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되는 법

작가
에밀리 와프닉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17.11.3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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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나의 집중 대상을 선택하고 나머지 다른 관심사들은 포기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울러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며 여러 정체성 사이를 오고가는 데서 기쁨을 찾는, 별난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10쪽)

에밀리 와프닉이 쓴 <모든 것이 되는 법>이 누구를 위한 책인지는 위 두 문장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 흥미로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운 사람들, 과연 내게 적성이라는 게 있을까 의심스러운 사람들, 뭔가 하나를 꾸준히 할 수 없어서 종종 좌절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용기를 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누구누구는 꿈이 뭐야?’라는 물음에는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똑같이 묻기도 했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이번 생애에서 허용된 정체성은 하나뿐이니 너에게 꼭 맞는 일을 찾으라는 압박이 내포되어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정말 꼭 맞는 일이란게 있을까요?


그런줄 알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는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예전엔 중학교 때 인문계, 실업계(공업고, 상업고) 고교를 선택해야 했고(적성이 아닌 시험 성적으로) 고등학교 때 인문계는 문과 이과로 진로를 정해야 했습니다. 좀 특별한 영역으로 예술고등학교도 있었네요.


내가 선택한 길인 것 같지만 실상은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강요된 선택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느 덧 중년에 이르러 삶을 돌아보면 제가 선택한 직업분야는 운좋게 제 적성에 꽤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너는 세상이 안내한 길에 잘 적응했던 것 뿐'이라고 해도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한 것 하나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저는 세상의 틀을 잘 견뎠던 것 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만납니다. 미술을 전공하다 엔지니어가 된 동료도 있고, 엔지니어인데 연주회, 전시회를 할 정도로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과연 어떤 정해진 적성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책의 저자도 인생에서 음악, 미술, 영화, 법학 분야를 거치며 활동해 왔습니다. 에밀리 와프닉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다능인(멀티포텐셜라이트)’이라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능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외부의 정해진 틀 속에서도 삐죽삐죽 솟아나오던 사람들이 그 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와, 완전히 내 얘기네’라고 맞장구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다능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기반으로 다능인들이 대체로 겪게 되는 직업, 생산성(집중력), 자존감 영역에서의 문제 극복 방안을 공유합니다. 다능인이신가요? 저자의 말을 들어보세요.


“당신은 무언가를 뒤집어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세상을 당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더 좋게 만들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운명적 일이 무엇이든, 다능인 기질을 억누르는 동안에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반드시 그 기질을 받아들이고 사용해야만 한다.”(31쪽)


다능인들은 기질 상 다양한 경험과 시각으로 아이디어를 통합할 수 있고, 초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열정이 있기에 무엇인가를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고,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다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통찰을 얻기 위해 저자는 ‘스스로 행복하며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표현하는 수 백명의 다능인들을 설문하고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성공적인 다능인들은 돈, 의미, 다양성을 제공하는 삶을 설계해왔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먼저 생존과 예기치 않은 상황 그리고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얼만큼의 돈이 필요할 지 명확한 선을 정할 것을 조언합니다. 두 번째로 어떤 활동을 할 때 활력과 기쁨을 느꼈는지 생각해보고 각자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을 지속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을 추구할 때 압도당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의 균형 지점을 찾을 것을 제안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만큼의 돈이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활동 중 어떤 것이 수입을 창출하더라도 상관없다. 같은 맥락으로, 단지 돈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괜찮다. (중략)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수익을 낼 필요가 없듯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낄 정도면 충분하다.(65-66쪽)


사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해준 성과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기에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이상적인 삶입니다. 이들이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며 때론 좌절하며 분투하며 지내왔을 지에 대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자는 이 치열한 과정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능인들이 어떻게 일하면 좋을지 네 가지 직업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룹허그 접근법: 몇 가지 직업 영역을 오가며 많은 역할을 하는 다면적 일이나 사업
-슬래시 접근법: 정기적으로 오갈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파트타임 일이나 사업
-아인슈타인 접근법: 생계용 풀타임 일이나 사업. 단, 부업으로 열정을 추구할 시간과 에너지를 남길 수 있는
-피닉스 접근법: 단일 분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일한 후 방향을 바꿔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일 시작

그룹허그 접근법(좌상), 슬래시 접근법(우상), 아인슈타인 접근법(좌하), 피닉스 접근법(좌우) 각 직업 모델에서 돈, 의미,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식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화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즘 이 직업 모델들은 꼭 다능인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마저도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급여도 적고 안정성도 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은 더 만연해집니다. 물론 철밥통이라는 직업군이 여전히 있기는 하나 그 문은 점점 더 비좁아집니다. 가혹한 현실이지만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짜피 이런 현실이라면 내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다능인의 기질을 찾아보는 시도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모든 열정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직업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보수를 받으면서 그 열정 분야들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을 찾는 건 정말로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열정을 전부 보수를 받는 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느껴서는 안된다. 우리가 앞서 논의한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순전히 재미를 위해 관심사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104쪽)


사회 구성원들이 이와 같이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해 줄 수 있다면 지금도 가혹한 세상에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청년세대들이 자신들의 열정 분야를 탐험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저자는 유명한 다능인들의 삶을 기초로 사람들 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때문에 각 다능인 개인들에게 필요한 생산성 혹은 집중력 발휘 기술에 대해서도 상당부분의 조언을 할애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질문지가 어떻게 집중하고 행동하며 언제 그만둘 때를 결정할 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자가 언급한 다능인들을 힘들게 하는 두려움, 불안, 다능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비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는 다능인들뿐 아니라 다능인이 아니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다재다능함을 지속하며, 번창하고, 탁월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 의미, 그리고 다양성을 얻는 방법’을 사람들이 알아내기 위해서 개인의 역량 향상과 직업 선택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안에 숨겨져 있는 다재다능함을 이끌어내고 순전히 재미를 위한 활동이 가능한 장이 마련된다면 사회 공동체 전체에 활력과 기쁨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가지를 선택했다가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생존하기조차 버거운 사회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기본소득이든 실업수당이든 다능인들의 직업모델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면 국가 전체가 다양성으로 활력을 띠게 될 것입니다.



리처드 파인만

작가
크리스토퍼 사이크스
출판
반니
발매
2017.02.10.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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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부터 1988년까지 70년 생애를 화려하게 살다간 독보적인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2월 15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파인만이 남긴 과학적 성과와 업적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골치아픈 물리학보다는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사람과 그가 살았던 인생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유별나면서도 한편으론 평범하기도 했던 파인만의 인생을 추억하기 위해 이 책 <리처드 파인만>을 선택했습니다.


영국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 크리스토퍼 사이크스는 파인만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발견의 즐거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1981년에 제작했던 이 다큐멘터리와 BBC TV에서 방영했던 파인만에 관한 다른 세 개의 영상들을 기반으로 쓰여졌습니다. 파인만, 그의 가족, 친구, 동료들과 나눈 대화들을 파인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정리했습니다.


