 있던 편견에 균열을 내서 금기를 깨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책입니다.

여성 성기에 대한 편견이 생긴 이유

저자는 스웨덴 사회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성별만이 존재하고, 두 성별이 성기삽입을 표현하는 칼과 칼집처럼 해부학적으로 상호보완적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것 같다고 비판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현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여성 성기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저자는 여기에 기여한 대표적 인물들 일곱을 소개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가 성기를 거쳐 대물림된다고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5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노예로 데려온 여성 사르키 바트만을 커다란 엉덩이와 소음순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나체로 전시했던 주르주 퀴비에 남작은 2위. 자위가 자궁암, 뇌전증, 정신착란과 같은 정신적 육체적 이상의 원인이라고 위생지침서에 기술해 여성 자위를 막으려 했던 존 하비 켈로그(씨리얼 만든 그 켈로그입니다)박사는 7위. 나머지 순위와 인물들은 책에서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들이 한 일들은 정말 참담합니다.

여성 성기에 대해 기행적 관심을 보였던 이 남자들로 인해 만들어진 편견은 현대사회에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고대 신화와 2-3만년전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 유물들, 중세 성당이나 도시 입구에 있었던 다리벌린 여성 나체 동상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여성 성기를 부정 혹은 금기시하는 문화는 오랜 인류 역사에 비한다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줍니다.

“자신의 보지를 드러낸 여성 조각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크로네시아의 ‘딜루카이(Dilukais)’는 나무 조각상으로, 다리를 벌리고 양손은 넓적다리에 올려둔 채 거대한 삼각형의 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은 나쁜 기운을 쫓고자 건물 현관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51쪽)

저자의 소개를 통해 여성 성기에 얽힌 역사를 읽고 이해하게 되면서 처음엔 소리내서 발음하기 어려웠던 보지라는 표현이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만큼 여성 성기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도 수정이 된 것 같습니다. 편견이 반영되어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내용도 수정되어야 하겠습니다.

여성 오르가슴에 대한 왜곡과 진실

책의 전반부에서 강한 충격을 받아서인지 후반부에서 다룬 여성의 오르가슴과 생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도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저자는 인류가 가진 편견을 정확하게 짚어주며 그것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합니다.

계몽주의 말기부터 시작된 여성 성기가 열등하다는 개념은 18-19세기로 이어지며 심화되다가 “성인에게 자위나 음핵자극은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것이며, 여자는 오로지 남자와 교합하여 질에 삽입하는 것으로만 흥분하고 만족해야 하며, 또한 이것만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건강한 성생활이라고 단언”했던 프로이트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습니다.

다행히도 1960년대 말부터 과거의 주장들에 반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음핵이 여성의 섹슈얼리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했던 마스터스와 존슨, G-spot이라는 질 입구 안쪽 부위를 자극하면 오르가슴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던 베벌리 휘플, 모든 종류의 오르가슴은 음핵복합체에서 온다는 결론을 내린 호주 로열멜버른 병원의 헬렌 오코넬 등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오르가슴으로 상징되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저자는 개탄합니다. 한 번 고착된 편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책과 같은 신선한 충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현대의 성기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19세기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성 정체성은 해부학에 매달려 있고,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두 성기는 서로 대칭하며 상호 보완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중략)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의 오르가슴과 섹슈얼리티에 관련한 모든 논의는 언제나 육체와 남성의 오르가슴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빗댄 것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먼저 남성의 섹슈얼리티의 하위에 있다고 여겨졌고, 그 다음에는 그와 반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평등한 개체로서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83-84쪽)

금기를 깨고 대화를 시작해야

저자는 금기시되는 또 하나의 주제, 생리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월경을 신성하게 여겨 숭배하기까지 했다는데 가부장적 종교가 등장하면서 월경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군요. 저자의 의견에 상당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리대 광고가 상쾌, 순수, 청결 등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이 생리가 더러운 것이라는 관념을 강화시킨다는 것도요.

