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Alison Wood Brooks과 Leslie K. Joh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글(2018년 5-6월호)에서 질문의 놀라운 힘을 이야기한다. 질문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직장인들과 그들의 리더들이 곱씹어 보며 읽으면 좋을 글이다.]

Alison Wood Brooks(하버드 경영대학원 조교수, MBA에서 협상 가르침) and Leslie K. John(하버드 경영대학원 조교수, 경영, The surprising power of questions, HBR 2018. 5-6월호

고위 임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요청하느라 하루를 보낸다. 팀 리더에게 현재 상황을 요청하거나 협상을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는 등의 일이다. 어떻게 질문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은 검사, 기자, 의사들과는 달리 고위 임원들은 질문하는 것이 연마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대화를 보다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질문은 조직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질문은 배움과 아이디어 교환이 일어나게 하고 혁신과 성과 향상에 연료를 공급하고 팀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게 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위험요소들을 발견함으로써 경영상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질문하는 것이 쉽다. 타고난 호기심, 감성 지능,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적인 질문들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질문하지도 않을 뿐더러 적절한 방식으로 질문하지도 못한다.

질문을 하는 데 있어 좋은 소식은 질문을 하다보면 감성 지능이 길러지고 그것은 또 다시 우리가 좋은 질문자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질문의 틀을 어떻게 짜고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대화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질문의 형식, 어조, 차례, 구조를 어떻게 선택할 지 조직의 유익을 위해 공유할 정보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안내하고자 한다.

[묻지 않으면 얻지도 못한다]

데일 카네기는 1936년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에서 “경청자가 되라.”고 조언했다. “질문을 하라.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즐길 것이다.”고도 했다. 80년 이상이 흘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네기의 현명한 조언에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충분히 물어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터뷰, 첫 데이트, 업무회의 등에서 대화를 한 후 가장 많이 하는 불평은 “내게 더 많은 질문을 하길 바랬는데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질문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이다.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까? 이유는 많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스토리,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질문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혹은 무심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질문에 신경쓰지 않거나 그들이 들어왔던 대답들로 인해 별 기대가 없을 수도 있다. 자신의 지식을 굳게 믿고 있어서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잘못된 질문을 해서 무례하거나 능력없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걱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들이 적절한 질문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문장을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로 더 많이 끝냈을 것이다.

1970년대 연구들에선 사람들이 배움을 위한 정보 교환과 관계 맺기를 위한 인상관리를 위해 대화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질문을 통해 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버드 연구자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일상적인 대화와 온라인 채팅 대화를 면밀히 분석했다. 이 실험에서 참여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엔 15분 동안 최소 9개의 질문을 하도록 요청했고 다른 그룹엔 15분 동안 4개 이하의 질문을 하도록 했다. 온라인 채팅에서 많은 질문을 하라고 요청받은 사람들이 대화 상대에 더 호감을 느꼈고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스피드 데이트의 경우 더 많은 질문을 한 사람들이 상대방과 두 번째 데이트를 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질문을 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에 반하는 상황에서도 질문은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통은 면접 때 채용 후보자들은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채용 면접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도하게 자신을 홍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채용 후보자들은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서 면접관, 조직, 업무 등에 관해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런 물음들은 면접관이 보다 집중하게 하고 면접 대상자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면접 후보자에게 있어 “제가 물어봐야 하는 걸 물어보지 않은 게 있나요?”와 같은 질문은 능숙함의 신호가 될 수 있고 면접관과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으며, 채용되는 자리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질문하는 것이 배움을 얻게 하고 개인간의 결속을 강화한다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몇 번의 질문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있지만 질문과 호감의 관계를 직감하지는 못한다. 혼자서 대화를 하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읽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질문이 대화 당사자들 사이의 우호적 느낌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더 나은 질문자가 되는 첫 단계는 단순하게 질문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물론 질문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대화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형식, 어조, 순서, 구조 등도 중요하다.