책에는 모두 열 개의 주제로 파인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서 파인만이라는 사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리처드 파인만의 삶은 어느덧 중년에 이른 엔지니어인 제가 읽으면서 물리학 혹은 자연과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흥미로웠습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과학자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꼭 일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들을 과학의 길로 인도하다


파인만이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과학의 핵심적인 사항을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먼저 가설을 세우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한다는 과학의 핵심을 배웠습니다. 또한 질문하고 깊이 탐구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요. 학교에 대한 파인만의 회상에서 우리 나라 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시험에 통과시키려고 가짜 원칙을 만들었지요. 몇 가지 규칙을 정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도 답을 내놓게끔 만든 겁니다. (중략) 학생들이 뭐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답은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들이죠.”(33쪽)


파인만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강요나 압박을 한 것이 아니라 과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린 파인만에게 과학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결국 파인만은 MIT, 프린스턴 대학원을 거쳐 물리학의 길에 들어서고 당시 물리학계의 큰 도전과제를 풀어가게 됩니다.


과학자와 윤리


1939년 21세의 파인만은 핵무기 개발을 목표로 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초청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과학자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파인만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의 실수는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잊었던”것이라 말합니다. 과거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최근 논란이 되었던 폭스바겐의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배출가스 실험 등을 생각해도 과학자들의 연구윤리 문제는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주제입니다.과학자들은 처음 시작했던 이유는 묻어두고 관성으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윤리 문제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원래 이유, 즉 독일의 위협을 막겠다는 이유에서 저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중략) 전부 힘을 합쳐 무척 열심히 참여한 프로젝트였는데, 다른 여느 프로젝트처럼 추진하기로 한 이상 성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비윤리적이었던 건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그만 잊었던 거에요. 독일이 패망해서 이유가 바뀌었는데도 그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전 그냥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73쪽)


“거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윤리적 실수의 마찬가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유가 옳았던 그르던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원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저의 윤리적 약점이었습니다.”(73-74쪽)


다채로운 인생의 최대 동력은 ‘재미’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이라는 듣기만해도 어질어질한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이나서 감사하며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절하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아 마지못해 수상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매년 노벨상 발표 때만 되면 수상자도 없으면서 호들갑을 떠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대비되었습니다. 파인만은 “발견의 기쁨, 발견의 흥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 연구를 사용한다”는 상을 이미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보다 멋진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노벨상을 주겠다는 노벨위원회에게 누구맘대로 수상자를 선정하느냐며 투덜거리는 괴짜 과학자 파인만. 그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마음껏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물리학은 물론이고 봉고 연주도 했고, 친구인 화가에게 그림도 배웠습니다. 온갖 기계장치, 다른 과학 분야(생물학 등), 그냥 놀기 등 파인만이 즐기는 분야는 진정 다채롭다 할 수 있었는데 이 모든 동기는 ‘재미’였습니다.


“나는 희한한 것-남들이 희한하다고 여기는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게 아주 많았어요. 솔직히 말해 저도 제 자신을 모르며, 어떤 게 저한테 왜 즐거운지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즐거우면 즐기면 되지 남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죠. 하고 싶은 걸 할뿐, 개의치 않아요. 신경 쓰지 않죠! 그냥 재미로 합니다. 재미는 정의내릴 수가 없죠. 사람마다 재미있는 게 다르니까요.”(113-114쪽)


정말 매력적인 말입니다. 저 역시 학생 시절보다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 관심가는 분야가 많아지고 단순히 재미와 호기심으로 배우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파인만의 ‘재미’론은 이상적입니다. 세상만사에 대한 호기심을 타고난 것 같았던, 그래서 모든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늘 궁금해하고 뭐든 시도해봤던 파인만을 인생의 롤 모델 중의 한명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미국 우주 프로그램의 오류를 만천하에 드러내다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이후 파인만의 일생에 두 번째의 커다란 공적 과제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1986년 미국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가 채 2분도 되지 않아 폭발한 챌리저호 사고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정치적 사안에 관여하기 싫어했던 파인만이었지만 지혜로운 조언자였던 아내, 그리고 과학자 동료들의 제안에 설득당해 챌린저호 위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갈 데까지 가는 근성있고 용감한 파인만은 동료들과 함께 철저한 조사하여 챌린저호 사고가 일어나게 된 기술적인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이에 더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불행한 사고일 뿐’이라는 식의 관료주의적 은폐 공작을 막아냈다고 동료 과학자 앨 힙스는 말합니다. 참여한 사람들, 관료시스템, 정치와 연구비 지원 등 진정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알았음에도 파인만은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란 신념을 밀어부쳤습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들, 국가 연구 프로젝트 예산을 담당하는 관료들,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정치인들, 더 나아가 국민들 모두가 파인만의 이와 같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위험 징후들을 발견 혹은 예상하고 아우성치는 현장의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는 조직의 의사를 결정하는 위쪽 사람들과 예산을 틀어쥔 정부 사람들에게는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과거 챌린저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각국의 국가 연구 프로젝트들에도 분명 이와 같은 지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순수 과학자인 파인만은 미국이란 나라의 중요한 국가사업인 우주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시스템적 결함을 드러냈습니다. 이 사례가 우리 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들을 예방하는 데 통찰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개발 프로젝트든지 기술적 약점과 불완전성이 있다면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쫓기지 않는 개발 일정과 예산을 수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해야 하며, 이해관계자 및 시민사회 전체에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파인만에겐 자신의 병과 죽음조차 탐구의 영역


파인만은 죽음을 다루는 것조차 괴짜스러웠습니다. 파인만은 희귀한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특유의 호기심을 발동시켰습니다. 그의 동생 조안은 파인만이 암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최대한 이해하길 원했다고 회상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순간에도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타고난 과학자입니다.


그는 과학을 탐구하던 모습으로 치열한 생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수술 후 더 이상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알았던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의미 없음을 파인만과 그의 가족들은 인정했고 스스로 자신의 죽을 때를 결정했습니다.


파인만은 보통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전혀 아닌데도 그가 남긴 삶의 자취, 자연과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태도가 보통 사람인 제게도 강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주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불가사의에 대해 과학이 모든 답을 줄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환상이며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답을 바라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우리가 하는 일은 탐구하는 겁니다…저는 세계에 관해 더 많이 알아보려고 할 뿐입니다…자연의 특성을 더 많이 찾아낸다고 해도 그 특정한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과학에 대한 저의 관심은 그저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고, 더 많이 알아낼수록 더 좋다는 거에요. 저는 뭔가를 알아내길 좋아합니다.”(315-316쪽)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작가
마이클 만, 톰 톨스
출판
미래인
발매
2017.06.0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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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에 지구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요? 올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다시 한 번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까요? 날로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로 과거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들 20곳 중 9곳에서는 2050년 이후에 동계올림픽 개최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있었습니다.(캐나다 온타리오 워털루대학 연구진) 다행히 평창은 205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2.2도 상승할 경우를 가정해도 동계올림픽은 치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 전체를 생각하면 결코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러시아의 소치, 캐나다의 밴쿠버 등은 동계올림픽 다시 개최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지구온난화가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말이죠. 당장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 지 모르겠는데 30년 후를 걱정하느냐 말할 지 모르겠습니만 먼 앞날을 내다보며 대비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구는 어느 한 국가나 대륙의 소유가 아니라 전 지구인, 더 나아가 모든 생명체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적 관점으로 최근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현상들에 주목하며 그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각종 이익집단들을 대변하며 기후변화는 허상이라고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시사만평가 톰 톨스와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대기과학과 교수 마이클 만은 이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에게 맞서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기후변화 부정론자들(기업인, 정치인, 과학자 등)의 거짓 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기후변화, 과학적 근거가 많은데도 왜 논란이 될까?


