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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0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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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03

초원위의양 2016. 3. 14. 22:30
문화를 창조하라.

  우리 수업에서 협력의 도구(Tools of Cooperation)라는 중요한 모델이 있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비전있는 매니저가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은 쇄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예민하게 안개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고 회사가 만들어내야만 하는 방향을 수정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변화를 미리 내다보지 못할 수도 있는 직원들을 설득해서 회사가 취할 새로운 방향을 위해 협력해서 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필요한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하기 위한 도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니저의 중요한 기술이다.

  이 이론은 이러한 도구들을 두 가지 차원으로 배열한다. 하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기업에의 참여와 그들이 원하는 것이 합의되는지의 여부, 다른 하나는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동의하는지의 여부이다. 두 가지 축에의 동의가 적다면 당신은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 위협, 처벌 등과 같은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 사분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창립 실행팀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져야 하는지 정의하는 데 있어 강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만약 그러한 임무들을 다루기 위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방식이 계속 성공적이게 되면 일치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MIT의 Edgar Schein은 이 과정을 문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하는 방식이 성공을 이끌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같이 명확한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과 가정에 의해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절차를 따라간다. 말하지는 않지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문화라는 것은 그룹 구성원들이 재발하는 문제를 다루는 증명되고 수용가능한 방법을 나타낸다. 그리고 문화는 서로 다른 유형의 문제에 주어지는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것은 강력한 경영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가족이 영속적인 행복의 공급원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루기 위해 이 모델을 사용함에 있어, 부모들이 아이들로부터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은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학생들은 재빨리 알아챈다. 하지만 십대 시기에 이 강력한 도구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기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바라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기업들이 그런 것처럼 가정에도 문화가 있다. 그러한 문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당신의 아이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기를 원하는가? 그러한 성품은 고등학교 시절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신 가정의 문화에 이러한 것들이 스며들도록 해야 하고 그것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 직원들처럼 아이들도 어려운 것을 해가면서 그리고 일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자존감을 세워간다.

"한계 비용"실수를 피하라.

  우리는 금융과 경제학에서 대안 투자를 평가할 때 함몰 및 고정 비용은 무시하고 대안이 수반하는 한계 비용과 한계 수익을 기초로 하라고 배웠다. 우리는 이 원칙이 기업들로 하여금 미래에 그들에게 필요하게 될 역량을 창조하도록 안내하는 대신에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곳에 기업을 두려한다는 경향이 있음을 수업을 통해 배운다. 미래가 과거와 정확히 동일하다면 이 접근 방식은 맞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미래는 과거와는 다르므로 이러한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이 이론은 내가 학생들과 토론한 세 번째 질문인 어떻게 고결한 삶을 살아갈 것이가를 다룬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선택할 때 무의식적으로 개인의 삶에도 한계 비용 원칙을 종종 적용한다. 우리 머릿속에서 한 목소리가 말한다. "일반적인 규칙이란 게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따르지 않아. 정상을 참작할 만한 이 특별한 상황에서 단 한 번 하는 것은 괜찮아." "이번 한 번만" 잘못된 무엇인가를 하는 한계 비용은 항상 매혹적으로 작아 보인다. 이러한 마음에 빠지게되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게 되며 그것이 수반하는 전체 비용이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부정과 부정직의 정당화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한계 비용의 경제학에 놓여 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이번 한 번만"의 잠재적 손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옥스포드 대학 대표 농구팀에서 뛰었다. 우리는 열심히 해서 시즌을 지지않고 마쳤다. 팀 동료들은 내 인생 최고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NCAA 급의 영국 경기에서 4강까지 이뤄냈다. 그런데 결승전이 일요일에 잡혔다. 나는 16살 때 일요일에는 농구를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개인적인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감독님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쉽게 그것을 믿지 못했다. 나는 주전 센터였기 때문에 팀동료들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팀동료들 모두가 내게 와서 "넌 경기에 나가야 돼. 이번 한번만 그 원칙을 예외로 하면 안될까?"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으므로 잠시 물러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를 했다. 나는 이 약속을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명확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결승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 인생 수천번의 일요일 중의 하나에 일어난 작은 결정이었다. 이론적으론 확실히 그 한 번만 선을 넘고 그 이후엔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특별히 정상 참작할 만한 상황에서 이번 한번만은 괜찮아"라는 논리로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인생에서는 정상 참작을 할 만한 상황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선을 넘으면 계속해서 그것을 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은 원칙을 시간의 98%만 지키는 것보다 100%지키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내 이전의 동요들 중 몇몇이 했던 것처럼 한계 비용 분석에 의해 "단 한 번"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종국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안전한 곳에 선을 긋고 그곳에 서있도록 스스로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겸손의 중요성을 기억하라.

  나는 하버드 칼리지에서 겸손에 대한 수업을 요청받았을 때 이것을 깨달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가장 겸손한 사람을 말해보라고 요구했다. 이 겸손한 사람들의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높은 자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호의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겸손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행동이나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내렸다. 선한 행동은 겸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예를 들어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매우 존경한다면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훔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이에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에 겸손이라는 것을 가져오는 것은 중요하다. 당신이 최고의 대학원에 오기까지 당신은 당신보다 더 현명하고 경험많은 부모님, 선생님, 상사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배운 것이다. 하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 혹은 다른 최고의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당신이 매일 관계하게 되는 사람들의 대자수는 당신보다 덜 교육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당신을 가르치게 하도록 한다면 당신이 배울 기회는 제한되지만, 당신이 겸손한 열정을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당신의 배움의 기회는 제한이 없을 것이다.일반적으로 당신은 스스로를 정말 좋게 여길 때에만 겸손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 주위의 사람들을 돕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독설을 하고, 오만하고, 다른 이들에게 품위없게 대하는 이들을 볼 때 그들의 행동은 거의 항상 자존감 부족의 증상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괜찮다 여기는 느낌을 위해 그 밖의 누군가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판단 기준을 선택하라

  지난 해 나는 암 진단을 받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에 직면했다. 감사하게도 그것이 지금은 비켜간 듯 하다. 하지만 이 경험은 나에게 인생에 있어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내 연구를 사용한 기업들이 얼마나 큰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병 앞에서 그러한 영향력이 지금 나에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게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내 삶을 돈으로가 아니라 내가 감동을 준 사람들로 평가할 것이라 결론내렸다.

  나는 이것을 우리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성취했던 것의 탁월함 수준을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 도왔던 사람들을 생각하라. 이것은 내 마지막 제안이다. 당신의 삶이 판단받을 기준에 관해 생각하고 마지막인 것처럼 매일을 살기로 결심하라. 당신은 성공했다라고 판단받을 것이다.

 

출처: http://hbr.org