수업시간에 대화하는 연습으로 한 그룹의 학생들에겐 가능하면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그룹엔 가능한 많은 질문을 하라고 한 후 대화를 진행했다. 두 사람 다 가능한 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상호반응이 있고, 즐거울 수 있고, 혹은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둘 다 질문을 많이하는 경우 너무 많은 질문도 대화를 부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질문을 많이 하라는 학생과 질문을 가능한 하지 말라는 학생이 만난 경우엔 혼합된 경험을 말했다. 어떤 경우엔 질문자가 자신의 대화상대자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되고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귀기울여 듣는 느낌을 받아 둘은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경우엔 대화참여자 중 한 명은 자신의 역할에 불편해하거나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할 지 확신하지 못하기도 해서 대화가 의문부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질문의 힘과 효능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논의가 협력적인지(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함께 무엇인가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경쟁적인지(서로에게서 민감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지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지), 혹은 둘 다 인지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후속 질문을 활용

모든 질문이 동일한 것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네 가지 유형의 질문이 있다. 도입 질문(어떻게 지내?), 거울 질문(응 잘 지내. 너는?), 화제 전환 질문(주제를 바꾸는 질문), 후속 질문(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하는 질문). 각 유형이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후속 질문은 특별한 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당신의 대화상대자에게 당신이 잘 듣고 있고 관심이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기 원한다는 신호를 준다. 많은 후속질문들을 요청하는 상대방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경청받는다 느끼는 경향이 있다.

후속질문의 예기치 않은 유익은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이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대화상대자에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질문 유형들보다 후속질문을 이용해 질문을 많이 하라고 요청받았던 사람들의 경우 딱히 교육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개방형(제약없는) 질문을 유지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심문받는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또 어떤 질문들은 대답하는 사람에게 네 혹은 아니오를 억지로 요구하게 하기도 한다. 개방형 질문은 이러한 부작용을 없앨 수 있고 특히 정보를 얻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개방형 질문은 혁신의 샘물과도 같다. 이는 종종 이전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숨겨진, 예기치 않은 답을 찾게 하곤 한다.

설문조사를 구성할 때 응답자들의 선택지를 좁히게 될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은 매우 많다. 조건이 붙은 질문들은 편견이나 조작을 불러올 수 있다. “인생을 준비하는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선택지가 주어진 경우에 부모들은 60%가 “아이들 자신이다”라는 대답을 선택했다. 그런데 동일한 질문을 선택지 없이 물었을 땐 이렇게 대답한 부모가 단 5%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개방형 질문이 항상 최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민감한 협상을 하거나 마음속에 자신들의 카드를 숨겨두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경우 개방형 질문은 필요한 것을 누락시키게 하는 너무 많은 재량권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적절히 고안된 제약형 질문이 더 나을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낙관적 가정(이 장비는 잘 작동되죠, 그죠?)보다는 비관적 가정(이 사업은 곧 새로운 장비가 필요하게 될 거에요, 맞나요?)에 대해 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때는 알아내고 싶은 정보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서 아무리 잘 준비된 질문이라 할지라도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Alessandro Acquisti와 수행한 연구에서 Leslie는 세금환급을 속이거나 술취한 친구가 운전하게 놔두는 등과 같은 반사회적 행동의 윤리성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또 다른 임무 하에서 다뤄지는 민감한 정보에 대한 요청에는 기꺼이 말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사회적 행동을 한 적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따라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윤리성을 평가하도록 요청받았다. 이 전략이 조직적 수준에서 유용한 것으로 증명이 되기는 했지만 이것을 이용해 제약사항들을 정할 수 있다. 관리자들이 직원들의 급여와 같은 민감한 정보들을 직접 묻는 것보다는 설문조사를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사람들이 가지게 되면 신뢰를 잃어 나중에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가능성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일터에서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적절한 순서로 구성한다

질문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순서로 구성해야 한다. 긴장이 흐르는 경우 질문이 사회적으로 좀 이상한 경우라도 강한 질문을 먼저하는 것이 협상당사자를 좀더 개방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Leslie는 거슬리는 정도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질문을 받을 때 사람들이 민감한 정보를 더 공개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먼저 질문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끔찍한 일을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나요?”라고 상당히 민감한 질문으로 시작한 후 “당신이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 있을 때 직장에 전화로 아프다고 한 적이 있나요?”와 같이 좀 덜 거슬리는 질문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좀더 쉽게 대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처음 질문이 너무 민감하게 되면 대답하는 사람이 공격적이 될 수 있다. 세심한 균형이 필요하다.