‘과학’이라고 하면 객관적이고, 정확하고, 완전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들은 쉽게 부정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자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의 약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적 관점’을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과학적 평가체계에 악용할 소지가 있는 약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약점은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는 과학을 공공정책에 반영할 때 핵심이 되는 요소다. 그런데 여기서 ‘회의적 관점’이라는 구실을 앞세워 혼란의 씨앗을 뿌려대는 사람들이 출몰한다. 실제로 불신과 의심을 떠벌리는 자칭 비평가들이 과학적 연구 과정 자체를 끊임 없이 공격하고 있다.”(20쪽)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특정 이익집단들(기후변화 억제 대책이 시행될 경우 손해를 보게되는 집단)을 등에 업고 명백한 과학적 근거들을 공격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모두 ‘과학’이라고 하니 대중들은 사실과 의견 혹은 거짓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채 기후변화가 여전히 ‘과학적 논쟁’이 있는 사안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혼동과 오류를 막기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일관성 있는 근거를 갖는 기후과학의 결과를 명확히 선언합니다.


“1) 이산화탄소는 열을 가두는 기체이다. 2) 인류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등의 행위를 통해 지구 대기층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대폭 증가시켰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이었는데 지금은 400ppm 이상이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1도씨 정도 상승했다.”(본문 요약)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는데 왜 겨울은 더 추워지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파가 계속되는 우리 나라에선 이런 의문이 당연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의문에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기온 상승으로 폭염이 심해질 수도 있고, 극지대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으로 인해 홍수가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북극 지방 바다얼음이 줄어들며 형성되는 특이한 제트기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미국의 경우) 허리케인의 일반적 경로도 벗어나게 됩니다. 지구 기온 상승으로 폭염이 더 심해지고 추위는 더 가혹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지구 기온 상승으로 예상치 못한 기후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 우리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선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저자들은 전체 지구를 보며 이야기하기에 기후 변화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고, 지구적 식량문제를 야기하고, 에너지 자원이 부족해질 것이다라는 예상을 합니다. 하지만 개인들의 삶에는 그리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물 부족, 건강 문제 등을 일으킨다는 것 정도가 와 닿을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로 인해 개인들이 실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저자들이 제시했다면 독자들이 조금은 더 심각하게 기후변화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자들의 비유에 매우 공감이 됩니다.


“우리는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지, 지구 온도가 얼마나 더 상승해야 폭발할는지 알지 못한다. 한마디로, 눈가리개를 뒤집어 쓴 채 낭떠러지가 근처에 있다는 경고를 듣고 있는 처지다. 몇 걸음 밖에 낭떠러지가 있을까? 네 걸음? 열 걸음? 우리에게 몇 걸음이 남았건 간에, 최선책은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는 것이다.”(57쪽)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행동은 늘 실험의 연속이었다. 진보는 이런 실험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험행위는 예상치 못한 커다란 문제들을 이따금 야기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해나간다. 독소나 방사선, 약물의 부작용 등은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행위 역시 또 다른 사례에 해당한다. 감지하기 어렵고,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제 일산화탄소와 같은 유독성 가스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기체들 통제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돼왔다. 이산화탄소는 다른 종류의 위험이다. 일산화탄소가 인간의 건강을 즉각적이고도 심각하게 위협한다면, 이산화탄소는 지구 기후의 안정성을 장기간에 걸쳐서 위협한다.”(134쪽)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특징


기후변화 대응 대책으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되거나 이익이 감소하게 되는 집단들은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들을 부정하며 기후변화 문제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입니다. 부정론을 퍼트리는 이들은 미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저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이들의 주장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기 위한 핑계들이다’라고 선언합니다.


1)기후변화 근거 자체를 부정, 2)기후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주장, 3)온난화도 자연이 조절할 것이다라고 주장, 4)기후변화가 나쁜 결과뿐만 아니라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주장, 5)기후변화 대책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주장, 6)간단하고 비용이 덜 드는 기술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


우리 나라의 정치권이나 기업집단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내놓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의 언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탁월한 과학자들, 그리고 유명인들 마저도 ‘이념’과 ‘돈’ 때문에 기후변화 부정론을 지지하는 일을 하거나 기후변화 증거들을 흠집내려고 기후변화의 근거를 대는 과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나 집단이 있는지 시민사회에서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들은 언론의 그릇된 균형론도 비판합니다. 언론이 기후변화와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서 양측을 공평하게 다루려는 태도에 대해 “대단히 게으른” 것이다라고 저자들은 일침합니다.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는 과학적 문제에서 모든 관점을 동등하게 다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언론들은 어떤지 생각해 봅니다. 객관적 사실조차도 논란이 있는 양측의 주장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대단히 게으른”태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요.


지구는 우리들의 집이다. 행동에 나서자.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인들이 취해야 할 행동들을 제안합니다. 국제적으로는 기후변화 회담을 통해 국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각국의 정부들은 기후변화 대응 법안을 통해 전기에너지 생산, 교통수단 이용 과정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을 줄여야 합니다. 또한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들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생각하자고 제안합니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세력들의 논쟁에 빠져드는 대신 해결책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재생에너지와 탄소배출 저감을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단체를 지지하는 것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 방법이 돌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기후에 투표하라”고 말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투쟁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 행성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고, ‘파괴할 수도 없다’. 플래닛B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 같은 행성이 발견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지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생명체들로 넘쳐나는 보물상자다. 우리가 방종한 탄소중독 탓에 이 소중한 지구를 치명적인 불균형 상태에 던져버린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하고 지극히 무책임한 범죄행위가 될 것이다.”(215쪽)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거리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너무 하찮은 일들인 것 같아서 혹은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변화가 일어날까’라는 회의로 무시해왔던 캠페인들을 다시 돌아봅니다. 일회용 제품 사용 줄이기, 자동차 이용시간 줄이기, 전기/가스/물 사용량 줄이기,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는 단체 지지/후원하기 등부터라도 다시 실천해야겠습니다.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작가
나가오 가즈히로
출판
심포지아
발매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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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려서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1년, 6개월, 아니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병상에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붙잡고 치료를 받으며 살아갈까, 아니면 병원을 나와 고통을 견디며 죽음이 찾아올 때를 기다릴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햄릿이 했던 저 말을 되뇌일 것 같습니다. 선택지가 많지도 않고 어떤 선택을 해도 고통스러울 듯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주어집니다. 다음달 4일부터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법의 틀 안에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을 2월 4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일명 존엄사 법이라고도 부르는 이 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지난 해 복지부에서는 1개월 동안 시범사업을 벌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7명이 존엄사를 선택했고, 2천여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한달간 7명 ‘존엄사’선택했다…복지부, 연명의료 시범사업 중간보고, 경향신문 ‘17.11.28일자) 이 법을 만들고 시범으로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사람이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자살, 조력자살, 안락사, 존엄사의 의미와 방법 등 세부적인 항목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문제들이 논의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일단 ‘연명의료결정법’이라는 큰 틀은 마련한 셈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에 이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법의 오류나 문제점 등이 발견될 것이고 논의를 통해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쳐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죽음과 관련된 생각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존엄사? 그게 뭐지