“월경이 신비로운 현상이나 존재론적이고 창조성과 근접한 경험으로 다뤄지지 않고, 우리 문화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이 공개적으로 월경에 대한 경험을 서로 교환하고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죠.”(134쪽)

한국사회에서 성,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을 가지고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금기시되는 주제들 만큼이나 이 책 자체를 부정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자연스럽게 주입받아왔던 여성 섹슈얼리티를 왜곡한 관념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자의 글과 그림을 통해 여성을 억압해 온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금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기존의 왜곡된 틀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이 억압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해방은 남성해방이기도 합니다. 스트룀키스트가 제기한 문제를 가지고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해 우리 남성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편견을 해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작가
마크 릴라
출판
필로소픽
발매
2018.06.1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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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스마트폰 뉴스 알림으로 온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서 ‘뭐야…트럼프네? 트럼프야..’라고 탄식할 때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서로의 손목을 건 도박판에서 아귀(김윤석)가 들고 있던 사쿠라 화투장만큼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 참여해 후보자로 결정될 때까지도 그가 대통령까지 되리라는 예상을 거의 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을 즈음 강준만 교수의 <도널드 트럼프: 정치의 죽음>이란 책을 통해 트럼프가 지지를 받게 된 당시 미국의 정치 상황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충격이 더욱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한당 보수 더민주 진보? 아니올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가 쓴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정체성 정치를 넘어>를 보면 스스로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한 저자 역시 트럼프의 승리에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책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최고의 정치적 스캔들’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눠진 미국의 정치 환경에서 진보진영이 왜 실패를 거듭했는지 진단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집단들의 싸움에도 신물이 나는데 무슨 미국 정치얘기까지 알아야 하나 할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6월 한국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으니 진보가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에선 진보가 승리했다라는 단순한 도식에 빠지기 쉬운 시기에 마크 릴라의 책은 한국의 진보정치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공화당-보수, 민주당-진보로 구분할 수 있는 미국과는 달리 사실 우리나라에선 자한당-보수, 더민주-진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한당을 보수라 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정당 역사와 지형을 고려할 때 더민주는 보수에 가깝고 진보진영이라 할 수 있는 그룹은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정도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에서 녹생당 후보 몇몇이 약진하며 선전했고 최근 정의당 지지율이 10%를 넘었다는 고무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보면 진보정당들은 전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진보진영의 실패를 진단하고 향후 권력 획득을 위한 전략을 제안한 마크 릴라의 책은 우리 나라 진보진영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들이 있습니다.


미국 진보진영의 실패 원인


마크 릴라는 20세기 미국 정치사를 ‘연대, 기회, 공적 의무’로 상징되는 1970년대까지의 ‘루스벨트 체제’와 ‘자기신뢰, 최소정부’로 상징되는 1980년대부터의 ‘레이건 체제’로 구분합니다. 저자는 루스벨트 체제 이후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민중의 감정을 일으키고 신뢰를 얻는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미국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으로 저자가 지목한 것은 ‘정체성 정치’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초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등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자기존중과 자기정의를 내세우는 사이비정치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고 마크 릴라는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들이 진보적 정치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해 그들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를 말하는데, 주로는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뜻함)


“민주주의에서 소수자들을-공허한 인정과 찬양의 몸짓에 머물지 않고-유의미하게 돕는 유일한 길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장기적으로, 정부의 모든 층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메시지로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 진보주의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16쪽)

‘유일한’, ‘정부의 모든 층위’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과 민중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 나라 진보주의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뿐 아니라 마크 릴라가 말하는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기(레이건주의)가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이건 체제속에서 미국 보수진영은 대다수 미국인의 삶과 사고 방식에 맞서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미국인들의 관심이 사회의 필요보다는 개인의 필요와 욕망, 자유와 권리 추구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수진영은 간파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점을 저자는 언급합니다.