만약 목적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덜 민감한 질문에서 서서히 민감도를 높여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심리학자 Arthur Aron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짝을 지은 후 질문 목록을 제공했다. 처음엔 비교적 깊지 않은 질문에서 시작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뭐에요?”같은 좀 더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질문을 하도록 실험자들에게 요청했다. 대조군에게는 단순히 서로 대화하도록 했다. 실험군에 속한 사람들이 대조군보다 서로를 좀 더 좋아했다. 이 효과는 매우 강력해서 연구자들이 실험 참여자들의 결속감을 구축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친밀감 형성 도구로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화에 능한 사람들은 또한 대화에서 물어본 이전 질문이 다음 질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Southern California대학 Norbert Schwarz는 “당신 인생은 얼마나 만족스럽나요?”라고 물은 후 “결혼 생활에 어느 정도로 만족하나요?”라고 물으면 대답이 상당히 연관성있게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인생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결혼도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이 순서로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인생의 만족은 결혼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질문을 반대 순서로 했을 때는 잘문에 대한 대답이 서로 연관성이 적어졌다.

적절한 어조를 사용하라

사람들은 공식적인 어조보다는 편안한 어조로 질문을 받을때 좀 더 말하려고 한다. Leslie는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민감한 질문들을 만들어 온라인 설문조사를 요청했다. 한 그룹에게는 재밌고 심각하지 않은 웹사이트 화면을 제공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공식적인 느낌의 화면을 제공했다. 재밌는 화면에서 질문지에 대답을 한 사람들이 공식적 느낌의 화면에서 대답을 한 사람들보다 두 배 정도 더 민감한 정보들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대화에서 탈출구가 주어질 때 보다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대답을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면 결정한 것을 잘 바꾸지 않음에도 보다 개방적이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팀과 그룹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생산적이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든 쉽게 지워질 수 있고 판단이 유예되는 화이트보드 앞에선 사람들이 질문에 보다 솔직하게 된다. 물론 즉흥적인 접근이 부적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너무 공식적인 어조는 정보를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

그룹 역학에 주의를 기울이라

누군가와 일대일로 말하는지 그룹에서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대화의 역학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질문에 대답하려는 의지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그룹 구성원들은 또 다른 사람의 리드를 따르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Leslie는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부도 수표를 발행한 적이 있나요?”와 같은 재정과 “성인이 되어서 미성년자에게 성욕을 느낀적이 있나요?”와 같은 성에 관련된 민감한 질문들을 물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대답을 했다고 말했고 다른 그룹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대답했다고 들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27%나 더 민감한 질문에 대답을 했다. 회의나 그룹 대화에서 사람들이 입을 닫게 하는데는 몇 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그룹의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룹 역학은 질문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식되는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lison은 연구에서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질문 받는 것을 즐긴다는 것과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제3자 관점에서 같은 대화를 보게될 때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을 더 좋아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을 잘 내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화를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은 방어적이고, 얼버무리고, 불명확하게 보일 수 있지만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매력적이고 표현력있고 기억할만하게 보이는 것 같다.

[최고의 반응]

대화는 상대방과의 조화가 필요한 춤이다. 대화는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밀고당김이다. 질문을 하는 방식만으로도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정보가 공유되도록 할 수 있고, 대답하는 방식으로서도 마찬가지다.

물음에 답하려면 사생활과 투명함 사이의 중간 어디에 대답을 둘 것인가 선택이 필요하다.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하는가? 대답을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나 기꺼이 해야 하는가? 그리 좋지않은 사실을 드러낼 수 있거나 불리한 전략적 위치에 놓이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완전히 불투명한 것과 완전히 투명한 양 극단에는 유익과 위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실험과 배움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협상에서 민감한 정보(당신의 대안이 약하다는 사실과 같은)를 말하지 않으면 안전한 결과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투명성은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이다. 협상에서도 투명성은 가치를 창출하는 거래로 이끌 수도 있다.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한쪽에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지만 다른쪽에는 중요한 요소를 참여자들이 확인할 수도 있다.

비밀을 유지하는데에도 비용이 있다. 버지니아 대학 Julie Lane과 Dniel Wegner는 사회적 관계에서 뭔가를 숨기는 것은 비밀의 사고를 되풀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편 컬럼비아의 Michael Slepian 등은 연구에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지적으로 우리를 고갈시키고 집중하고 기억하는 능력에 방해가 되고 심지어 장기적으로 건강에까지 해를 입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조직적 맥락에서 사람들은 사생활 부분에선 실수를 범하고 투명성의 유익은 잘 알아보지 못하곤 한다. 동료가 새로운 회사로 옮기고 나서야 그들과 진정 결속되 있었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잘된 거래는 왜 계약서를 쓰고 긴장이 해소되고 협상자들이 자유로이 수다떨기 시작할 때 확인되는 것일까?