존엄사를 시행하기로 한 우리 사회에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책이 존엄사를 바로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죽음과 ‘죽을 권리’와 같은 근본적인 생각거리도 던져줍니다. 이 책은 나가오 가즈히로라는 의사가 2014년 가을 미국에서 있었던 안락사 보도를 기초로 일본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자가 공중에 퍼져 사라질 강의를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거리를 준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삶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을 맞는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죽음을 존엄, 안락, 평온이라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논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10-11쪽)


저자는 크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안락사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존엄사 안락사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당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죽을 것이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 지 모르기에 평소에 죽음은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일”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오만가지 염려가 떠오르고 죽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죽고 싶은지 생각해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들은 ‘고통없이’, ‘평온하게’입니다. 제게도 죽을 권리가 있다면 평온한 죽음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한 죽음의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만 간단히 살펴보죠.


-안락사: 가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죽게하는 일(일본)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표준국어대사전)


-존엄사: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는 일, 혹은 맞도록 하는 일. 현대 의학의 연명 기술 등이 죽음에 임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무시할 수 있다는데 대한 반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일본)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견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안락사에도 의사가 직접 약을 주입해 죽게하는 방법과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죽음의 방식에 차이가 있고, 이러한 방식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느냐는 나라마다 또 나라에 속한 지역마다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 시행하게 되는 존엄사 법에도 구체적인 사항들이 명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자 본인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죽을 권리라는게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요?


죽을 권리가 있는가


저자는 독자들에게 죽을 권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으며 죽음이 개인적인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라면? 내 부모님이라면? 안락사를 선택할 것인지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1975년 미국에선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던 딸의 부모가 호흡기를 제거하게 해 달라는 소송으로 딸의 호흡기를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식물인간 상태로 약 9년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안락사 선택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미리’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해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합니다. 저자는 일본존엄사협회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이 불치 또는 말기 상태가 되었을 때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제 죽음을 어렵게 결정해야 할 가족들을 위해서요.


죽을 권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난 것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면 조금은 이기적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부모도 국가도 성별도 모두 내가 선택하지 않았죠.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식으로 죽을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를 모두 본인이 정하려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94쪽)


우리는 모두 죽어요. 어떻게 죽으실래요?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합니다. 사람은 치사율 100%입니다. 모두가 죽습니다. 임종기가 있는 죽음도 있고, 돌연사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도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혼의)을 동반하는 죽음도 있고 잠들 듯 평온한 죽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르듯 죽음의 모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 죽음이라는 두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 가족, 행복, 존중, 존엄, 자기 결정권의 범위 등 보다 확장된 주제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존엄사 법 시행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법을 시행하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들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참으로 냉정하고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구에게는 서서히 찾아와 마음의 준비도 시켜주고, 누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다가와 단번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어 놓는다. 수만 가지 죽음의 모습 중 나는 어떤 모습을 희망하는가 생각해 본다.”(147쪽)


100℃

작가
최규석
출판
창비
발매
2009.06.0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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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헌철 군독타!!”


‘파쇼헌법 철폐하고 군부독재 타도하자!’라는 구호의 줄임버전입니다. 이젠 대한민국 어떤 시위 현장에서도 이런 구호는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한민국은 군부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이 민주화 운동 이후로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진보와 퇴행을 오가며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택하면서 많은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30년이 지난 2017년. 더 이상의 퇴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끓어오른 민주 시민들은 새로운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고 또 다른 차원의 민주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때마침 30년 전 대한민국 시민들의 투쟁 모습을 그린 영화 <1987>도 만들어져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이전에도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영화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만화책 <100도씨>입니다.


이 만화는 최규석 작가의 작품입니다. 웹툰으로 시작해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최근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된 <송곳>을 그린 인기있는 만화가입니다. 1987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최규석 작가는 “나나 내 가족들에게는 좀 큰 규모의 데모일 뿐이었던 것 같다.”고 6월 민주항쟁을 기억합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룬 책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 알았을 뿐입니다.


최 작가는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선뜻 수락하지 못하고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깊이 있게 체험한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만화가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어 학습 보조교재로 사용된다는 점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지만 수락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새로운 정부와 함께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2017년 촛불 시민의 일원인 저도 1987년 시민들의 목소리에 공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삶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 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작가의 말 중에서)


최규석 작가의 말은 17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민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줍니다. 부정한 대표자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대표자를 뽑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조금씩 더 가까이 나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이 피흘리며 얻어낸 것을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들이 낚아채갔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불의한 권력이 보통사람들을 민주투사로 만들다


이 책에선 ‘영호’라는 청년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반공소년이었던 영호. 장남으로 가족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영호의 형 영진. 보도 연맹 사건으로 엄마를 잃고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던 아픈 역사를 살았던 영호의 어머니. 공부를 잘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영호의 누나. 반공소년이었던 막내 아들 영호를 자랑스러워하던 영호의 아버지.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네 가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십 년을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보내왔던 대한민국의 보통 가족들의 삶이 영호네 가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꼬마 반공소년 영호는 성장해 대학생이 되어 소위 운동권 학생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무자비했던 군사정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일삼았고, 이에 맞서 저항하는 학생들도 돌과 화염병 등으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영호도 여느 대학생들처럼 당시의 불의한 권력과 그들의 폭력에 맞서는 편에 서게 됩니다. 어느 날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부는 대규모로 학생들을 잡아들입니다. 영호도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운동권 학생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시 정부는 수많은 학생들을 잡아들여 잔혹하게 고문을 했습니다. 그리곤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꾸며 다양한 조작 사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에도 여전히 그렇기는 하지만 80년대엔 북한 혹은 공산당 이야기만 꺼내면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한 사람들은 치를 떨며 이성을 잃곤 했습니다. 전두환 군부는 이런 점을 이용해 저항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고자 했습니다.


자식이 명확한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부모와 가족들이 나서서 싸우며 당시 정권에 항의하는 적극적인 시위자가 되기도 하고,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하에서 약화되기만 하는 학생운동 조직을 다시 세우기 위해 게릴라식 시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폭력을 앞세운 시위 진압 세력을 넘어서는 것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지리하게 이어지는 학생운동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며 동력을 잃어가는 듯 했습니다.


물도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투쟁 정도로 여겨졌던 반독재 운동이 전국민적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되는데 도화선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한 줄로 대표되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조작이었습니다. 권력에 의한 살인 사건을 숨기고 넘어가려는 정권에 국민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 후 감옥에 있는 영호 학생과 다른 선배 수감자의 대화가 당시 투쟁하던 시민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줍니다.