레이건 당시 공화당은 주 선거, 지방선거, 연방의회 선거,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당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역 수준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전국적 미디어에 집중하면서 4년마다 있는 대통령 선거에 집중했습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미국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을 찾았습니다. 민주당이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결국 미국 민중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점을 보면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기층 민중과의 분리,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의무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우선시, 사회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의 부재를 진보진영이 가졌던 문제점으로 지적합니다. 반면 대중 선동에 탁월한 트럼프는 인종차별, 여성혐오, 폭력 조장, 언론 및 법 경멸 등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지자를 확보했습니다. 그만큼 진보진영이 민심을 잃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승리를 위한 진보진영의 전략 제안


보수진영에 내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마크 릴라는 운동정치보다 제도정치, 목표없는 자기표현보다 민주적 설득, 집단 정체성이나 개인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도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선거에서의 승리가 필수적이라고도 주장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운동 정치의 그 어떤 성취도 제도 정치를 통해 무효화될 수 있다”(113쪽)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들끓는 분노와 파괴 욕구를 감안할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기타 소수자, 여성,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쟁취한 제도들의 존속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선거 승리다. 워크숍과 대학 세미나는 그 제도들의 존속을 보장하지 못한다. 온라인 동원, 플래시몹, 항의 시위, 일탈 행동, 퍼포먼스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직시하라! 운동 정치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진 참가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은 시장들이 필요하다. 더 많은 주지사들, 주 의원들, 연방의원들이 필요하다.”(114쪽)

극우정당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자한당의 방해로 다양한 운동으로 모이는 변화의 동력이 법제화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운동 정치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미국 진보진영에만 해당되는 주장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엔 여전히 다양한 사회운동을 통해 성장한 운동가들이 진보정당들과 연합하여 제도권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은 다수의 지지를 얻는데 계속해서 실패해 왔습니다. 일정 부분은 선거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으로 지금까지의 패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정당들 사이의 ‘정체성’ 다툼과 그로 인한 분열, 민중들의 마음보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 정치를 낚시에 비유한 대목을 읽으며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에도 저자가 말한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의 모습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의 낚시 방법은 물가에 서서 물고기를 향하여, 바다가 물고기의 역사적 잘못으로 판정한 바들을, 그리고 바다 생태계를 위하여 물고기가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을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고기들이 집단적으로 죄를 고백하며 물가로 올라와서 뜰채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121쪽)

우리 나라 진보정당과 진보주의자들은 초기 운동때의 단결력과 결속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선거때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파간 갈등을 반복해서는 지금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운동정치의 시대가 끝났다는 마크 릴라의 선언은 어쩌면 우리 나라 진보정당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일지 모릅니다. 시민사회의 운동성과 조직력이 향상된 촛불의 시대엔 진보정당들은 정파의 벽을 넘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책을 통해 마크 릴라가 소개한 진보진영에 대한 문제 진단과 대응책을 우리 나라의 진보 정치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볼 만한 시사점들은 충분합니다. 진보적 철학을 가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진보의 승리라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마크 릴라가 한 것처럼 실패의 원인을 성찰하고 우리나라 진보의 미래 전략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불복종

작가
아이라 샬레프
출판
안티고네
발매
2018.03.21.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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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면 그것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복종> -


복종과 불복종에 대해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시에서 화자는 ‘당신’에게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싶으며 그것은 자유보다도 달콤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당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당신 아닌 다른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국가기관이든 기업이든 어떤 조직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저항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명령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태연히 지시에 따랐던 사람들처럼 그리 오래지 않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도 독재권력의 지시에 따라 무고한 이웃들을 무참히 살해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자신들도 살기 위해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신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조지타운 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대중들에게 팔로워십 개념을 전파하고 있는 아이라 샬레프는 <똑똑한 불복종>이라는 책에서 단호하게 “그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선언합니다.


“시키는대로 복종하라는 압박이 있었더라도, 우리가 한 행동은 모두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자기 입장을 명확히 하고, 명령이 틀렸을 때는 옳은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7쪽)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가 말한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도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옳지 않은 지시에도 복종했을 것입니다. 저자도 잘못된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명한 것임을 알지만 이 당연한 말을 실행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통해 단순히 지시를 따름으로써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인식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친일파와 독재 권력에 복종했던 부역자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로 옳지 않은 지시에 따르는 이들은 용산참사, 강정마을, 밀양송전탑,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세월호,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사건의 이름만 바뀔뿐 최근까지도 계속 있어왔습니다. 권위에 복종해야 할 때와 권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를 판단하지 못해 비극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적절한 생각거리와 실천과제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맹목적 복종의 위험성


