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작가
애슈턴 애플화이트
출판
시공사
발매
2016.12.1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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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이시네요.”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흐믓합니다. 우리는 왜 '젊다 혹은 젊어 보인다'는 말에 이렇게 반응할까요?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라는 책에서 애슈턴 애플화이트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 태도에 차별이 스며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애플화이트는 인간 사회에 인종차별, 성차별과 같이 연령차별(나이에 따른 차별)도 만연하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리고 나이에 따른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자고 촉구합니다. 저자 자신도 “나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막연한 불안'과 '속이 매스꺼워 죽을 것 같은 두려움' 사이의 무언가가 나를 잠식해온다”(8쪽)라며 연령차별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하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아직은 젊은 저도 나이드는 것을 생각하면 구부정해진 허리, 깊게 패인 주름살, 얼굴에 핀 검버섯 등이 먼저 떠오릅니다. 지하철역 계단에서 힘겨워하는 노인들을 보면 타임머신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나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처럼 노년의 삶에 대해선 긍정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역시 편견이라는 것을 저자는 알려줍니다.


“나의 미래가 지금의 나보다 못하다는 편견. 나이 든 내가 젊은 시절의 나보다 못하다는 편견. 이 편견이 '나이 부정'의 핵심이다.”(16쪽)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의 나와 만년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 관점의 기저에 나이에 따른 차별이 놓여 있습니다. 60세부터 100세 이상의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을 그냥 '노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저자가 지적할 때 당연하게 불렀던 '노인'이란 말엔 엄청난 편견이 반영되어 있음에 놀랐습니다. 10세부터 50세를 같은 범주에 놓지는 않으니까요.


“우리 주변의 연령차별을 인식하고 나이 듦에 대해 좀 더 미묘하고도 정확한 시각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독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애플화이트는 말합니다. 나이가 매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도 연령차별이 존재합니다. 의식하기 힘들게 우리 문화에 스며있는 편견 중의 하나인 연령차별에서 벗어나 볼까요?


우리 안에 뿌리내린 부정적 편견


'청년'을 생각하면 미래, 열정, 도전 등 긍정적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애플화이트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에도 태평양 너머 한국 사회에도 젊음은 숭배됩니다. 반면 '노년'을 떠올리면 어떤가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를 수치스러워하게 만드는 문화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저자는 연령차별이란 개념을 만든 로버트 버틀러 박사를 인용하면서 이런 문화는 나이 든 사람들을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고 이들의 인권이나 안녕도 개의치 않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나이 드는 것이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논의됩니다. 얼마 있지 않아 병들고 노쇠한 노인들이 세상을 뒤덮어 나머지 세대는 이 노인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통을 겪을 것이란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연금도 건강보험 기금도 곧 바닥날 것이고 부족한 재원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통해 채워질 것이란 예상이 전 인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나이 듦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세대간의 반목을 조장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인 노년을 '추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또한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적인 활동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저자가 '성욕이 없는 노인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라'라고 말하는데 제게도 깊이 박혀 있는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노인들의 성생활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저를 보며 나이에 따른 편견이 제게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노년의 재발견


과연 노년은 정말 이런걸까요?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속도로 나이가 듭니다. 우리 모두를 '노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습니다. 노년은 혹은 나이 든 우리를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 안에 구겨넣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궤적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사랑하고 놓아주면서 그 길을 항해해왔다. 자녀든, 집이든, 꿈이든, 살아오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의 총합이 지금의 우리다. 그것들이 우리를 지금 이 모습으로 빚었다. 이것이 바로 풍요롭고 깊이 있고 너무나도 소중한 'agefulness'다.”(83쪽)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들은 지혜를 얻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됩니다. 은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나이 든 사람들이 일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들은 세대 간 협력을 이끌어내며 혁신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은퇴한 사람들을 자원으로 바라보고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꼭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경제적 성과를 창출해야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주지해야 합니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가정에서의 돌봄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등을 통해 사회 공동체에도 분명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자원을 축내는 존재들이 결코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집니다. 이 행복감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순간을 산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인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도 순간을 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면 행복해진다.”(329쪽)


연령차별이 없는 사회를 향해


저자가 연령차별이라는 편견을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으로 제안하는 것은 '인정'입니다. 저도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작된 나이 먹는다는 변화 과정을 받아들이고 '나이 듦=살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면서 편견을 깨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이 편견은 꼭 젊은 사람들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애플화이트는 어느 연령대에든지 늙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로도 연령차별적 태도를 가진 것이라 말합니다.