“영호 학생. 그렇게 슬퍼만 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슬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뭐가 두렵단 말인가?”


“끝이 없을 거 같아서요. 처음 그 사람들 만났을. 때는 그 열정에 반해서, 그런 사람들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직이 깨지고 사람들이 잡혀가고 죽어갈 때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 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나. 허허허.”(91-93쪽)


백지 한장을 얻은 촛불 시민들, 무엇을 그려나갈까?


1987년 초부터 서서히 온도가 오르던 대한민국 시민들도 87년 4월 전두환의 개헌 논의 중단 및 후계자 지명계획 발표,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 성명 발표 및 학생들의 비폭력 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경찰들의 진압 등을 통해 결국 100도씨에 이르며 끓어올랐습니다. 끊이지 않는 평화 시위로 결국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를 내세우고 항복을 선언합니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얻은 것을 최규석 작가는 ‘소중한 백지 한장’에 비유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빼앗긴 젊은과 생명들. 우리는 그것의 댓가로 소중한 백지 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장이었습니다.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눈을 팔면 누군가가 낙서를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169-170쪽)


2017년 촛불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백지 한장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시민들 공통의 염원을 담아 얻은 이 백지 한장에 2017년 그리고 2018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은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내편 네편을 가르고 자기편을 늘려 머릿수 싸움만을 해오던 대리 정치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삶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참여정치로 나아가는 밑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래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일상적인 먹을 것과 탈 것에서부터 학업, 결혼, 직장과 같은 중요한 진로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선택을 합니다. 내 생각대로,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선택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나 가까운 주위 사람들의 기대, 당연히 해야만 할 것 같은 사회적 압박 등에 떠밀려 원치 않는 길에 들어서기도 합니다.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하는 직장 혹은 조직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나를 고용한 사람이나 조직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처음 몇 번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거부가 계속되면 결국 고용된 곳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직에 속해 있는 많은 이들은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상례라는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불쑥 불쑥 나타나곤 합니다. 이와 같은 저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이기는 하지만 왠지 실제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이 사람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바로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허먼 멜빌이 쓴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바틀비입니다. 필경사는 복사기가 없던 시절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용주의 지시를 거부하는 이상한 직원


소설 속 화자는 부자들을 상대로 그리 까다롭지 않은 일을 하며 사는 평범한 변호사입니다. 그는 자신이 고용했던 필사원들 중 가장 ‘이상했던’ 사람을 소개하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변호사는 이미 세 명의 필사원을 두고 있었는데 법원의 서기직을 맡게 되면서 업무가 늘어나 또 한 명의 필사원을 고용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모습을 한 바틀비였습니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을 필사했다. 마치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했다. 소화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법도 없었다. 낮에는 햇빛 아래,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계속 필사했다. 그가 쾌활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27쪽)


이렇게 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변호사는 필사한 문서를 검증하는 업무를 처음으로 바틀비에게 지시합니다. 하지만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매우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고용주인 변호사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변호사는 바틀비의 태도에 놀라 당황하다 다시 한번 지시하지만 이 필사원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똑같은 대답만 내뱉고는 하던 일만 계속합니다. 제가 소설 속 변호사였다면 당장 그를 붙들고 이유를 확인한 후 타당하지 않다면 아마도 그를 해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틀비의 태도에 “최소한의 불안, 분노, 성급함, 무례함”이 없었기에 변호사는 잠시 물러나 어떻게 할 지 생각합니다. 그러다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이 문제는 잠시 접어둡니다. 며칠 뒤 바틀비가 필사한 문서들을 검증하기 위해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다시금 요청합니다. 그러나 바틀비의 대답은 이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는 이유는 말하지 않은채 “상례와 상식에 의거한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바틀비의 행동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동료 필사원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죠.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38쪽)


변호사는 자신이 고용한 바틀비의 태도에 전에 없이 당혹스러웠지만 바틀비의 “안정성, 어떤 유흥도 즐기지 않는 점, 부단한 근면, 놀라운 침묵,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는 몸가짐”에 마음을 풀고 맙니다. 심지어 무단으로 자신의 사무실에 기거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바틀비의 “온순한 뻔뻔함”에 두손을 듭니다. 변호사는 바틀비라는 기행적 인물에게 인간으로서의 유대감과 연민을 느끼며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관심에도 바틀비는 역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변호사의 어떤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변호사와 다른 동료들은 바틀비의 이상한 행동을 보며 불만스러워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바틀비의 말투를 닮아갑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택한다’라는 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놀랍니다.


거부의 태도는 어떠하면 좋을까?


일반적인 직장에서 바틀비와 같은 기행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실제라면 당장 쫓겨날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항 혹은 거부하는 태도에 대해선 배워볼 만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고용주와 동료들도 영향을 받았던 바틀비의 ‘안 하는 편을 택한다’라는 말에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선택의 자기 주도권을 표현한다고 해야할까요.


저항할 것인지 순응할 것인지도 결국엔 자신의 선택입니다. ‘권력자의 외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다’라는 말을 기업이나 행정기관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지시에 맞섰을 때 입게될 피해가 두려울 수도 있고, 아니면 권력자의 요구 수용으로 얻게될 이익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항하기로 ‘택했다’면 바틀비의 ‘온순한 뻔뻔함’, ‘단호하되 성급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은’ 태도를 배워봄직 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바틀비의 고용주였던 변호사가 피고용인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무실을 떠나라는 고용주의 통첩에도 바틀비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변호사는 응당 취해야 할 조치를 한 것임에도 자신의 처사를 꺼림직해 할 정도로 바틀비의 태도는 자신의 선택에 초첨이 맞춰져 있습니다.


“내 처사는 변함없이 분별 있는 듯했지만, 이론적으로만 그런 것 같았다. 실제로 그 결과가 어떨지, 그것이 문제였다. 바틀비가 떠나리라고 가정한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가정은 결국 순전히 나 혼자 정한 것이며, 바틀비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핵심은,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가정을 내가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는 편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정보다는 선택과 관계있는 사람이었다.”(63쪽)


이 책을 옮긴 공진호님은 바틀비가 하는 말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게 아니다…어떤 행위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즉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이 두 가지를 긍정하는 것이다.” 조직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바틀비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돕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저처럼 바틀비의 입장에서 기존의 상식에 따르지 않겠다 거절하는 말씨와 태도를 보며 통찰을 얻을 수도 있겠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지시를 거부하는 부하직원을 둔 변호사 입장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혼자 읽기보다는 독서 모임 등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다양한 관점으로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기에 매우 적합한 소설입니다. 다음 번엔 변호사 입장에서 읽어보려 합니다.

레고 블럭을 가지고 무언가 만들어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레고 블럭은 어린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장난감 중 하나일 겁니다. 레고는 생활용품, 건축물, 자동차 등 특정한 카테고리의 제품에서부터 영화 등을 주제로 한 세트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자랑합니다. 레고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미리 정해진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도 난이도가 있어 재미있고,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나름의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진정한 레고의 묘미는 특정한 유형이 없이 거의 무한한 조합으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클래식 블럭에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저도 장난감 상자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블럭을 꺼내봅니다. 그렇지만 막상 뭘 만들려고 하면 막막합니다. 이리 저리 블럭을 끼워가며 모양을 만들어보지만 상점에서 보던 멋진 작품들과는 한참 동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생각하던 모양을 완성하고 나면 설명서를 따라서 만든 작품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 있습니다.