질문에 답하는 것의 유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공유하길 원하는 정보와 말하지 않고 싶은 정보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유할 것을 결정하기

공개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나 유형이 어떤 법칙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투명성은 결속을 유도하는 강력한 도구이가. Leslie는 한 연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터에서 질책받은 적이 있나요?”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대답하기를 거절하는 것이 덜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직관은 틀렸다.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두 후보자를 선택하라고 했을 땐 차분하게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비율이 90%였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개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기

물론 가슴속에 카드를 감추고 있는 것이 개인과 조직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우리는 협상 수업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려운 질문을 다루는 전략을 가르친다. 질문에 대한 답을 비켜가거나 혹은 원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기술은 공개하지 않는 게 더 나은 정보를 보호하는 데도 도움을 줄뿐 아니라 대화상대자와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Todd Rogers는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물음에 답하는 정치인과 비켜가는 정치인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어눌하게 대답하는 것보다는 달변으로 비켜가는 사람을 더 선호했다. 물론 사람들이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란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경우에 그렇다. 또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화제 전환 혹은 또 다른 질문이나 농담으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전환시키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결론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질문이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조직의 혁신은 새로운 정보를 기꺼이 찾으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질문과 사려깊은 대답은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조성하고 서로간의 관계와 신뢰를 공고히 하고 그룹이 발견을 추구하게 이끈다. 질문과 대답은 성과를 내는 문제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모든 질문의 샘은 기쁨을 위한 궁금증, 호기심, 그리고 역량이다. 대화의 마법은 각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전체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으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다. 삶에서든 일에서든 개인의 헌신과 동기가 유지되려면 질문과 대답의 변혁적 기쁨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출처: Alison Wood Brooks(하버드 경영대학원 조교수, MBA에서 협상 가르침) and Leslie K. John(하버드 경영대학원 조교수, 경영, The surprising power of questions, HBR 2018. 5-6월호

그해 봄

작가
박건웅
출판
보리
발매
2018.04.09.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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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선, 김용원, 송상진,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여정남, 서도원.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선 안되는 이름들입니다.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한 유신헌법 제정으로 반대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이 여덟 명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조서를 조작하고 결국엔 사형시켰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고 김종필이 국무총리로 있던 1975년 4월 9일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여덟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채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가는 구금되어 있는 기간 동안 피해자들을 가혹하게 고문했고,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재판도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박정희의 국가는 이렇듯 공공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게 했고, 이후 가족들조차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끈질기게 감시하고 괴롭혔습니다.

박건웅 작가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사형수 유가족들, 선후배 동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건을 <그해 봄>이라는 만화로 2018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전합니다. 이야기는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여덟 명의 피해자들의 삶과 당시 그들이 겪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스러운 진술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던 유가족들

고통스럽게 죽어간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던 유가족들의 한이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글로 표현된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한 번에 읽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 줄 읽고 멈추고 또 한 줄 읽고 멈추고를 반복하다 이내 책을 덮고 먹먹해진 가슴이 풀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넋을 떠나보낸 산송장처럼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햇빛을 보지 않고 어두운 방에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장대비 쏟아지듯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자던 나도 따라 울었습니다. 그러면 건넌방에선 큰 언니가 울고 부엌에선 작은 언니가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쳐 탈진한 어머니에게 물을 드리려고 밖으로 나가면 벌겋게 부은 눈의 작은 언니가 눈을 흘기며 물을 따라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흘겨보고 미워하며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마음 속의 증오와 절망, 혼까지 태워버릴 것 같은 분노를 서로에게 말고는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가 없었으니까요."(68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은 뒤 우홍선씨의 딸은 학교에서 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학교에선 마치 자신들의 부모가 죽은 듯 온 교실이 울음바다였고, 단체로 추모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사람의 죽음을 추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마음은 글로 전해읽는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우홍선)가 돌아가신 뒤 정신적 고통이란, 바로 내가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 한 귀퉁이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암세포와 같은 것입니다."(74쪽)

하재완씨의 아내가 겪었던 일 역시 독자들을 말할 수 없는 참담함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국가는 사건을 조작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국민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당시 모습을 상상하니 서글픔과 비참함이 밀려듭니다.