노인장, 시니어, 어르신이란 표현을 버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칭하자고 저자는 제안합니다. “늙은이/젊은이의 구분은 없다. 우리는 다만 어떤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고 어떤 사람보다는 나이가 적을 뿐이다.”(22쪽)라는 점을 마음에 새깁니다. “'young'이 매력적이라거나 시대를 앞서 간다거나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듯, 'old'는 추하다거나 시대에 뒤처진다거나 현명하다는 뜻이 아니다.”(66쪽)라는 것도.


저자는 모든 연령에 친화적인 세상을 이루기 위해 이와 같은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실천 방법들도 말합니다. 특히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겐 독서, 악기연주, 댄스, 그림그리기 등 뇌에 자극을 주는 활동을 지속하고 사회적 관계 안에 머물 것을 권합니다. 성욕이 여전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신체 변화에 따라 성생활도 변화되어야 함을 언급합니다. 의존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상호의존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리"라는 점을 잊지 않기를 강조합니다.


"노인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상기시키는 존재다.”(319쪽)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마지막까지 예측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인생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326쪽)


책의 마지막 장(9장)엔 다양한 정책적 제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와 경제에 나이 든 사람들이 이바지할 기회를 늘리는 프로그램 마련, 지속적 직무 및 평생 교육시스템, 돌봄 노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 장기 요양 서비스 제공을 위한 공공/민관 협력 파트너십 개발 등 다양한 접근 방식들은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데 시도해 볼 만한 일들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애슈턴 애플화이트(Ashton Applewhite)의 TED 강연(Let's end egeism)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https://www.ted.com/talks/ashton_applewhite_let_s_end_age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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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화? 아니 고령화? 어떤 이름 짓기가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3차 세계대전 혹은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세계적인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인 것 같다.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국가들에선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 해결 시험을 하고 있다.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피할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될 것이란 전망엔 모두들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고령화에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국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에게도 실감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서구 구가들의 노령화는 보건 시스템, 연금체계, 공공 부채 관리 등에 역사상 유례없는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경제 성장을 언급하곤 한다. 고속성장은 수입 증가를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다. 성장속에 임금이 늘어나고 이를 연금에 지불하고 연금체계의 부실을 방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령화가 GDP 및 인당 GDP 감소의 원인이라는 것이 문제다. 출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이전 세대의 노동인구보다 노동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이는 GDP감소로 이어진다.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감소된 노동인구가 더 많은 은퇴자들을 더 오랜 기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인당 GDP도 감소하게 된다.

노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 노동인구의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것만이 해결책이 된다. 경제 성장은 끝났다고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노령화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혁신적일 수 있을까?

1960년에서 2012년까지의 OECD 33개국에 대한 노령화와 창의적 활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사례를 참고해 보자. 여기선 15-64세 노동인구와 64세 이상 인구 비율과 1000명당 특허수로 창의 활동을 측정했는데, 노령인구 비율이 24-27일 때 창의 활동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2003년의 일본과 2001년-2004년의 독일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이 가장 높은 창의 활동의 왼쪽에 있는 사회에선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나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는 혁신에 투자한다. 노령인구는 자신들의 삶의 표준이 젊은 노동 인구의 노동생산성 향상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생산성 향상의 주요 동력은 혁신이란 걸 알고 있다.

18개 OECD국가의 혁신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 인구가 나이를 먹어가는 사회에선 이런 경향이 약했다. 이는 노령화 과정이 혁신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더 나은 이해와 의지를 가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와 기업가들은 이런 연구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노령화 사회는 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창의적 활동을 장려할 전략을 필요로 한다.

독일은 High-tech Strategy 2020이라는 국가 혁신 전략은 녹색 혁신과 같은 성장 분야에의 투자를 지원하면서 국가 및 주 단위 연구 및 혁신에 자금을 댄다. 일본은 2013년 과학 기술 혁신에 대한 포괄적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의 초점은 환경, 에너지, 보건 및 의료, 사회 혁신에 있다.

정책입안자들은 노령화가 개인의 건강관리, 연금수준, 정부의 경제적 기능에 어떤 의미인지를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인구 노령화의 부작용에 대해 인식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인식은 촉매처럼 혁신에의 투자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보다 호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초가 된다.

노령화의 결과를 이해하고 있는 구가들에서 기업가들은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나이 든 사람이나 청년이나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출처: Andreas Irmen and Anastasia Litina, What a study of 33 countries found about aging population and innovation, HBR, 2017.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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