백지 혹은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뭔가를 쓰려고 할 때 느끼는 막막함이 기본 레고 블럭을 꺼내놨을 때와 비슷합니다. 이 막막함을 해소해 보고자 글쓰기 방법 혹은 기술을 알려주는 책들을 찾아 읽곤 합니다. 글쓰기 안내서들을 읽을 땐 책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글을 술술 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마치 특정한 테마가 있는 레고 블럭을 가지고 설명서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은 왠지 내것 같지가 않습니다.



뭔가 다른 글쓰기 안내서를 찾다가 기본형 레고 블럭 상자와 같은 책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존 워너커가 428명의 작가, 편집자, 에이전트, 출판계 종사자들이 했던 글쓰는 삶에 대한 조언들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표지를 보면 원고지 칸 같기도 하고 타일 조각 같기도 한데 책을 읽고 나니 레고 블럭과 더 비슷합니다.


이 책은 35개의 큰 블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물, 동료작가, 비평&비평가, 대화, 좌절, 술, 편집&편집자, 용기, 장르, 문법과 용법, 글감, 돈, 작가라는 직업의 위험, 표절, 플롯, 문학상, 과정, 홍보, 출판&출판사, 문장부호, 자질&자격, 독자, 독서, 원칙, 비결, 스타일, 성공&실패, 기법, 요령, 왜 쓰는가, 단어, 글 쓰는 습관, 작가의 벽, 작가의 삶, 조언. 이 블럭들은 여러 유명 작가들이 남긴 말들로 이루어진 수십 여 개의 작은 블럭들로 구성됩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을 위한 기본형 레고 블럭 시리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옮긴이 한유주님이 ‘글쓰기에 아무런 원칙이 없기에 글쓰는 사람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도 하지만 시작하지도 끝을 맺지도 못한 채 포기하기도 한다’고 쓴 것처럼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막막함’일 것입니다. 이 책은 테마가 있는 레고 제품처럼 글쓰기의 원칙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을 앞두고서도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본 레고 블럭을 다루듯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만년필로 쓰든, 워드프로세서로 쓰든, 글쓰기란 결국 방 안에 홀로 앉아 자신으로부터 쥐어 짜내는 것이다. 누구도 이 일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수많은 시도와 실패 속에서 도무지 글쓰기에 몰두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작가로 거듭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으며, 어느 순간 자기의심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이럴 때 필요한 건 스승들이다. 즉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 시, 희곡, 전기 등을 읽으며 글쓰기를 배우면 된다.”(13쪽)


엮은이 존 워너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남긴 말들 수백 건을 이 책에 모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버트런드 러셀, 스티븐 킹, 아이작 아시모프, 안톤 체호프, 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 괴테, 셰익스피어, 존 스타인벡, 줄리언 반스, 찰스 디킨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F. 스콧 피츠제럴드, T.S. 엘리엇 등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작가들에게서 글쓰기를 배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작가처럼 읽어야 한다. 보통의 독자는 재미나 정보를 구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책을 읽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목적 외에도 기법과 기교, 수완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중략) 어떻게 보면 저주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는 결코 책 속에 푹 빠져들지 못한다. 텍스트에 굴복하기는커녕 불신을 완전히 거두는 법이 없다. 작가는 언제나, 읽고 있을 때조차도 늘, 관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3-14쪽)


존 워너커는 작가(writer)와 저자(author)를 구분합니다. 저자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말하지만 작가는 ‘자기 자신을 쥐어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예술가’이자 ‘그 사람 자신’입니다. 그는 또 ‘모든 사람이 저자가 될 수는 있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기에 작가는 희소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책을 읽을 때에도 관찰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책을 읽을 때 재미, 정보, 위안을 넘어서 글쓰기를 배우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네요.


글을 쓰는 사람 혹은 글쓰는 것과 관련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언제나 손에 잡히는 가까운 거리에 두고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특히 글을 쓰는 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거나 글을 쓰다 높다란 장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 가볍게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다만, 40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조언들이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생각이 많은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는 ‘대화 쓰는 법 1, 2, 3..’, ‘명료하게 쓰는 법’, ‘탐정 소설을 위한 십계명’ 등과 같이 글쓰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에서부터 ‘대개의 경우 시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란…가급적 적게 쓰는 것이다’, ‘경험을 들이마시고 시를 내쉬어라’ 등의 격언 같은 조언까지 다양합니다. 때문에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서부터 SNS 등에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겐 인물, 대화, 장르 편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출판을 앞둔 작가라면 비평&비평가, 편집&편집자, 홍보, 출판&출판사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읽어보면 좋습니다.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면 좌절, 용기, 장르, 돈, 작가라는 직업의 위험, 표절, 독자, 왜 쓰는가, 글쓰는 습관, 작가의 삶, 조언 편에 무게를 두고 읽어보시기를. 마지막으로 문법&용법, 글감, 플롯, 과정, 문장 부호, 독서, 비결, 스타일, 기법, 요령, 단어, 작가의 벽 편에 있는 조언들에서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기술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어서 찾아 읽던 정형화된 글쓰기 설명서 혹은 안내서들에 지루함을 느낀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을 엮은이도 썼지만 이 책이 글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고라 인정받는 작가들이 남긴 한마디 한마디를 읽어가면서 옮긴이의 바램처럼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마다, 인물이 지루하게 보일 때마다 용기를 얻어 자신만의 글을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작가
마크 맨슨 지음
출판
갤리온
발매
2017.10.27.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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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책도 읽고, 여행도 하고, 직업도 바꿔봅니다. 부단한 노력끝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면 그만한 행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행운을 누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엄기호 작가는 <공부공부>라는 책에서 우리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자기계발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하며 능력을 쌓고 있지만 계발한다는 자기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무얼 계발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계발만 하고 있으니, 그 계발은 자기 자신을 파헤치는 삽질에 불과하다.”<공부공부>(14쪽)


“때로는 사람들은 ‘하는 것’이 너무 많아 그 ‘하는 것’에서 ‘겪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체험의 과잉/경험의 빈곤에 시달린다.”<공부공부>(188쪽)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지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한 채 표류하듯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는 젊은이가 한 명 있습니다. 마크 맨슨이라는 젊은 작가인데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삶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에 정리했습니다.