"동네 아이들이 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마을 앞 당산나무에 묶어 놓고 간첩이라고 죽여야 한다면서 장난감 총으로 총살시키는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난 치고는 너무나 지나친 그 장면을 동네 어른들이 지켜보면서 꾸중은커녕 구경하며 웃었다 하니 얼마나 기가 차고 비참했는지 모릅니다."(185쪽)

진실이 밝혀진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05년 12월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면 끝나는 것일까요? 명예는 회복되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여덟 명의 무고한 생명과 그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삶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국가가 자행했던 이 살인 사건을 대한민국 시민들 모두가 기억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작으나마 보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내 남편과 나를 유린했는데 세상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유신, 온갖 불법적인 만행은 잊고 온 국민이 보릿고개를 없애고 경제를 발전시켜 우리를 잘 살게 해 준 대통령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말하는 도예종씨 아내의 말에서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천해야 할 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박정희에 대한 모든 예우와 기념사업을 전부 폐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시절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한 폭력은 계속 있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책임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은 것처럼 이 무자비한 사법살인의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재판과 철저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도예종씨의 딸이 종로경찰서 정보과에 가서 항의하자 경찰들이 했던 대답이 더는 나오지 않는 국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적인 희생이지. 우리도 살기 위해서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뿐이야."(268쪽)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과 그 동조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했던 정황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정희 당시 살기 위해 시키는대로 사형 선고를 했던 판사들의 모습과 박근혜 정부 때 판사들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했던 판사들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은 불의한 권력 탄핵이후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한 번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살인의 책임자들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 국무총리, 민복기 대법원장, 황산덕 법무부 장관, 서종철 국방부 장관, 김치열 검찰총장,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이용택 중앙정보부 6국장, 윤종원 중앙정보부 수사팀장, 문호철 서울고등법원 검사.

1심 보통군법회의 판결 판사들: 박현식, 류병현, 박희동, 이희성, 강신탁, 신현수, 권종근, 신정철, 박천식
2심 고등군법회의 판사들: 이세호, 윤성민, 차규헌, 문영극, 박정근
3심 대법원 판사들: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한환진, 임창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홀로 반대의견 제출)


“사람 한 명을 키우는 건 사람 열 명을 죽이는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설경구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의 독백이다. 아마도 이 두가지를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난 성장해 가는 사람 한 두 명을 돌보는 중인데 아마도 사람 죽이는 일은 해보지 못할 것이니 저 말의 진의를 온전히 알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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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작가
헤르만 헤세
출판
뜨인돌
발매
2006.10.28.
평점

리뷰보기


원자들이 하나 하나 결합해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을 만듭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지식수준에서 확인한 바로는 세상 만물은 단 100여개의 기본 원소들이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조합인지에 따라 무기물이 되기도 하고 유기물이 되기도 합니다. 생명이 없는 기본 원소들의 결합으로 생명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세상. 이 신비를 매순간 알아채며 살아가진 못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연의 신비를 깨닫고 감탄하곤 합니다.


책의 세계도 비슷합니다. 따로 흩어져 있을 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자음과 모음들이 결합되어 글자가 되면 비로소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자연계의 원소와 같은 작은 기본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이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됩니다. 문장들은 문단이 되고 문단이 쌓여 글이 되고 책이 됩니다. 세상 만물과 같이 책들도 어느 하나 똑같지 않습니다. 만물이 이루어지는 신비에 놀라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책 세상의 신비를 깨닫고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다 나도 모르게 눈에 띈 헌책방에 들어섰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발길이 그쪽을 향했습니다.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책 무더기를 둘러보는데 책 한 권이 시야 전체를 차지합니다. 운명처럼.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이었습니다. 어릴 적 권장도서란 말에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힘겹게 읽었던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추억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요? 다른 책들은 둘러보지도 않고 이 책을 들고 책방을 나왔습니다.


헤르만 헤세라는 추억속 이름 하나와 독서라는 단어에 이끌려 선택한 헌 책. 책과 읽기, 쓰기, 도서목록 등에 대한 헤세의 짧은 생각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대목들에 공감해 에세이들 전체를 옮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서평기사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헤르만 헤세가 이야기한 것들을 우겨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와 공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과 독서법에 대하여


‘뭐든 읽으면 피가되고 살이 된다’며 책 읽기를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헤세는 책이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서란 “소중한 보물을 모으고 친구를 얻고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방편”이라고 정의합니다. 독서가 무조건 유익한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그 동안 책을 읽어왔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러니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정 도움도 안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 (중략)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11쪽)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잘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유명한 독서가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에서? 아니면 오랜 세월을 통해 위대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은 고전들? 책을 읽는다는 건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말하는 헤세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양서를 읽히고자 애쓰는 분들이 참고할 만합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누군가는 문학작품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느끼는 반면, 그런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고 감미로운 일임을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호메로스에서 시작해서 도스토예프스키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으며, 문학을 끼고 성장하여 나중에 철학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또 그 반대도 있으니, 길은 수백가지다.”(108-109쪽)