저자는 규칙과 권위에 맞춰사는 것과 우리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모색하는 것을 똑똑한 불복종이라고 정의합니다.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이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지시에 복종하도록 교육받지만 복종하는 게 위험할 때는 복종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는 것에서 저자는 똑똑한 불복종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 개념을 제안하면서 저자는 맹목적 복종의 위험성을 언급합니다.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공식적인 권위에 잘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조직의 명령 체계 속에 내재된 공식적인 권위에 잘 따르게 됩니다.(중략) 기업, 정부기관, 군대 등 여러 곳의 종사자들이 문제를 축소하라는 압력에 굴복하여 불필요한 위험이나 손실을 만듭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역사 속의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그저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9-10쪽)


1971년 권위에 충실히 복종하며 적응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줬던 스탠퍼드 감옥 실험 고안자인 필립 짐바르도 교수도 자연스럽게 복종하는 문화와 잘못된 복종의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권위의 정당성을 판단하고 부당한 권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첫날부터 교사와 공무원에 의해 엄격한 복종의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나중에 그러한 기관들을 유지하는 성인이나 납세자가 되어 잘못된 복종을 이어갑니다. 정당한 권위와 부당한 권위의 근본적인 차이, 즉 전자는 존중해야 하고, 후자는 불복종하고 저항해야 마땅하다고 가르치려는 시도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16쪽)


불복종을 배우기 위한 사고실험


어떤 문화권에서든 대체로 불복종보다는 복종이 장려됩니다. 앞서 책에서 인용한 것처럼 우리는 복종이 표준모드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권위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복종과 불복종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복종과 불복종 사이에서 서택해야 할 때 자문해야 할 세 가지 물음을 제시합니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상당히 공정하고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규칙을 정하거나 지시하는 권위자가 상당히 정당하고 유능한가?
-지시가 상당히 건설적인가?


 

이 기준에 비추어 복종과 불복종을 선택해야 한다고 저자는 가르칩니다. 그리고 불복종을 선택해야 할 때 명령을 내린 사람과 이후에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하고 대응할 것을 제안합니다. 때문에 똑똑한 불복종이라 표현한 것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며 전달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권위를 받들던 습관을 극복할 수 있게 연습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사례로 제시합니다.


 

-의사로부터 잘못된 처방으로 생각되는 지시를 받은 응급실 간호사
-부모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객실에서 나오면 안된다는(그런데 건물에 불이 났다) 말을 들은 아이들
-활주로 얼음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이륙을 하다 엔진 이상이란 계기판 신호를 본 항공기 부기장. 기장은 그냥 이륙하라는데…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당신. 장관의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이 얼마 없자 “회견장으로 내려가서 기자석을 채우세요. 몇 명은 장관님께 할 질문 몇 가지 준비하시고”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면?
-어떤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회계조작을 지시받는다면?
-2001년 9월 11일. 건물에 충돌한 비행기로 인해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온다면?


 

불복종의 거룩한 계보에 들어가기 위하여


권위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저자는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을 소개했습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약 3분의 2는 희생자들이 고통받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이들은 옳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도 밀그램이 말했던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자율상태’와 위계 속에서 권위자의 대리인이 되는 ‘대리인 상태’가 공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제안한 권위의 정당성 판단 기준을 되새기고 다양한 사고 실험 사례들의 주인공이 되어 불복종을 연습해 봅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지시가 내려올 지 모릅니다. 명령의 근거가 정당한지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고, 저자가 조언한 것처럼 복종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옳은 가치와 원칙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준비와 연습만이 가장 확실한 성공의 열쇠이다. 능력이 필요할 때 배우려면 이미 늦는다. 바로 내일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바로 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책과 함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에 대하여>,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밀그램의 실험 결과를 보며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30% 정도는 복종에의 압박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희망이 있습니다. 저자도 말했듯 똑똑한 불복종을 실천해 불의한 체제를 바꿔왔던 사람들이 항상 이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촛불시민들처럼.