“인생의 목적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뭘 포기해야 하는지’모른다는 거다.(중략) 어떤 부족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인생을 ‘지옥의 무한궤도’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10-11쪽)


삶에 대한 통찰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생각들에서 삶의 지혜가 묻어납니다.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미국의 한 젊은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에 몰두하게 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극복하면 성공한다는 터무니 없는 긍정성을 갖도록 자극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도 흙수저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분투해 성공하는 이야기에 온통 집중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소설 미디어 기업들은 ‘더 나은 직업, 더 멋진 차와 집, 더 멋진 삶’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저자가 말하듯 우리는 모든 것들에 항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미디어 속 세상에는 행복이 넘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집안에 틀어박혀 고양이 오줌이 묻은 모래나 갈아주면서’ 내가 속한 현실은 시궁창이라 생각한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소셜 미디어의 뉴스피드를 보는 제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 끄기’가 꼭 필요한 시대


도저히 집중을 하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신경을 끄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쓰느라 몸부림 치며 살아간다’라는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매 순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세상 모든 걱정을 하고 있는 제게도 신경 끄기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신경 끄기란 세상 모든 것에 무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자신의 가치관을 정교하게 다듬은 후 이것에 기초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해야 합니다. 저자는 중요한 것을 하는 데 마주치는 역경들에 신경을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문제는 항상 있음을 인정하고 이 문제들에 너무 신경을 써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단, 이 때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회가 보여주는 성공스토리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평범함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그걸 받아들이면 뭔가를 성취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해서 별 볼일 없이 살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61-62쪽)


이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세상이 평범한 삶의 가치를 높여 쳐주지 않는 것 같기에 뭔가 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듯 ‘내 인생 대부분이 지루하고 평범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와 같은 자세를 가지려고 합니다. 저자는 보통의 자기계발서들에서 말하는 ‘너는 특별해’, ‘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라는 메시지 대신에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평범한 존재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평가나 거창한 기대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한 삶의 근본이 되는 경험을 깊이 음미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소소한 우정을 나눈다거나, 무언가를 창작한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거나, 좋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는 일 등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63쪽)


“최첨단 기술과 매스미디어 마케팅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것이 범람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더 못났다고 느끼게 됐다. 그리고 주목받거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더 극단적이고 더 근본적으로 행동하고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71쪽)


이를 위해 저자는 세상이 주입하는 ‘엉터리 가치’들인 쾌락, 물질적 성공, 나는 다 안다는 태도, 무한 긍정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가치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물론 이것이 인생의 목적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이와 같이 다섯 가지 가치를 정한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어떻게 가르고 선택할 것인지 정해보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이라는 건 곧 더 나은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며 더 나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문제를 다뤄야 삶이 나아진다. 그렇다면 좋은 가치와 나쁜 가치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좋은 가치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사회에 이로우며 직접 통제할 수 있다. 나쁜 가치는 미신적이고 사회에 해로우며 직접 통제할 수 없다.”(109쪽)


신경 써야 할 다섯 가지 가치


마크 맨슨은 이 다섯 가지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결국 삶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진리가 아닐까요.


자신의 삶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 것을 저자는 제안합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하라는 조언입니다. 또한 ‘너 자신을 믿으라’는, ‘가슴이 시키는대로 해’라는 달콤한 말들 대신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점검하고 자신의 믿음과 가정에서 틀린 것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성장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저자는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대신 자유와 자율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기가 생기지 않을 땐 ‘뭐라도 해’라는 은사의 조언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동기가 있어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행동이 동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경험했습니다. 이 부분에 공감합니다. 동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때로는 소모적일 때가 많습니다.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머뭇거릴 때 ‘뭐라도 해’라는 조언은 적절합니다.


“뭔가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자신을 거기에 제한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에는 수준이 있다. 수준 높은 의미와 즐거움에 닿으려면, 하나의 관계, 기술, 직업에 수십 년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일에 수십 년을 바치려면, 나머지 선택지를 거부해야 한다.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가치들을 거부해야 한다.”(197쪽)


이 말에도 우리가 어떤 것에 신경을 꺼야 할 지 나와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성공담을 끊임 없이 보여주지만 정작 그것에 이르는데 필요한 수천 시간의 단조로운 연습과 지루함은 보여주지 않기에 우리는 결과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선택하는 긴 과정과 그것을 살아내는 지루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이 말하듯 이 책의 저자도 ‘몰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선택해 집중하고 정신 사납게 하는 온갖 대안을 거부함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밝힙니다. ‘몰입하면 결정을 내리기 쉬워지고 좋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쯤은 몰입의 경험을 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생각할 때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자신이 결국 소멸한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덧없고 피상적인 엉터리 가치들을 삶에서 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다른 모든 가치와 결정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의미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빛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걸 하찮게 느낄 것이며, 모든 경험을 제멋대로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준과 가치가 갑자기 무의미해질 것이다.”(222쪽)


<신경 끄기의 기술>은 미국의 한 젊은이가 겪은 인생 경험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을 다른 사회에 속한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들로 변환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저자가 제안한 ‘인생에 대한 강한 책임감’,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 ‘선택과 집중’, ‘죽음을 생각하기’는 삶을 살아가는 데 물어봄직한 질문들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기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 만나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신경 쓰이는 일들이 그득한 연말입니다. 신경쓰이는 온갖 일들에 저자가 말하듯 ‘신경을 끄고’ 잠잠히 제 삶과 가치들을 생각해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기꺼이 투쟁할 수 있는가?

미래가 원하는 아이 

작가
문석현
출판
메디치미디어
발매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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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세간엔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있고, 수고스러운 노동은 로봇들에게 맡기고 만족스런 자유 시간을 갖자는 낙관적 제안도 있습니다. 두 쪽의 주장엔 나름의 근거와 논리가 있기에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게 될 자녀들을 염려하며 벌써부터 불안해 합니다.

짧게는 다음 해에 유행할 트렌드에 대한 전망부터 길게는 30-40년 후 미래 예측에 이르기까지 미래 사회를 다룬 책들도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런 전망에는 많은 가정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 예측 도서들을 읽는다고 해도 앞날에 대한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까지 있었던 사회적 변화 양상을 근거로 가장 그럴 법한 사회를 추측하는 것 뿐입니다.

다른 분야보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른 소프트웨어 업계에 있으면서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최전선에서 체험했던 한 아빠도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데이터경영연구소 소장인 문석현 박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의 변화를 바탕으로 <미래가 원하는 아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인터넷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업계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숨막힐듯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요즘의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 지 저자가 생각했던 사항들을 다른 부모들과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정도의 책입니다. 딱딱한 느낌의 ‘미래 전망 보고서’류의 책들과는 달리 최근의 변화상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직업의 변화상, 미래를 위한 교육, 미래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등의 주제들을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하지만 저자가 미래 직업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꽤 냉정한 편입니다. 저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과 실패가 단기간 내에 명확히 구분되는 분야에 있었던 만큼 직업의 양극화, 일당백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성 향상 도구, 승자독식인 혹독한 경쟁 등 세상은 지금보다 더 냉험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 도구 활용 능력,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능력, 자율성과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 등을 키울 것을 제안합니다.