헤세는 특정한 추천도서 목록같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각자가 끌리고 수긍하고 아끼는, 그래서 좋아하게 되어 선택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이렇게 책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읽을까요? 이 물음에도 헤세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을 가지고 읽으라고 대답합니다. 책을 대하는 제 태도를 돌아보며 헤세의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저 시간이나 때우려고 읽는 사람은 좋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읽고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니, 읽기 전이나 후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빈곤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읽는 것은 흘러가거나 소실되지 않고, 그의 곁에 남고 그의 일부가 되어, 깊은 우정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리라.”(109쪽)


글쓰기와 작가, 그리고 비평가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게 됩니다. 아니면 최소한 글쓰기에 관심은 가지게 됩니다. 짧은 감상을 적는 메모에서 시작해 인터넷의 개인 공간에 조금 긴 글을 남기다가 서평쓰기로까지 독서는 글쓰기 그리고 비평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헤세는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글을 쓸 때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라는 헤세의 충고는 모든 작가들이 유념하면 좋을 말입니다.


독서인구가 계속 감소한다고들 하는데 책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되는 구조가 무너지면서 작가가 되는 길이 다양해진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젠 정말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인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라는 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헤세는 권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굳이 작가가 되려 하시는지요? 재능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작가를 꿈꾸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를 독창적이고 마음이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섬세한 감각과 정제된 정서의 소유자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덕목들은 작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갖출 수 있으며, 어정쩡한 문학적 재능 대신 그런 쪽으로 연마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또 혹시 어떻게 명성을 얻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라면, 작가보다는 배우가 되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58쪽)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명확히 알아가고 체험의 힘을 고양시키고 양심의 날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한은, 문학창작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장차 작가가 되건 안되건 상관없이 당신은 맑은 눈으로 깨어 있는 유용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하듯 그것이 당신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혹시문학을 감상하거나 창작함에 있어서 일말의 장애라도 감지되거나, 순수한 삶의 감정의 희석이라든지 허영심과 같은 빗나간 샛길로 빠질 유혹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럴 때는 문학을 일체 집어치우십시오.”(59쪽)


타고난 작가보다 타고난 비평가가 드물다고 합니다. 서평에도 일정 부분의 비평이 포함될 수 있으므로 헤세의 말에서 서평을 쓰는 이들도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와 허물없이 친숙해 오용하는 법이 없는” 진정한 비평가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서평을 읽는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더욱 풍요롭고 신명나는 삶을 향해


헤르만 헤세는 교양을 갖춘다는 것을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특정한 능력이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헤세가 제안하는 것처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우리 삶은 좀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헤세는 여러 민족들의 사상과 경험, 상징, 상상과 소망의 엄청난 보고인 세계문학을 탐구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택해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총제와 더불어 활발하게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118쪽)


하지만 이 과정을 억지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책에서 헤세는 자신이 마음껏 상상하는 세계문학 도서관을 그려보았습니다. 물론 그 도서 목록에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헤세는 반복해서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주장합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끌려서 작품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작품을 모른다고 창피해서 억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책의 세계에 들어와 한 권 한 권 읽은 지 10여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간간히 서평을 올린지도 2년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쓰는 활동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앞에 두고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꼭 읽어야만 한다는 책들에 손을 댔다가 덮어두곤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이 에세이집을 이제서야 만난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헤세의 말들을 통해 앞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헤세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독서의 세계로 한걸음 나아갑니다.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 행복과 교양을 위한 필독 도서목록 따위는 없다. 단지 각자 나름대로 만족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정량의 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책들을 서서히 찾아가는 것, 이 책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가급적 이 책들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늘 소유하여 조금씩 완전히 제것으로 삼는 것,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다.”(162-163쪽)

“문학과 예술 방면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못한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소박하되 넘치는 애정으로 독서생활을 가꾸어 나가며 삶의 기쁨과 내면의 가치를 키울 줄 아는 진지함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172쪽)




아... 샌프랜시스코

아주 짧은 시간 머문다는 건

그만큼 강렬하게 그립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면

더욱 간절해지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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