그해 봄

작가
박건웅
출판
보리
발매
2018.04.09.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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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선, 김용원, 송상진,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여정남, 서도원.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선 안되는 이름들입니다.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한 유신헌법 제정으로 반대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이 여덟 명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조서를 조작하고 결국엔 사형시켰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고 김종필이 국무총리로 있던 1975년 4월 9일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여덟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채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가는 구금되어 있는 기간 동안 피해자들을 가혹하게 고문했고,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재판도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박정희의 국가는 이렇듯 공공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게 했고, 이후 가족들조차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끈질기게 감시하고 괴롭혔습니다.

박건웅 작가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사형수 유가족들, 선후배 동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건을 <그해 봄>이라는 만화로 2018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전합니다. 이야기는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여덟 명의 피해자들의 삶과 당시 그들이 겪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스러운 진술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던 유가족들

고통스럽게 죽어간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던 유가족들의 한이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글로 표현된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한 번에 읽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 줄 읽고 멈추고 또 한 줄 읽고 멈추고를 반복하다 이내 책을 덮고 먹먹해진 가슴이 풀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넋을 떠나보낸 산송장처럼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햇빛을 보지 않고 어두운 방에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장대비 쏟아지듯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자던 나도 따라 울었습니다. 그러면 건넌방에선 큰 언니가 울고 부엌에선 작은 언니가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쳐 탈진한 어머니에게 물을 드리려고 밖으로 나가면 벌겋게 부은 눈의 작은 언니가 눈을 흘기며 물을 따라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흘겨보고 미워하며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마음 속의 증오와 절망, 혼까지 태워버릴 것 같은 분노를 서로에게 말고는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가 없었으니까요."(68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은 뒤 우홍선씨의 딸은 학교에서 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학교에선 마치 자신들의 부모가 죽은 듯 온 교실이 울음바다였고, 단체로 추모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사람의 죽음을 추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마음은 글로 전해읽는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우홍선)가 돌아가신 뒤 정신적 고통이란, 바로 내가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 한 귀퉁이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암세포와 같은 것입니다."(74쪽)

하재완씨의 아내가 겪었던 일 역시 독자들을 말할 수 없는 참담함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국가는 사건을 조작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국민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당시 모습을 상상하니 서글픔과 비참함이 밀려듭니다.

"동네 아이들이 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마을 앞 당산나무에 묶어 놓고 간첩이라고 죽여야 한다면서 장난감 총으로 총살시키는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난 치고는 너무나 지나친 그 장면을 동네 어른들이 지켜보면서 꾸중은커녕 구경하며 웃었다 하니 얼마나 기가 차고 비참했는지 모릅니다."(185쪽)

진실이 밝혀진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05년 12월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면 끝나는 것일까요? 명예는 회복되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여덟 명의 무고한 생명과 그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삶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국가가 자행했던 이 살인 사건을 대한민국 시민들 모두가 기억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작으나마 보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내 남편과 나를 유린했는데 세상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유신, 온갖 불법적인 만행은 잊고 온 국민이 보릿고개를 없애고 경제를 발전시켜 우리를 잘 살게 해 준 대통령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말하는 도예종씨 아내의 말에서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천해야 할 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박정희에 대한 모든 예우와 기념사업을 전부 폐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시절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한 폭력은 계속 있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책임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은 것처럼 이 무자비한 사법살인의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재판과 철저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도예종씨의 딸이 종로경찰서 정보과에 가서 항의하자 경찰들이 했던 대답이 더는 나오지 않는 국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적인 희생이지. 우리도 살기 위해서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뿐이야."(268쪽)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과 그 동조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했던 정황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정희 당시 살기 위해 시키는대로 사형 선고를 했던 판사들의 모습과 박근혜 정부 때 판사들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했던 판사들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은 불의한 권력 탄핵이후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한 번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살인의 책임자들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 국무총리, 민복기 대법원장, 황산덕 법무부 장관, 서종철 국방부 장관, 김치열 검찰총장,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이용택 중앙정보부 6국장, 윤종원 중앙정보부 수사팀장, 문호철 서울고등법원 검사.

1심 보통군법회의 판결 판사들: 박현식, 류병현, 박희동, 이희성, 강신탁, 신현수, 권종근, 신정철, 박천식
2심 고등군법회의 판사들: 이세호, 윤성민, 차규헌, 문영극, 박정근
3심 대법원 판사들: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한환진, 임창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홀로 반대의견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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