꿈 속을 날아다니는 듯한 마냥 밝은 미래 전망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미래 직업세계에 대한 저자의 예상은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선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냉혹한 미래 직업 세계를 대비하기 위한 인공지능 전문가의 조언치고는 막연하고 진부한 느낌이어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말 그대로 예측해보는 것이기에 그리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조언이기에 저자의 제안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에서와 같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저 역시 공학/기술분야에 종사하고 있기에 기술발전에 관심을 가지라는 저자의 제안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예를 든 드론, 3D프린터, 생물유전자 조작 등의 기술은 이미 실용화에 접어든 것들이어서 미래 기술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느낌입니다. 차라리 저자의 전문 분야인 인공지능과 데이터 사이언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했으면 보다 유익했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저자의 제안에 공감하는 부분은 과학을 공부하고 체험해보라는 것입니다. 과학을 공부하면 좀 더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에 과학을 모르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가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꼭 과학자나 공학자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공학도로 인생 절반을 살아온 저 역시 자녀들에겐 상식적인 선에서라도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알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미래가 원하는 아이>라는 책 제목과 ‘인공지능 박사 아빠가 말하는 미래의 일과 행복’이라는 부제목을 보고 너무 큰 기대를 한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주된 역할을 하게 될 좀 더 구체적인 미래 전망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육시스템의 문제, 책의 중요성, 말하기와 글쓰기, 영어와 중국어 습득, 실패에 대한 태도, 부단한 연습, 다양성의 추구 등의 이야기거리는 너무 일반적인 내용들이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혁명은 계속될 것이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기술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계와 알고리즘이 기존에 사람들이 하던 일들을 대체하게 될 것도 자명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이와 같은 미래 세계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갈 수 있다면 좋겠지요.

미래를 바라보는 현실적 시각에 비해 이 책의 중/후반부에서 저자가 하는 제안들에선 교과서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야를 넓히는 기회로서 과학과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갖게 하자는 부분에 있어선 매우 공감했지만, 인공지능 및 데이터 전문가로서 알고리즘이 가진 한계나 사람이 보다 잘 할 수 있는 일,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입니다.

아내 가뭄 

작가
애너벨 크랩, 정희진
출판
동양북스
발매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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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 공고]

 

- 담당직무: 생기 넘치지만 종종 정신없기도 한 환경에서 활달한 소규모 팀 이끌기

 

- 팀원성향: 변덕이 심하고 옹졸하기도 하며 대놓고 반항을 하는 경향이 있음

 

- 지원자 요건

1.참을성

2.청소, 세탁, 학습지도, 유지보수, 온갖것 조달업무, 안전/보건, 작업치료, 영양, 도덕적 지침과 상담, 교통편의 제공, 기술교육, 팀 내 인적 자원 관리, 아웃소싱, 멘토링, 중재, 교육과 위생 책임

3.탁월한 운동 조절 능력과 침착한 성격 필수

4.기초적 가정용품으로 10분 안에 그럴듯한 배트맨 의상 만들 수 있는 능력

 

- 참고사항

1.반복 업무를 해야 할 때가 많음

2.정식 업무 평가는 없지만 절망적 순간에 지원자가 정기적으로 자체 평가를 할 수도 있음

 

- 급여: 없음

 

이 구인공고에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합니다. 여성이 거의 대다수인 ‘아내’들입니다. 호주의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은 책 <아내가뭄>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의 원인이 가사 노동 불평등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 구인공고와 같은 일을 해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남성들이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다양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보여줍니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이는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공통적인 경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양성평등 혁명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주로 ‘유급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기업의 계산 장부 한쪽에서만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에게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만약 두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40쪽)

 

성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일터로 끌어들여 주류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 아니라 남성을 일터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애너벨 크랩이 썼듯이 지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58쪽) 모두가 패자인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가정 내 노동 세계에 남성들이 진입하지 않았기(혹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남성들에겐 가사 노동을 권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선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봅니다. 가족을 돌보려는 남성들은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 방법의 관점을 여성의 사회진출에서 남성의 가정 진입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주의 남성들이 결혼 프리미엄을 누려왔다고 했는데 지구 반대편에 살아가는 저 역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결혼한 남자를 더 능력있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아내가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면서 남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낳아주면서 남자들의 노동 능력을 향상시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로 남자들이 유급 노동을, 여자들이 무급 노동을 담당한다. 그래서 남편들은 일터에서 더욱 잘나가게 되고 지루하고 고된 그 모든 허드렛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깔끔하게 정리된 가정에서 영양가 높은 음식, 깨끗한 옷, 안정감과 목표 의식, 아이들, 엘리베이터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상사와 무리 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 등을 모조리 얻는다. 그동안 이러한 합의를 통해 밥벌이에 나설 필요가 없어진 아내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예회가 오늘 밤인지 다음 주인지 알아두고, 우유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등 무급 노동에 능숙해진다.”(175쪽)

 

우리는 은연 중에 남자와 여자가 각각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여성스러운 일, 남성스러운 일’ 등에 대한 편견, 여성의 최우선 순위는 집이라는 편견,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는 게 더 낫다는 편견 등을 꼬집습니다. 이와 같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한다는 식의 관습적인 행동 패턴은 남녀 모두를 괴롭힌다. (중략) 일반적으로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혹시 여성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의심이 든다면, 텔레비전 광고를 한번 보라. 바닥 세제, 화장실용 세제, 유리창용 세제, 지퍼백, 기저귀, 아기용 물티슈, 분유, 식빵 광고에 거시기가 달린 사람이 나오던가?”

 

“그런데 여자들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부분 여자 잘못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거나 집이 더러우면, 부주의하다면서 여성을 맹비난한다. 여성과 남성이 청결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12쪽)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가사 노동에 조금이나마 참여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내의 높은 기준을 언급하며 불평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집안일을 주로 하게 되는 아내의 기준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에게 기준을 맞춰달라는 요구가 아내에겐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자가 육아를 더 잘한다? 여자가 아이를 기르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그래서 ‘여자가 육아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도 편견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도 그런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여자가 혹은 엄마가 육아를 더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는다”, “여성이 능력치를 쌓을 기회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다.”는 저자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빠를 육아 젬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의 제도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노르웨이는 1993년 표준 유급 육아휴식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만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도록 법을 정했다. 이 제도는 부모기 초기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생계부양자라는 기존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노르웨이는 재정적 혜택을 ‘안쓰면 소멸하는’ 식으로 바꿔서 휴직을 하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보게 한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몇 주 동안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 충동과 실천하는 아버지 노릇이 대개의 경우처럼 충돌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257-258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여성들에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은 가정에서의 역할을 감당할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위치로 갈수록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만큼 늘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책의 주된 주장과 같이 이젠 남자들이 변화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러려면 남성들도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느꼈던 혼란스러움 혹은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요즘의 남자들은 가족을 보호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는 구시대의 역할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강할 때는 강해야 하는 요구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남자들은 저자가 제안하는 것과 같이 “삶의 짜임새를 바꾸고 성공이란 무엇이며, 좋은 아버지란 무엇인지, 좋은 노동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가늠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지도”(403쪽) 모릅니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저자의 주장을 기초로 남자들의 논의와 실천이 활발해지는 것을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거다. 우리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일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고민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수년 동안 여성을 리더의 자리로 올리려고 할당제니 차별 철폐 조처니 온갖 보조적인 수단을 두고 왈가왈부했지만, 그동안 등식의 나머지 반은 간과했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열심히 독려할 뿐, 남성에게 가끔 뒤로 빠져도 괜찮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남성들(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직장 세계 전체를 얽매고 있는 남성에 대한 기대감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있는)이 아마도 변화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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